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환 May 23. 2024

'도와주세요'와 '해볼게요' 사이

(2024.5.23.)

답사차 국립세종수목원을 다녀왔다. 세종으로 간 김에 너무도 예쁘게 살아가는 후배교사 둘을 만나서 밥도 사주고 응원(?)도 해 주고 왔다. 3주 뒤에 찾아갈 세종수목원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미리 동선을 파악하고 화장실과 점심식사 장소와 놀이터 등을 알아봤다. 나름 성과가 있고 꽤 괜찮은 볼거리와 동선이 있기는 한데, 날씨가 문제였다. 일단 비가 오지 않아야 한다. 야외 활동이 절반이상이라 그렇지만 반대로 날이 너무 뜨거워도 곤란하다. 오전에 주로 움직일 거라 그나마 괜찮겠지만, 고민이 들기는 했다. 세종 후배들은 인근 금강수목원을 제안하기도 했다. 수풀이 우거져 세종보다 활동하기는 좋다는데, 내년에 반영해 보기로.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밤9시가 다 되었다.


출장차 일찍 퇴근한 학교에서 오늘 아이들과 나는 'ㄹ'과 'ㄸ' 공부로 혓소리 공부는 일단 마쳤다. 글자 익히기에 힘들어하는 녀석도 오늘만큼은 패턴에 익숙해져 있다. 저 정도면 반복해서 연습만 하고 본인이 좀 더 의지를 보여주면 될 것 같은데, 결국 그것도 어른들의 몫이겠다 싶다. 아무튼 녀석에게 크게 칭찬해주고 중간놀이 시간 맘껏 놀라고 했다. 활짝 핀 얼굴로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가는 모습에 나도 절로 웃음이 났다. 중간놀이 시간에 나는 온채움선생님과 통합교과 우리나라의  오늘 주제인 '무궁화' 비누 만들기 활동을 위한 준비를 했다. 클레이로 흔히 하고는 했는데, 내가 지루해서 비누로 바꾸어 보았다. 이것도 주물러서 만드는 건 같아서 해볼만하지 않겠나 했다. 그러나 걱정했던 대로 아이들은 내 뜻대로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찰흙이 아니라고 너무 주무르거나 빙빙 돌리거나 클레이처럼 다루지 말아 달라 부탁을 했건만, 아이들은 내 말은 들은 척도 않아고 자신들이 해 보았던 방법, 익숙한 것에만 집중했다. 다시 티비를 켜고 화면으로 만드는 과정을 직접 실물화상기를 통해 비춰주면서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집중하지 않고 자기 활동에 빠져 있는 아이들. 이번 아이들은 유치원 때 자유롭게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습성을 잘 바꾸지 않아서 여러 번 되풀이 하는데,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옆에서 온채움선생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시간 안에 마치기도 힘들었을 것 같았다. 오늘 작업 중에 아이들이 많이 했던 말은 "선생님, 도와주세요. 못하겠어요. 망쳤어요."였다. 괜찮다며 다시 하도록 안내했지만, 어떤 아이들은 도와달라는 뜻이 대신 해달라는 뜻이었다.


못해도 스스로 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고 직접 하지 않더라도 잘 만든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이중적이고도 상반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동안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아도 어른들의 도움으로 스스로 한 것보다 더 나은 작품을 선보였던 경험이 잦았을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이 지점도 분명하다. 못한 것을 받아들이고 못난 것도 받아들이고 잘못한 걸 인정하고 못하면 다시 해보고, 못난 것이라도 내가 한 것에 만족하고 잘못하면 다시 잘해보려 노력하는 이런 과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런 맘이 없으면 스스로 해낼 힘을 당연히 갖지 못하지 않겠나. 부모님과도 의논을 하며 우리 아이들이 부족해도 스스로 하고 실패하면 다시 해 보려는 의지를 가져보는 그런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잘 키워 갔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잘하고 못하고를 칭찬하고 위로하기 보다 다시 해 보려 하는 용기에 박수를 치는 것에 좀 더 관심과 지도가 이어지면 좋겠다.


그리하여 '도와주세요'가 '대신 해주세요'가 아닌 '힘든 지점에서 잘 이겨내려면 내가 어떻게 하는 지 모르겠어요'라는 것으로 부탁의 의미가 달라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도 놀랍게도 최근 발표한 쳇지피티 -4o에서 수학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인공지능이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답으로 곧장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푸는 이에게 고민해야 할 지점을 확인해주고 다시 생각해 보게 하면서 결국 문제를 해결했을 때, 격려를 하더라는. 하지만 내년에 초등학교에 3학년부터 보급될 디지털 교과서는 그렇지 않다는 소문이 들린다. 교과서의 모바일 버전이라고 할까. 진도를 빼고 문제풀이과정을 곧이 곧대로 나가야 하는 정답찾기의 전형적인 표준화된 수업의 디지털 버전이라는 수문이 들린다. 이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교육예산만 불필요하게 낭비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한밤을 새며 오늘의 일기를 쓰는 나는 아이들과 입학 뒤 78일을 보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딸기향 가득했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