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채워지고, 또 하루가 사라져가는 날에

(2023.03.25)

by 박진환

"지*야~ 이리 나와봐."

"너 조금 있으면 생일이라며."

"네. 다섯 밤만 자면 생일이에요."

"근데, 생일초대를 선생님이 대신 이야기 해 줄 수는 없잖아. 니가 해 봐."

"..."

"네 생일이 며칠이니."

"... 다섯 밤만 자면 된데요."

"자기 생일 날짜는 알아야 초대를 하지. 듣기로 3월 20일이라며?"

"..."

"아직 날짜를 모르는구나?"

"네. 몰라요."

"자, 그럼 기다려 봐."


그렇게 해서 오늘 첫 시간은 예정에도 없던 달력, 연도, 달, 날을 한 번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지*에게 월과 일을 알려주고 자기 생일을 알게 한 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생일잔치에 집으로 놀러 와 달라는 말을 하도록 했다. 아직 연도와 달, 날을 알아야 하는 시기는 아니었지만, 오늘을 사는 아이들이 지*의 생일을 계기로 한 번 알아보는 시간으로 삼았다. 다행히도 9명의 아이들이 생일잔치에 함께 하고 싶어했다. 실제로 그 아이들이 생일잔치에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오늘 이 시간이 생일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었길 바랐다.


그 뒤로 '천년 묵은 지네' 이야기를 꺼내 분위기를 바꾸어 보았다. 중간에 결정적인 순간에 이야기를 그만 두었더니 불만 가득한 표정과 언성으로 나를 가만 두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일을 기대하자며 겨우 달래 마무리를 지었다. 오늘은 입학초 적응활동이자 수학 사전 수업의 성격으로 놀이를 해 보았다. 첫 번째 놀이는 콩주머니를 머리에 얹은 상태에서 걸아가다 바구니에 넣기 놀이였고 다음으로는 한 친구가 던져주는 콩주머니를 한 손에 받는 놀이, 끝으로 콩 주머니를 던져 바구니에 던져넣기, 공을 뒤에 있는 친구에게 건네어 다시 돌아오게 하는 놀이까지 수를 생각하며 놀이를 자연스럽게 하도록 시간을 보냈다.


모든 아이들이 즐거운 표정과 마음으로 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놀이를 할 때, 아이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집중력은 나무랄 때도 없고 승부욕까지 합쳐 언제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빠르게 점심시간은 불쑥 다가왔다. 오늘은 놀이가 풍부한 시간때문이었는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본성을 들어내며 자기 성격을 만만치 않게 보여주기도 했다. 전에 없이 소리를 지르고, 화도 자주 내고 심지어 우는 아이도 생기면서 오늘 6교시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자란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도 사회성이 길러지며 자신의 결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앞으로 더 꾸준히 지켜보며 나는 아이들이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도우면 된다.


나머지 시간은 미처 배치하지 못한 '국악'교사가 수업에 들어오게 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었고 선그림을 시간이었다. 날이 저문 밤의 희미한 풍경의 선, 다시 아침을 밝혀 준 햇빛, 돌고래의 춤까지 지난주부터 이어온 선그림을 조금씩 완성해 갔다. 분명 지난주보다는 좋아졌고 어제보다는 더 좋아졌다. 이번 '작은 배의 여행'이 끝나더라도 형태그리기를 꾸준히 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려 한다. 아이들도 조금씩 자신감을 갖는 아이들이 늘어가는 것 같다. 두고 볼 일이다. 선 그림이 단순히 선을 그리는 미술활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를 나타내는 선으로 글자를 써내는 선으로 이어져 글과 그림, 수를 자유롭게 읽어내고 써내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 기나긴 6교시가 순식간(?)에 흘러간 하루를 보내고 나니 어느덧 아이들과 만난지도 열네 번째 날이 됐다. 하루가 채워지고 또 하루가 사라져 간다.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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