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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Apr 30. 2024

4월 마지막 날의 기운

(2024.4.30.)

"선생님, 오늘 산책 갈 거예요?"

"산책? 음...그럴까?"

"아싸! 나가서 줄 서요?"


하긴 어제 나갔어야 헸는데, 비를 핑계(?)로 다음으로 미뤘었다. 마침 한 녀석이 묻길래, 그냥 그러자고 했다. 사실 나도 그냥 마냥 나가고 싶었다. 아이들 손 잡고 학교 주변을 걷고 또 걷고 싶었다. 그렇게 나간 산책. 서로 내 손을 잡겠다고 달려드는 걸 정리해가며 텃밭으로 먼저 걸어갔다. 딱 한 달 만에 싹을 틔운 감자잎을 보며 다들 반가워 한다. 이번 주에 생태공책 들고 나가서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텃밭을 돌고 놀이터쪽으로 갔다. 이제 공사가 끝나 운동장도 정비가 돼 한층 넓어진 공간 사이로 아이들이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잽싸게 뛰어 놀기 시작했다. 각종 놀이기구를 여기저기 타고 노는 아이들. 


아이들 뒤로 보이는 공사가 끝난 학교 건물을 바라보았다. 낯설다. 정말 낯설다. 10여 년 전부터 알고 있던 거산초등학교. 지난 거산과 오늘의 거산을 모두 지켜 봐 온 나로서는 새 건물로 가득해진 거산이 낯설다. 생태중심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학교에 맞는 공간혁신사업을 벌였던 학교공사는 악화된 경제 환경 속에서 과정과 결과가 처음 취지와 완전히 달라졌다. 거산과 역사를 함께 했던 아름다리 나무들이 잘리고 뽑히고 뭉게진 자리에 무겁고 짙은 콘크리트가 자리 잡아 버렸다. 자연친화적으로 지으려고 했던 내외 시설은 경제환경의 차가운 변화로 자재와 인건비가 무한정 올라가면서 실현할 수 없어 버렸고 주어진 현실에 맞게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는 거산이 돼 버렸다. 거산의 3기(내가 본 역사적 시점)는 이제 이전의 역사와는 다른 길을 걸을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그렇게 가야하기도 하지만, 새 건물로 너무도 단절된 분위기는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도 역사이니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시간을 더 줄 수 없었던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주차장과 급식실을 거쳐 새 건물인 도서관으로 향했다. 


"선생님, 여기서 점심시간까지 놀면 안 돼요?"

"으잉? 점심시간까지? 하하하."

"네, 여기서 계속 놀고 싶어요."

"선생님도 그러고 싶은데, 벌써 첫 수업시간이 지났어. 이제 가야 해."

"00야, 어서 가야 해. 가자."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어서 와!"

"선생님, 그러면 도서관에 가요."

"도서관은 아직 안에 아무 것도 없는데?"

"그래도 가요. 거기서 막 뛰고 싶어요."

"거기는 뛰는 데가 아닌데?"

'거기서 운동하고 싶어요."

"하하하. 도서관에 아직 시설이 안 들어와서 언니 오빠 형 들이 배드민턴도 하더니....."


도서관 앞에 서서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는 뒷산 산책길을 지나 교실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몽실몽실 흔들리는 민들레 홀씨를 발견한 아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잡고 냉큼 불어버린다. 아이들 숨으로는 쉽게 불리지 않던 민들레홀씨였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사진에 담아도 보았다. 그렇게 교실로 들어와서 시작한 첫 시간 공부. 오늘의 주제는 'ㄴ'을 익히는 것.  혓소리의 첫 글자인 'ㄴ'을 배우면서 꾸러미 글자인 'ㄷ,ㄸ, ㅌ'도 혀 끝에서 나는 소리임을 아이들과 확인을 했다. 그냥 'ㄴ'이라는 글자만 익힌 아이들에게 소리와 연관돼 있음을 계속 확인 시켜 주었다. 그리고 홀소리와 몇 자 연결 시켜 읽는 것까지만 했다. 5월인데, 이제 'ㄴ'이라니. 하하하. 그래도 이 속도가 나는 맞다고 생각이 든다. 지난 1학년 5년의 경험이 있고 우리 아이들을 보니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출발점이 같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교과서로는 우리 아이들의 언어 발달을 결코 도울 수 없다. 


