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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y 01. 2024

평화의 이면을 생각해 본 날

(2024.5.1)

5월 첫 날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이어지는 5월은 초등학교에서 그야말로 정신이 없는 날이다. 더구나 우리 학교는 거산한마당까지 토요일에 거행을 하니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이렇게 바쁜데, 아픈 아이들이 늘어난다. 감기 때문이다. 오늘도 교외체험학습자까지 12명에서 3명이나 비니 9명으로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이나 나나 상관없이 수업을 진행했다. 오늘 차는 오렌지차. 아이들은 오렌지 차라고 할 때부터 기대를 한다. 오늘의 옛이야기는 '먹보 머슴'이었다. 밥 쉰 그릇은 족히 먹어야 제대로 일을 하는데, 그 일이 엄청나서 50인분의 일을 하니 주인도 마지 못해 한끼 식사로 50인분을 대접하는데, 결국은 집안이 거덜날 것 같아 내 쫓았고 그 먹보 머슴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아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도 이후로 소식을 모른다는 재밌고도 슬픈 이야기. 50을 '쉰'으로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하는데 적절한 옛이야기라 곧 '50까지의 수'를 배워야 할 아이들을 위해 잘 표시도 해 두었다.


오늘 첫 수업은 'ㄴ'을 공부하는 시간. 'ㄴ'이 첫 글자로 들어갈 때와 'ㄴ'이 끝 글자로 들어갈 때,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를 알고 예쁘게 글을 쓰는 시간. 그리고 'ㄴ'을 일정한 간격으로 색연필로 점점 크게 그려 나가는 활동까지 이어지며 그런 대로 무난히 수업을 이어갔다. 혓소리의 특징을 알고 소리가 어디서 어떻게 나는지를 아는 게 중요했는데, 앞으로 더 지켜보며 하려 한다. 되풀이 되는 활동이기도 한데, 아이들은 지루해 하지 않는데, 내가 뭔가 아쉽다. 중간 중간 낱말 놀이로 흥을 돋우어야 할 것 같다. 5월은 그렇게 수업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이어지는 중간놀이 시간까지 병원에 간 두 아이가 오지 않아 아쉬웠는데, 첫 블록 국어시간을 무사히 마친 아이들이 중간놀이를 신나게 보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운동장까지 아이들의 움직임이 확대가 되었다. 저 멀리 운동장까지 나가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들이 정겹다. 멀리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내 모습을 본 몇몇 아이들이 나를 부른다.


다행히 2블록 수학시간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병원에 들른 두 아이가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섰다. 얼굴은 괜찮아 보였다. 오늘은 2단원 여러 가지 모양의 마지막 시간. 수학익힘책에 있는 문제와 수학나라 공책에 있는 단원평가로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그런데 지난해 때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은 듯 보였던 것 때문에 살짝 시간이 걸리고 머리도 복잡해졌다. 일단 글을 모르는 아이들, 글은 알아도 문제를 읽고 해석을 해서 푸는 과정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 일일이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것까지야 당연하다 싶은데, 아이들보다도 문제가 조금은 불필요하게 난이도를 넣어 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이 과정을 거친 1학년 아이들이 잘 했던 탓이 있었는데, 내가 이 지점을 너무 가볍게 넘어갔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어쩌면 나는 이번 아이들을 통해 1학년 교육과정을 다시 익혀 나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가르치며 배우는 올 한 해가 될 것 같다.


점심시간을 뒤로 하고 그 짧은 점심놀이시간을 거친 아이들과 통합교과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고마운 사람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집으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책자를 만들어 보는 시간으로 보냈다. 책을 만드는 것보다도 사람을 그리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크게 그리고 균형을 잡아 특징을 살려 사람을 그리게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도에 잘 따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고집을 부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 내일 좀 더 그려보자 했다. 내일은 어린이날 행사 준비와 어린이날 가정 행사로 일찍 금요일부터 움직이는 아이들이 있어 금요일 일정을 당겨 운영하려 한다. 오랜만에 운동장 체육활동도 해 보려 한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움직일 아이들 모습을 생각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보내는 뒤로 몇몇 아이들이 나를 다시 보며 돌아와 확인을 하고 가는 아이들이 있다.  왜 다시 왔냐 하니 "선생님이 다시 보고 싶어서요." 한다.


오늘은 '노동절'이었다. 근로자의 날이라고 하지만, 나는 노동절이 맞다고 생각한다. '노동'을 천시 여기고 불온시 하던 이들이 만들어 낸 '근로자의 날'은 본디 메이데이라 불렸다. 1886년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노동관련 사건을 기리기 위한 날이었다. 단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던 노동자들을 경찰이 발포해서 4명이 죽은 것을 시작으로 각종 사건 사고가 터지고 1889년 프랑스 파일에서 세계 노동자들이 모인 가운데 이런 사건들을 기리기 위해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정한 것. 이제는 단지 노동자들이 쉬는 날로만 여기지만, 이렇게 쉬게 된 이면에는 지금의 노동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의 평화는, 오늘의 평화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이면에는 숨은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알게 되면 우리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제 신문에서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한끼 식사 값을 단지 2만원 올리기 위해 시위를 시작했다는 글을 만났다. 이 시대의 지성이라는 대학에서 청소 노동자들의 3천원도 안 되는 한 끼 식사를 조금 올려달라는 절절한 외침이 무시 당하는 시절. 우리는 정말 노동절을 누릴 만한 연대의식과 공감력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지금의 어른들이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 타인이 우리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아이들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쓸데 없이 뒷말이 길은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59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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