(2023.03.14.)
오늘도 차 한 잔으로 시작했다. 오늘의 차는 '사과 히비스 커스'. 어제 교무실에서 통째로 가져 온 탓에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교무실에서 아껴 먹는 차를 말도 없이 가져갔다고. ㅎㅎ 뭐 안 먹는 것 같아서 가져 왔다고는 했는데, 나머지는 가져다 주고 두 개만 거두어 아이들에게 차로 나누어 주었다.
"아, 사과 냄새 난다."
"선생님, 여기 사과 들어갔어요?"
"그럼, 사과를 넣었지."
"에이, 사과가 아니라 사과즙이겠지."
"아무튼 사과는 들어갔음!"
"하하."
그렇게 차 한 잔으로 오붓하게 13명과 하루를 시작했다. '금강산의 구미호' 옛이야기로 시작해서 율동과 노래로 이어지는 일종의 루틴을 반복한 뒤에 오늘의 첫 시간. 마침내 한글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첫 시간으로 훈민정음 시절 ' 아래아, ㅡ, ㅣ'를 시작하려 했다. 세종대왕이 우리글 한글을 만들었을 때, 천지인이라는 철학을 담은 글자를 기준으로 여러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말에 아이들은 신기해 했다. 한글을 그냥 혹은 저절로 혹은 일찍 익혀서 들어왔을 아이들이 한글 낱자에도 철학과 뜻이 있다는 말에 흥미를 보였다. 그 첫 자, 이제 사라진 '아래아' 글자, 즉 하늘의 뜻을 지난 글자를 만나고 공책에 크레용으로 테두리를 그리고 가운데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글자를 완성해 갔다. 서툴고 어색해 했지만, 어쩌면 잘못 그린 듯하기도 하고 엉성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 모습이 바로 지금 아이들 모습이려니 생각하며 글자를 그림 그리듯 만들어 갔다.
그리고 나머지 글자를 예고했다. 'ㅏ, ㅓ' 이 글자는 서울에 계신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배님, 박지희 선생님 책을 소개해 주었다. <1학년 첫 배움책>은 모든 아이들에게 한 권씩 지급이 될 터지만, 미리 맛을 보게 했다. 3년 전 큰 학교에 있을 때, 코로나로 학교를 오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1학년 첫 배움책> 과정을 영상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을 나중에 박지희선생님이 강력히 추천해주시고 출판사에서 의뢰가 와 유튜브에 전편을 올렸는데, 그걸 일부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난리다.
"선생님 목소리 맞아요?"
"그럼, 맞잖아, 그렇게 안 들려?"
"저 손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저건 그때 옆반에 있던 여자선생님 손이야."
"와, 저 선생님 그림 잘 그린다."
"와, 멋있어요."
글자를 배우는 과정을 유튜브로 보면서 자신들이 배웠던 과정과 다르다는 걸 느끼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일단은 성공을 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아래아 하늘 글자'를 그리고는 중간놀이 시간을 맞았다.
이후 이어지는 시간은 어제에 이어 '작은 배의 여행' 선그림이었다. 성곽을 그리고 반대 방향의 깃발을 완성하는 것과 회오리를 그리는 과정이었다. 여러 번 연습을 거쳐 어느 정도 아이들이 그려낸 것에 만족했다. 이따금 실수도 잘못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이전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준 것을 충분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지난 주 우리가 약속했던 것을 퀴즈로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금 그 약속을 지키는지도 확인했다. 확인하는 과정이 주로 누가 잘못을 했는지 이르는 방식의 경향이 있지만, 그것도 차츰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진환이 부르는 시간'. 아이들은 이제 내가 점심시간만 되면 같은 높이에서 밥을 먹는 또 다른 친구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 재미를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야자 타임을 허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의 수수께끼 배틀 상황이 만들어졌다. 저마다 자기가 아는 수수께끼를 이야기 하는데 얼마나 재밌는지.
"자, 맞혀봐. 기린을 냉장고에 넣으려고 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니? 모르겠다."
"일단 냉장고 문을 열어야 하잖아요."
"맞네. 하하."
"그리고 음....세종대왕이 만든 우유는?"
"아, 그게 뭐더라....알았는데...."
"에이 선생님이 그것도 모르면 어떻게 해요."
"뭐였지."
"아야어여 우유!!!"
"아, 맞다."
"진환아, 너 이거 알아? 맞혀 봐."
이렇게 아이들의 점심시간은 수수께끼 문제를 맞히고 내는 시간으로 재미나게 보냈다. 그렇게 5교시가 이어지고 이어지는 시간에는 친구들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아직도 몇 명의 아이들이 친구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는 것 같아 당분간 이런 활동은 지속이 될 것 같았다. 오늘은 아이들 이름을 기차모형에 담아 색도 칠하고 얼굴 사진도 넣고 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색으로 기차를 칠하고 이름을 쓰고 얼굴을 붙여가며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다 만든 것을 칠판에 붙여 보았다. 우리반 기차 모형을 보며 친구들을 더 잘 알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길 바랐다. 하~ 오늘도 하루가 갔다. 내일은 6교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아이들이 1교시, 2교시를 모른다는 것....
"선생님, 방과후 안 해요?"
"오늘은 5교시라고 했잖아요."
"그게 뭐에요."
그래서 나는 저번에 설명해 준 것을 다시 알려주었다. '교시'라는 게 무슨 뜻이고 하루에 몇 시간, 어느 요일에 몇 교시가 있고 이후에 방과후와 돌봄시간이 이어진다는 걸 구구절절 다시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아이들 표정은 아직 모르는 듯, 관심이 없는 듯하다. 어쨌거나 내일은 6교시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