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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y 21. 2024

애들이 덤빈다

(2024.5.21.)

'애들이 덤빈다'는 표현을 내 주변에서 처음 쓴 이는 예전 남한산초 출신 지금은 양평 서종초 교장으로 가 있는 김영주선생이었다. '애들이 덤빈다'라는 표현 자체가 신선했다. 아이들과 잘 지내는 그였기에 이 표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너무도 잘 알았고 그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해마다 1학년과 지내면 정말 애들이 나한테 덤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교사를 깔보거나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친숙해지고 익숙해진 탓이 크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 곧 5교시가 시작되는 10분도 안 남았을 무렵, 승*가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승*야, 이제 들어와야 해~ 나가지 마~"

"아니요, 싫어요~"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수업시간이 다 돼 교실로 들어오라는데, '아니요, 싫어요'라니. 하하하. 그래서 교실에 있던 선*우에게 밖에 있는 친구들 다 들어오라고 해달라고 심부름을 보냈더니 그제야 들어온다.


"너, 승*. 선생님 말 듣고 들어왔어야지. 선*가 들어오라면 들어오고 이게 뭐야. 선생님 말 이렇게 안 들을래? 또 그럴 거야."

"네, 뭐가요~ 네, 또 그럴 거예요. 히히히."


애고, 요즘 승* 말고도 요녀석들이 얼마나 삐대는지. 그래도 참 귀엽기만 한 걸. 너무 경우가 없지만 않으면 난 녀석들의 반발(?)을 받아들이고 살려 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재미나게 지내는 게 먼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학교 가면 잔소리가 좀 많고 때론 무섭지만, 그 빈틈 사이로 막 대할 수 있는 알고보면 만만한 선생님 때문에 재미나게 학교 다니면 그것으로 충분한 거 아닌가 싶어서다.


오늘은 아침부터 이 작은 학교가 들썩였다. 우리 학교 4학년과 6학년이 수학여행으로 울릉도 독도를 떠나기 때문이었다. 배웅을 하러 나가면서 떠나는 우리 짝학년인 6학년에게 사탕 하나씩 건네주자 하니 좋다한다. 복잡한 버스 앞이 아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6학년을 맞아 축하하고 무사히 돌아오라 박수를 쳐주는 작은 행사를 치렀다. 얼떨떨해 하며 쑥스러워 하는 6학년을 따라 다시 내려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내 시간이 지나자 집중력이 떨어진 우리 1학년 배웅이고 뭐고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그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교실로 돌아온 나는 오늘 첫 시간으로 수학을 꺼내들었다.


그동안 구슬판과 막대자석, 수세기 칩을 이용해 가르기와 모으기를 배웠는데, 이것을 직접 공책에 나타내며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확실히 작년 아이들보다 공책 공간 감각이 부족해 보였다. 아무리 안내를 해도 자기 마음대로 써 버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내용에 집중했다. 왜 이런 작업이 필요한지, 왜 가르기와 모으기를 반복해서 익혀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덧셈과 뺄셈에 익숙해지려면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덧셈과 뺄셈의 기호의 유래부터 설명해 가며 설득해 갔다. 덧셈과 뺄셈에 가르기와 모으기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니 눈이 똥그래지며 놀라워 한다.


그동안 교외체험학습으로 감각을 잃어버리거나 빈 시간을 채워야 하는 아이들도 두 세 명 보였다. 가정에 따로 연락을 해야 하는지, 좀 더 지켜볼 작정이다. 가르기 모으기는 실제로 교육과정에서도 3단원에 2차시 밖에 안 나오고 학원에서도 이렇게 집중해서 가르치지 않을 것이기에 사실 걱정이 들긴 했다. 그냥 문제풀이로 해서는 절대로 그 감각을 익힐 수 없고 그저 외워 푸는 정도여서 나중에 곱셈이나 그 이상의 연산에서 결국 수학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터여서 이에 대한 한 준비는 다시금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주까지 지켜보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은 가정의 도움도 받아야 하지 싶었다. 그러나저러나 전반적으로는 무난히 이 과정을 수행해 주었다.


