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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y 27. 2024

정확히 안다는 것

(2024. 5. 26.)

어제 비가 온 탓인지, 아침이 살짝 차갑다. 이내 해가 나서 금세 따듯해졌지만, 5월 말 날씨 치고는 꽤 선선하다.  오늘도 준*는 학교에 먼저 와 있고 우유도 채워져 있다. 아침 친구를 기다리는 준*는 시계를 읽을 줄 아는데도 내게 묻는다. 지금 몇 시냐고. 친구들이 도착할 시간이 될 무렵, 준*는 빠른 속도로 뛰쳐 나간다. 조금 뒤에 아이들이 들어온다. 그냥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인사도 없이 그냥 들어오는 게 일이 된 듯하다. 지난주부터 주의를 줬는데, 어김없이 그냥 들어와 내가 있건 없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적응기간 석달이 지났고 아이들 리듬이 꽤 깨진 상태다. 다시 고쳐 잡아 나가야 하는 오늘. 비로소 예*주가 아픈 몸을 잘 치료하고 학교로 와 완전체가 됐다.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아이들 얼굴 사진부터 찍었다. 생기부에 올려야 하기도 하고 아이들 얼굴로 캐릭터를 의뢰해서였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100일잔치에 캐릭터 선물을 하지 못하게 됐다. 지난해 의뢰했던 작가가 개인적인 문제로 사업을 접고 취직을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일이 덜 바쁠 시점에 일종의 알바 작업을 해서 8월말까지는 보내준다고 해서 200일 때나 선물로 제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작업으로 오늘 사진을 앞옆뒤로 찍었다 아이들은 뭐가 우스운지, 이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웃기 시작했다. 정말 저 나이 때는 뭐라도 웃음이 나오는 나이일 게 분명하다. 어렸을 때 나도 그랬을까? 내 어린 시절에는 가정에서도 엄격했고 학교에서도 엄해서 아무 쉽게 웃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아이들이 부럽다.


사진을 다 찍고 시작한 첫 수업은 월요일 첫 시간만다 하는 <겨울별 이야기> 선 그림이었다. 오늘은 먼 별에서 온 요정이 산을 오르고 내린다는 가정에 따라 산모양으로 굵은 선과 가는 선을 그리는 시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 봤지만 역시나 어려우 한다. 굵은 선은 어느 정도 흉내라도 냈는데, 가는 선은 아니올시다였다. 지금까지 겪어 본 아이들 중 이 수준의 선 그리기를 가장 어려워 하는 아이들이어서 내가 난감(?)하기도 하다. 이전에 가르치지 않았던 내용을 가르치면서 내가 그동안 너무 편하게(?) 아이들을 대했다 싶었다. 어느 정도 발달된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가 그 모습을 다 1학년으로 여긴 것은 아니었나 혹은 그때 힘들어 하던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우리 새싹이들을 통해 내가 달라진 면은 그저 보고 말로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선을 곧게 그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긋는 법을 다시 가르치고 모든 아이들을 돌아가며 직접 손을 잡고 다 지켜보며 지도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어느 정도 대부분 내가 앞에서 지도하면 다 비슷하게 따라주는 편이어서 내 손길이 그다지 필요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많이 달라 계속 신경을 쓰며 지도를 해나가고 있다. 덕분에 반성하고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이 많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아이들을 도우려 애를 쓴다. 이 그림이 끝날 무렵에는 좀 더 달라진 나와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중간놀이 시간 이후는 수학시간. 오늘은 지난주에 교구로는 가르기 모으기가 어느 정도 되던 아이들이 학습지 형태의 추상화 작업으로는 헤매는 모습을 보여 이 둘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박영훈의 <1학년 초등수학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다시 살펴 가면서 묶어세기와 주사위로 세기 연습을 통해 구체물과 학습지 내용을 연관시켜 가며 가르기 모으기 작업을 반복해서 익히게 하였다. 5월에 학교를 제법 빠진 아이들을 집중해서 돌아다니며 살폈다. 그 중에서도 조금 힘들어 하고 느린 아이들을 살폈다. 오늘 도우미 선생님도 같이 계셔 좀 더 집중해서 도울 수 있었다. 외외로 아이들이 오히려 추상화 단계에서 풀이는 곧잘 하는 아이들이 정작 구체물과 이어졌을 때, 헤매는 아이들이 있다.


학자들은 아이들이 5+3이 8이라는 걸 안다고 이 둘의 합 관계를 명확히 논리적으로 알고 있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곤 한다. 우리 아이들 중에도 적지 않은 아이들이 그 상태에 있다. 빨리 더하기와 빼기를 익혀 온 아이들 중에서 혹은 구체물 보다는 머리로 셈하여 익히는데 더 익숙한 아이들이 보인다. 구체물에서 그림으로 그림에서 추상화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정답만 빨리 내 놓는 아이들이 나중에 깊이 있는 수학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을 놓치기 때문이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대상에 대해 정확히 인지했을 때라야 가능하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와 정답을 앞세우는 배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오늘 그 지점 때문에 나는 가던 길을 다시 돌아서 갔다.


그런데, 아뿔싸, 이렇게 수학시간에 집중하다 보니 오늘 국악수업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평소와 같이 급식실로 가다 부랴부랴 배고픈 아이들 데리고 곧장 실과실로 가야 했다. 그곳에 있던 국악강사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고 급히 수업을 진행하고 겨우 겨우 밥을 먹여 방과후 교실로 보내었다. 첫날부터 정신이 없다. 이렇게 정신없이 마무리 했던 5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 지 82일이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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