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도 알게 된 날

(2023.3.15.)

by 박진환

"와~"

"에고, 깜짝이야."

"하하하."

"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네. 오늘은 시*이가 늦나 했잖아. 그런데 가방은 보이고 해서 어디 나갔나 했지."

"히히히"

"선생님 깜짝 놀래켜 주려고 거기 숨어 있었던 거야?"

"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은 한 거니?"

"우리 엄마가 나보고 아침에 이렇게 해 보라고 했어요."

"아 하~ 그랬구나. 하하하."


아침에 나보다 늘 먼저 출근하는 시*이가 오늘은 교실에 들어서는데 보이지 않길래 복도 쪽을 내다보는데, 그만 시*이가 '왁' 하고 놀래키는 바람에 아침부터 놀라며 웃을 수 있었다. 수줍어 하면서도 할 건 다 하는 시*이를 다시 새롭게 바라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는데, 어머님 지시(?)였다고 해도 이렇게 나를 대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뒤이어 오는 두 아이도 있어 시*이에게 숨어서 나처럼 놀래키라고 했더니 또 한다. 그랬다. 나머지 두 아이도 모두 놀라며 웃었다.


그렇게 맞이한 아침. 갑자기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모니터 왔는데, 찾아가세요."


교실 듀얼 모니터 중 하나가 너무 부실해서 새로 교체를 요구했는데, 그게 온 것이다. 아직 아이들이 다 오지 않아서 재빨리 가서 뜯어 설치를 했다. 시원했다. 그런데, 아뿔싸. 카메라가 달린 모니터로 구입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 늦게 남아서 독서지원단 부모님들과 줌회의를 해야 하는데 이동식 카메라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걸 찾으러 2층으로 올라가야 할 듯한데, 막 아이들이 들어와 버렸다. 그래서 나중에 가려 했는데, 핸드폰을 들고 온 한 아이 때문에 여기저기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으려 하니 제법 논리가 있다. 물론 어른들의 논리이기는 하지만., 나름 설득력 있는 아이들 세넷이 말하는 게 웃기다. 전부 논쟁에 빠져 있어 그 사이를 틈타 2층에 올라가 찾고 있는데, 도무지 없다. .그래서 결국 1층으로 내려왔는데, 웬걸....예닐곱 아이들 나를 찾겠다고 난리. 역시 1학년이었던 걸, 내가 너무도 간과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아이들은 어서 어서 옛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옛이야기 들려주는 것에 딱히 호응이나 관심도 없던 녀석들이 이제는 해달라고 난리다. 너무 재밌단다. 더구나 오늘은 어제 '천년 묵은 지네' 이야기를 채다 못 들은 터라 요구는 장난이 아니었다. 겨우 진정 시키고 차를 한 잔 마시게 한 뒤에 곧바로 어제에 이은 뒷이야기로 들어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초립동이 그 아이는 사실 천년 묵은 지렁이였대."

"그럼, 천년 묵은 지네랑 천년 묵은 지렁이랑 싸운 거예요?"

"그렇게 됐네. 아내였던 천년 묵은 지네는 지렁이랑 싸우는 동안에 남편보고 고함을 지르라고 했대."

"뭐라고요?"

"저기 저놈 잡아라!"

"하하하."

"여러분도 한 번 그럼 고함을 쳐 볼까요?"

"네."

"저기 저놈 잡아라!"

"저기 저놈 잡아라!"

"그런데 첫날 싸울 때는 너무 무서워서 기절하고 이튿날 싸울 때는 말을 못하고, 그렇게 사흘째가 됐대? 근데 너희들 '사흘'이란 말 알아?"

"아니요?"


그렇게 해서 오늘도 자연스럽게 입학초 적응활동 '수학편'을 할 수 있었다.


"사흘은 삼일째 되는 날을 말해. 하루라는 말 알아요?"

"네."

"맞아, 하루하고 다음날을 이틀, 그 다음날을 사흘, 그 다음날은?"

"...."

"나흘이라고 해. 그럼 그 다음은?"

"알아요. 다흘!"

"하하하. 아냐, 그건 닷새라고 해. 그 다음은 엿새라고 하는데, 오늘은 닷새까지만 배우자. 자, 따라해 보세요. 하루!"


이렇게 해서 옛이야기로 '사흘'도 배우고 천년 묵은 지네의 한도 풀어주고 옛이야기를 재밌게 듣는 것으로 첫 시간을 보냈다. 이후로는 다리를 꼬고 서서 5초, 10초 견뎌보는 것도 해 보고 풍선을 치면서 수를 세어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수를 익혀야 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활동들이 일종의 워밍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시간은 선그림, 형태그리기로 하고 있는 <작은 책의 여행> 돌고래의 이동을 그림으로 그리는 시간. 아이들은 아직도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내눈에는 처음보다 분명히 좋아졌는데, 그 정도는 양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손근육의 힘이 받쳐주지 못하고 아직은 시야도 좁다. 하지만 나아지는 게 보이니 꾸준히 하면 정말 정말 좋아질 거라 믿는다.


아이들과 치킨이 나온 점심을 맛나게 먹고 오늘 하루도 마감을 지었다. 아이들 만난지 15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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