둘째 시간은 오늘부터 시작하는 '연극 수업'. 지난 거산의 교육과정을 점검하고 훑어 보며 분석해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연극 교육과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을 1학년부터 체계적으로 만나게 하여 자신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리하여 생각하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모든 언어의 기능을 총체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연극교육과정은 어떤 교육과정보다 가치가 크다. 요즘 매체교육이라 하여 섣부르게 영상교육을 초등학교에 가져와 영화제작까지 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진짜 공을 들여야 하는 건 매체교육에 앞서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 나가는 지점을 살펴야 한다. 이도 저도 안 되는 교육을 어설프게 시켜 놓고 매체교육이라 하여 영상을 들이밀어 아직 미디어 리터러시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정말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차원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1학년 연극수업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우리 반 예*는 연극수업이라 하니 공연연습을 하는 거라 여기고 있었다. 흔히 그랬다. 학교에서 연극강사를 불러 수업을 진행하면 대게 결론인 공연을 올리는 것부터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입시교육과 전시교육에 집착하는 오늘날의 변함없는 학교교육의 모순과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진정 학교 연극수업은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기 표현을 드러내는 지점을 발견하고 자기 안의 무엇을 끄집어 내어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익히는데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 학교에서는 이것을 '교실연극'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늘 오신 선생님은 작년부터 거산에서도 호평을 받은 분이어서 어렵게 또 모셨다. 아이들에게 종이 한 장을 내어주고 친구들의 얼굴을 관찰하여 부위마다 각기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게 하여 최종 그림에 대한 느낌을 서로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각기 다른 아이들이 각기 다르게 보고 완성한 그림으로 웃고 재밌어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어지는 시간은 수학. 오늘은 지난 번 나눠준 '구슬셈판'(?)으로 가르기를 익혀 보는 시간으로 보냈다. 시작은 지난 번처럼 아이들 한 편과 내가 서로 대결을 하여 가위바위보로 구슬을 먼저 10개 모으는 승부를 보는 놀이를 했다. 결과는 1대 1. 어찌나 재밌어 하는지. 그리고는 다섯 개의 구슬부터 가르기의 다양한 방식과 결과를 공유해 보았다. 아직은 가르기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르치기 보다는 5부터 9까지의 수를 어떻게 가를 수 있는 지를 묻고 확인하는 정도로만 해 보았다. 아직은 가르는데 급급해서 내가 설명하는 가르기에 대한 의미까지 파악하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나중에는 이것을 왜 하는지도 밝혀주었다. 구체에서 추상으로 가는 과정에서 실물로 가르기를 하는 것과 기호로 나타내는 것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게 진짜 알게 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지만, 아직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남은 시간에는 2단원 '여러 가지 모양'의 수학 익힘책을 함께 풀어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시 또 말하지만, 수학교과서나 수학익힘책이나 글은 많고 그림은 약해 아이들이 스스로 하기란 너무 어려워만 보였다. 교사의 도움이 없어도 그림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 문제가 만들어졌으면 좋으련만. 


"선생님!"

"왜? 선생님이 우리 6학년까지 선생님 해주면 안 돼요?"

"뭐? 헐~"

"맞아요. 선생님이 우리하고 6학년까지 같이 가면 좋겠어요."

"너희들은 여자선생님 더 좋아하잖아."

"아니에요."


우리 반에 단 둘 밖에 없는 여학생들이 점심 밥을 내 곁에서 먹으면서 이런 수다를 떨었다. 그저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한 번 생각해 볼 게. 너희들 하는 거 보고."

"으잉, 난 선생님이랑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00야, 우리 중학교에도 같이 갈래. 나는 중학교는 가고 싶지 않지만, 중학교에 가면 너랑 같이 가고 싶어."

"그래, 그러자."


이건 또 무슨 대화래. 1학년 꼬맹이들이 못하는 말이 없다. 6년 뒤를 벌써부터 이야기 하는 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이라니. 점심놀이 시간이 짧은 터라 아이들이 불만이 많아 오늘은 10분을 아이들 몰래 더 주었다. 그렇게 부른 아이들과 통합교과 '사람들'에서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그전에 <가족 납치 사건>이라는 그림책을 먼저 읽어주었는데, 어찌나 재밌어 하던지, 요즘은 책을 한 권 읽어주면 달라는 아이들, 집에 가서 읽어보겠다는 아이들이 많아서 살펴보고 돌아가며 건네준다. 다음으로 사계절의 그림책 '일과 사람' 시리즈 중에서 <출동 119! 우리가 간다>를 보여주었다. 글이 많은 설명책 같은 그림책이어서 그림 위주로 설명해주면서 보여주었다. 이것도 달라는 아이들이 많아 가려서 건네주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간 지 모르게 훌쩍 가버렸다. 벌써 퇴근 시간. 하지만 나는 할 일이 많아 야근을 또 해야만 한다. 그래도 아이들과 오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이들과 만난 지 58일째 되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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