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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y 24. 2024

낯설지 않은 풍경

(2024.5.24.)

늘 자던 시간에 잤는데도 오늘은 일찍 눈이 떠졌다. 그렇다고 개운한 것도 아닌 채, 그냥 일어나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씻고 집을 나서 학교로 들어오니 이른 8시 10분. 7,8년 전 나의 학교 등교시간. 물론 그때야 학교가 집 근처였기도 했고 오늘은 차량이 적은 금요일이기도 했던 탓이 컸다. 일찍 들어선 교실에 준*도 없어 나는 아이들에게 따라 줄 차를 준비하고 어제 출장 때문에 하지 못한 다음주 주간학습안내장을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5월 마지막 주다. 벌써 석 달이 다 됐다. 100일째가 코 앞이다.


오늘의 첫 수업은 아직도 단련(?)이 덜 된 가르기와 모으기를 놀이로 해보는 시간. 작은 숫자카드로 10 이하가 되는 수, 혹은 가를 수 있는 수로 모둠별로 만들어 보는 시간. 가를 수 있다는 정도만 알지 뭔가 빠르게 정리해 내는 건 아직은 서툰 아이들. 당장 다음주부터 기호가 들어간 덧셈과 뺄셈을 익히겠지만, 틈나는 대로 가르기 모으기 상황을 점검해야 할 것 같았다. 모둠이 함께 만들어가는 놀이였지만, 각자의 책상에 올려 둔 짝이 되는 카드에는 아이들 상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속도와 이해의 차이가 분명해 보였고 아이들 상황을 금세 파악할 수 있어 나름 의미가 있었다. 전체를 대상으로 함께 했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아이들 상태를 읽어낼 수 있어 좋았다. 결론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 연습을 시켜야 한다는 것.


다음으로는 시간을 좀 쪼개어 오랜만에 텃밭에 조금씩 피어나는 감자꽃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지난주부터 피기 시작한 감자꽃이 오늘은 더 피어 있을 것이어서 먼저 '감자꽃을 보려면'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고 함께 연습을 했다. 간단한 흐름의 노래지만, 그래도 낯선 노래라서 쉽게 익히지 못했다. 다음으로는 생태수첩을 꺼내서 며칠 전 감자꽃을 찍은 사진을 그려보게 했다. 감자꽃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그리게 했다. 지난해 밭에 나가서 직접 보고 그리라 했더니 꽤 힘들어 하며 그리기 어려워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오늘은 먼저 그림을 그리고 밖에 나가서 눈으로 직접 살펴보고 특징만 익혀 두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훨씬 더 집중하여 관찰한다.


딸기밭에서 딸기 한 두 개씩을 따서 씻어 먹고 중간놀이 시간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마지막 블록시간은 통합교과시간. 같이 노는 시간. 온통 씨름으로 노는 시간. 눈씨름, 팔씨름, 돼지씨름으로. 먼저 눈을 마주 보며 오래 버티기. 녀석들의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팔씨름은 이렇게나 진지할 수가. 온갖 반칙을 써가며 요령을 피오는 아이도 있고 마침내 우리반 팔씨름왕도 나왔고 돼지씨름은 하다가 어떤 녀석이 실수로 맞은 편 친구 얼굴을 차서는 순간 당황해서 사과보다 일부러 한 게 아니라는 말을 앞세우는 통에 잔소리를 들어야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돼지 달리기. 개인전, 모둠전, 이어달리기까지 아이들은 신나게 교실에서 엉덩이를 교실바닥에 붙여 쓸며 보냈다.


마지막 사진 한 장을 찍으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짓고 나니 뭔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 가득했다. 이게 뭐지 싶었는데, 드디어 감이 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며 나를 힘들게 하는지를 말이다. 내 입에서는 절로 "이제 적응을 완전히 했구만!"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랬다. 석 달이 지나서야 이제 예전 내가 맡았던 3월 아이들의 모습과 닮은 상황이 연출이 된 것. 할 말 다하고 내 말에 귀기울이기보다 먼저 말하려 하고 방금 잔소리 들은 행동을 곧이어 되풀이 하고 여기저기 소리를 지르며 활짝 웃는 녀석들. 이건 분명 5월말의 아이들이 아니라 3월 말의 아이들이었다. 담임과 학교에 완전히 적응한 아이들. 이제 잘 추스려 6월로 넘어가며 서로 배려하고 잘 노력해보자는 말을 자주 해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아침 준*가 나보다 늦게 들어와서는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건제 준 책 세 권도 건성건성으로 읽고는 재미없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뱉은 말.


"선생님, 저 긴장이 돼요."

"긴장? 왜?"

"어, 어. 우리 반 친구들이 오늘 모두 우리 집에 와요."

"뭐? 와~ 정말? 좋겠다."

"네, 좋은데, 긴장이 돼요."


이러던 준우는 버스 타고 오는 아이들을 맞으러 서둘러 나가려 했다.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엉덩이는 들썩 들썩. 마침내 친구들이 교실에 들어오고. 그러자마자 준*는 바로 친구들에게 말을 건넨다.


"수*야, 너 오늘 신나지 않아?"

"뭐가?"

"오늘 우리 집에 오잖아."

"어. 신나."

"진*야, 너 오늘 재밌겠지."

"어, 오늘 재밌을 거 같아."


실은 돌봄교사의 안내로 돌봄시간을 이용해 가까운 준*집에 치과에 가야 하는 한 아이를 빼고 모두 우리 반 아이들이 놀러 가는 것이었다. 얼마나 재밌을까? 얼마나 신이 날까? 너무 신나니 준*는 긴장이 된다고까지 했다. 다들 그래서 그랬을까? 아니다. 이건 그냥 1학년 살이에 이제 완전히 적응한 탓이다. 흥분과 들뜸으로 가득한 아이들을 이제 조금씩 진정을 시키고 나가야 할 6월. 그런데 어쩌냐. 곧 100일잔치에,, 현장체험학습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나도 잘 버텨야 한다. 애고, 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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