오늘 국어시간에는 'ㄹ'를 만났다. 혓소리의 마지막 글자이기도 한데, 꽤 많은 아이들이 'ㄹ' 획순을 잘 모르거나 편하게 쓰는 버릇이 있어 이 지점에서 따로 연습이 필요했고 홀소리에 'ㄹ' 닿소리를 붙여 읽는 연습까지 하면서 되풀이 해 보았다. 글 익히기에 걱정이 좀 들었던 아이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한데, 절대적으로 연습이 더 필요해 보였다. 관건은 1학년 학습 수준을 따라갈 절대 총량의 읽기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나와 가정에서 함께 고민할 지점이으로 보였다. 오늘은 시간표상 4, 6학년의 수학여행 관계로 연극시간이 조정이 돼 오늘 1학년은 두 시간을 책정돼 있었다. 이걸 뒤늦게 확인해 수업시간을 조정해 움직였다.


중간놀이 시간에 혼자 있는 우리 노*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단 둘 밖에 없는 여학생 중 예*가 심한 감기로 오늘 학교를 또 빠지게 돼 외롭고 심심할 것 같아 제안을 했더니 바로 내 손을 잡고 앞서 나간다. 산책길에는 어떤 짐승인지 모르겠지만 똥이 너무도 많아서 둘이서 그거 피하며 산책하느라 애 먹었다. 그리고는 놀이터 근처로 내려오자, 우리 반 아이들이 지난주 내가 그려준 8자판에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네를 타고 싶다는 노*와 놀이터로 간 뒤 한동안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침은 흐렸는데, 점점 맑아지며 해가 쨍쨍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 교실로 돌아갔다.


마지막 5교시에 연극은 아이들의 발성 연습에 이어 몸을 푸는 놀이시간이었다. 오늘 짝이 하나 없어 내가 들어가 함께 놀이를 즐겼다. 끝무렵에 한 놀이는 바닥에 놓인 큰 손수건 네 장 위를 친구들이 두명씩 올라가 있다가 마지막 천을 앞으로 돌려 징검다리 건너듯 가서 다시 돌아오는데, 건너다 천이 아닌 바닥을 짚거나 밟으면 간단한 노래를 부른뒤 다시 앞으로 가야 하는 놀이였다. 협동이 매우 중요했는데, 우리 반 한 아이가 친구들과 다투다 성에 차지 않자 울어 버린다. 안 하겠다고 뛰쳐 쳐 나가며 응석을 부렸는데, 연극샘도 나도 그 응석을 받아주지 않았다. 매번 이런 일에 울음을 터뜨리며 응석을 부린 아이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 아이도 얼떨결게 다시 놀이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협력해야 하는 놀이에서 서로 다툼이 있더라도 일단은 과정에서 힘을 모아 가는 경험을 쌓게 하는 게 중요한 수업이기도 했다. 억울함과 분함은 나중에 따지면 되는 것.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힘든 건 어쩌면 협력인지도.


어제는 아주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다. 건강검진 요검사를 하던 중 우리반 수*가 오줌관리를 못해 부족하자 우리반 지*이에게 달라고 했던 것. 의리가 많은 우리 지*이는 주저함 없이 과감히 오줌을 나누어 주었다나. 아침에 그걸 다시 확인하고 그럴 이유가 없었던 걸 가르쳐 주고 확인하면서 함께 웃고 넘겼다. 오늘은 몸으로 움직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절제를 했던 아이들이 자기 본능에 충실해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게 문제라기 보다는 아이들의 특성을 살피는 자료로 나는 삼는다. 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던 모습이거나 주의를 주는 행동이 더 활발하게 작동하는 지점이 어떤 지점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것 가지고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나눠야 변화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물론 가정의 협력도 필요하다. 이런 것만 동반이 되면 나는 아이들이 내게 덤벼도 다 받아들일 것이다. 기꺼이. 하하하.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76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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