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1학년 아니랄까봐

(2023.03.13.)

by 박진환

"난 결혼 안 할 거예요."

"나돈데."

"그럼, 애는 안 낳을 거야."

"..."

"애는 낳아야지."

"난 애 안 낳을 건데."

"난 남자라서 안 낳을 거야."

"근데 넌 여자잖아."


아침에 '흰 나비가 된 처녀'라는 슬픈 옛이야기 하다가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1학년 아이들 특징이 대게 이렇다.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갑자기 곧잘하며 이야기 들려주는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가난한 처녀와 총각이 부모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다 둘 다 하늘나라로 간 이야기인데... 갑자기 화제는 결혼을 하니 안 하니로 바뀐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한 없이 귀엽고 어이없는 아이들과 하루를 열었다.


오늘은 아침에 차를 마시며 시작을 하기도 했다. 어머님 몇 분들이 아이들과 마실 차를 준비해 주셔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 처음 탄 차는 목련차. 다행히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향이 좋다고 하고 맛있다고 했다. 주*이는 세 잔 마시고도 한 잔 더 마시겠다고 난리였다. 형*이는 처음에는 가방에 컵이 없다고 하다가 단톡방에 영상을 올려 둔 화면을 어머니가 보시고는 이상하다 하셔 다시 찾아보게 했더니 덜컥 나오는 게 아닌가. 이것도 1학년 아이들의 특징이기도 해서 아침 시작부터 두 번 웃었다.


율동과 노래, 그리고 오늘은 '진달래'라는 아주 오래 전 6학년이던 아이가 쓴 시를 칠판에 써 두고 낭송하고 백창우씨가 곡을 붙인 노래로 시간을 보냈다.


진달래 | 이창희(6학년)


학교 화장실 가는 길에 핀

진달래

바람이 불면 간지러운 듯

살랑살랑 몸을 흔든다.


학교 화장실 가는 길에 핀

진달래

바람이 불면 인사하듯이

나를 보고 끄덕끄덕 머리를 흔든다.


그리고는 공사장 뒤편이지만, 아직은 갈 수 있는 뒷산 산책로로 길을 나섰다.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이 길을 다니지 못할 것 같아 아쉽기만 했다. 그렇게 중간놀이로 이어지고....


다음 시간은 지난주부터 이어지고 있는 선 그림을 그리는 시간. 시간이 좀 있으면 운동장이나 다목적실에 가서 몸으로 선의 모양을 익히가며 선을 몸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은데...이래저래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 교실에서 하기에는 너무 좁고...그래서 아이들에게 공중에 손을 올려 따라 쓰게 하고 책상 위에 그려 보게 하는데...오늘은 다른 종이를 주고 미리 연습하게 하고 스케치북에 하게 했다. 그랬더니 조금은 나아졌다. 오늘 내가 칠판에다 미리 시범을 보이는데, 아이들이 저마다 이런다.


"우와, 똑 같이 그린다."

"선생님, 정말 대단해요."

"선생님은 언제부터 그렇게 잘 했어요?"


누가 1학년 아니랄까봐. 한 마디씩 쏟아내는 아이들 말들이 참으로 귀엽고 앙증맞기만 하다. 세상에 누가 날 이렇게 대우를 해줄까? 1학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 못난 선생을 그나마 대우해주는 건 우리 1학년 아이들 밖에 없다. 지난 2년 6학년과 지내는 동안 얼마나 무시(?)를 당했는지 ㅎㅎ. 이제 1학년하고 지내고 살아야 내 명에 살겠다 싶다. 그렇게 연습을 시켜 스케치북에 옮긴 아이들의 그림이 좀 더 나아졌다. 처음 그렸던 것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이렇게 1년만 하면 분명 선을 자유롭게 다루는 아이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각크레용을 쓰는 까닭도 그런 것인데...


그렇게 오늘. 월요일이면 피곤할만도 한데, 편안하게 무난히도 보낸 하루였다. 내일은 또 이 아이들이 어떤 말과 모습으로 내게 힘을 줄까, 궁금하고 또 기다리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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