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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y 22. 2024

딸기향 가득했던 날

(2024. 5. 22.)

출근길...오늘도 예*어머님의 문자가 폰에 떴다. 불길했다. 역시나 오늘도 결석...오늘 뿐만이 아니라 이번 주 내내로 바뀌었다. 감기가 심해져 폐렴 징후까지 보인다고 한다. 걱정이다. 오늘도 그렇게 우리 반의 완전체는 다음주로 미뤄졌다. 오늘도 준*는 맨 처음 학교로 왔고 뒤이어 선*도 들어왔다. 심심해 하던 준*는 선*우의 등장으로 활기를 띠고 아직 시간도 안 됐는데, 서둘러 버스 타고 올 동무들을 마중하려 나갔다 들어왔다 신이 났다. 그렇게 아이들이 모이고 오늘은 레몬차를 대접했다. 레몬향이 좋다며 레몬은 생거로도 먹는다는 수*를 비롯한 아이들은 맛나게 차를 마셨다. 그 와중에 옛이야기 한 편을 들려주고 오늘의 첫 수업을 준비했다.


오늘의 첫 수업은 통합교과 '우리나라'. 이전 교육과정보다 주제 '우리나라'가 너무 일찍 나오는 바람에 참 낯설고 무척이나 시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만 든다. 추석이 있는 시점에 우리나라를 배우는 것이 한복이나 민속놀이나 더 어울리는데, 굳이 이렇게 해야 했을까 싶다. 딱히 5월-6월이 어울리는 시점도 아니어서 받아들이기 힘든데, 어쩔 수 있나, 있으니 해야지. 오늘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와 무궁화를 살펴보고 이해하고 통합교과 공책에 붙이고 그리는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것만 해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비누로 무궁화를 만들려 했는데, 시간이 모자랐다. 역시나 우리 아이들은 '태극기'를 '태국기'로 알고 있었다. 태극의 의미와 건곤감리의 위치와 뜻, 형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티커를 붙이면서 살펴보았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인 것을 모르는 아이도 대부분이었다. 무궁화가 어떤 꽃인지, 어떤 특성이 있고 어디서 볼 수 있는지를 얘기하면서 내가 나누어 준 프린트물에 색연필로 색을 칠하며 무궁화를 좀 더 알게 되는 시간으로 보냈다. 아이들이 색을 칠하는 모습을 보며 잔소리를 해 댔다. 석 달 동안 한결 같이 색을 칠할 때, 바깥으로 튀어 나가지 않게 테두리를 그려가며 하라고 했건만, 오늘도 어김없이 그냥 칠해 버리는 아이가 대부분이다. 무언가 정성을 들이고 꼼꼼히 하는 게  힘든 것일까. 잔소리를 좀 심하게 했나 한 녀석은 울어버린다. 나중에 삐쳤냐 물었더니 그랬단다. 섭섭했나 보다. 그래서 울보에 삐침쟁이라고 놀렸더니 나보고 고집쟁이라고 맞선다. 이래 놓고도 점심 먹으러 갈 때는 내 손 잡겠다고 앞장 서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그 삐침쟁이.


두번째 블록은 'ㄹ' 배우기...오늘은 'ㄹ' 받침(끝소리)에 들어가는 말을 어떻게 소리내어 읽고 쓴는지를 연습했다. 오늘은 'ㄹ'이 받침이 된 한 글자로 김은영이 펴낸 동시집 <ㄹ받침 한 글자>도 들려주며 'ㄹ'에 대한 감각을 높여 나갔다. 아이들도 저마다 받침 'ㄹ'이 들어간 한 글자를 서로 말하겠다고 손을 들어 의욕을 보였다. 덕분에 이번 시간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다만 아직 한글 익히기에 힘든 과정을 거치는 녀석이 그날 수업은 무난히 넘기지만 이전 수업 것을 빠르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짙어 고민이 깊어졌다. 조만간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수학 익힘에 있는 가르기 모으기 관련 문제를 함께 푸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전에 익힌 과정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전 수업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도움을 받고 해결해 버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다시 살펴 봐야 할 것 같다.


오늘 중간놀이 시간에는 노*가 내 곁에서 맴 돌면서 어제처럼 내가 시간을 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갈까?" 하는 말에 마치 자동으로 내 손을 잡고 앞장을 선다. 오늘도 산책을 뒷산으로 했는데, 고라니 똥으로 보이는 것들이 잔뜩 있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산책하기는 불편했다. 산책길 종점에는 언제나 '도서실'이 있다. 건물은 다 지었으나 아직 문도 못 여는 곳을 둘이 서서 어두운 창문에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자 노*가 "빨리 도서관이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한다. 노*의 마음은 나와 똑 같았다. 맞장구를 쳐주며 놀이터로 가려 하자, 노*가 감자 심은 텃밭으로 가자 한다.


"선생님, 감자 심은 밭에 가면 안돼요?"

"오늘은 거기로 갈까?"

"네!"

"그래, 가자."

"와, 감자꽃이다."

"그러네, 감자꽃이 이제 거의 다 피었네. 우리 내일은 아이들이랑 와서 감자꽃 관찰하면서 그림도 그려보고 그럴까?"

"네, 좋아요."

"그러자. 와 예쁘게 폈네."


그때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텃밭 일을 도와주시는 주사님이 한 마디 건네셨다.


"아, 딸기 좀 따가."

"딸기요? 아직도 있나요?"

"노지 딸기는 아직 있지. 아, 1학년 녀석들은 매 와서 땅만 그렇게 파대겨."

"하하하. 그렇죠. 맨날 와서 땅만 파고 뱀 찾고 지렁이 찾는다고..."

"딸기 많은 게. 어여 따가. 스무개 정도는 따가도 될 거여."


그러고 딸기 밭을 보니 딸기가 지난 주보다 훨씬 빨갛게 익어 가고 있었다. 제법 큰 것도 보이고 노*와 나는 욕심을 내어 스무개가 아닌 50여개가 될 때까지 따고 또 땄다. 노*에게 손가락을 아래로 벌려 딸기를 잡아 위로 따면 '톡'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려주니 엄청 재밌어 한다. 그렇게 딸기를 잔뜩 따서 실과실 가서 광주리에 담아 씻어 교실로 들고 갔다. 들고가다 교무실과 행정실에 들러 맛을 보게 해드리고 가는데, 교실 쪽에서 아이들이 왜 이제 오냐며 빨리 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교실로 들어서자 노*가 들고 들어온 광주리에 딸기가 가득한 걸 보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나중에 수업 잘 듣고 마치면 주겠다고 했는데, 아이들마다 딸기향이 가득하다며 군침을 흘렸다. 그래서 해서 나중에 점심을 먹고 들어온 아이들에게 하나씩 두개씩 세개씩 먹게 했다. 그렇게 우리 텃밭 딸기를 맛나게 먹었던 오늘. 교실에 딸기향이 가득했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77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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