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환 May 28. 2024

귀여운 악동들과 고군분투

(2024.5.28.)

교실로 들어서는데 준*우의 얼굴에 벌레에 물린 자국이 크게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 했더니 팔도 보여주면서 벌레에 물렸다고 했다. 나중에 가렵다고 해서 약을 발라 주었다. 이어 들어오는 아이들이 오늘은 인사를 제법 건넨다. 하루 만에 달라졌으니 다행인데, 앞으로 다시 처음 먹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는 경계 짓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마냥 어리광을 부리고 대충 잘못도 얼버무려 넘어가는 모습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하던 모습을 학교에서도 그래도 보여주는 것인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하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는 모르나 이번 아이들은 이런 모습이 유독 눈에 띈다.


오늘 첫 시간은 옛이야기도 들려주기도 힘들게 바쁘게 시작을 했다. 어제 야근을 하며 미처 하지 못한 수학수업 자료를 만든다고 뒤늦게 난리를 부렸던 탓이 크다. 별 것도 아니었다. 0-10까지의 숫자 카드 만들기. 첫 수업 시작 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차를 따라주며 잠시 기다리게 했다. 그동안에 아이들이 얼마나 수다를 떠는지, 카드를 만들면서 나도 모르게 킥킥 웃었는데, 지금은 그게 무슨 이야기였는지 다 까먹었다. 겨우 다 만들자 첫 수업 시작하기 3분 전. 아이들에게는 마신 찻잔을 씻게 하고 나는 첫 수업 준비를 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10 가르기와 10과 친한 수에 대한 공부를 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먼저 10을 가르는 것을 수학나라 공책에 쓰게 하고 내가 적은 것과 맞는 것을 찾아보게 했는데, 나랑 마음이 통한 서너 아이들이 있어서 사탕도 건네주었다. 다음으로는 아이들 책상 위에 아침에 열불나게 만든 숫자 카드를 11장씩(0~10) 나눠 책상에 펼쳐 놓게 했다. 그리고는 내가 든 숫자카드와 합이 10이 되는 수를 들어올리게 했다. 연습이 필요해서 한 아이마다 각각 따로 놀이를 시작했는데, 어찌나 재밌어 하던지. 그간의 익숙한 학습이 도움이 됐겠지만, 집중력도 더 높아진 듯했다. 나중에는 나와 아이들 단체로도 해보고 마지막으로 짝끼리 해보라고 했다. 먼저 열 번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했는데, 어찌나 신나게 하던지, 다음은 9이하의 수로 확장해서 보수가 되는 수, 가르기와 모으기를 최종 확인하는 수순을 밟으려 한다.


다음 수업은 'ㅁ'을 배우는 시간. 이제 겨우 입술소리로 들어갔다. 앞으로 6월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닿소리와 홀소리 기본 글자를 마칠 텐데, 그 사이에 복모음, 겹받침도 함께 익혀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껏 해 온 1학년 1학기 국어수업 속도 치고는 꽤 늦다. 좀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보려 한다. 너무 빠르고 양이 많은 기존 교육과정과 대비해서 이렇게 늦게 가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 지를 다시금 확인해 보려 한다. 늦게 가도 충분히 읽고 쓰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갖춰 나가는 게 중요하다. 아직 서툴고 좀 더 연습과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을 잘 챙겨 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요즘 우리 반 아이들이 점점 악동(?)이 돼 가는 것 같다. 입학한 지도 100일 가까이 돼 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1학년이라 부르기에는 어색(?)할 모습들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필통을 다 끄집어 내 놓고 딴 짓을 하고 있는 아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 울다 화장실에서 큰 똥을 싸고는 시원하게 앉는 아이, 밥 먹다가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았는지 토하듯 뱉어내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아이, 석 달동안 특정한 낱글자만 만나면 헤매면서 방황하는 아이, 수업시간 노래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다 잔소리를 들어도 헤헤 거리며 웃어 넘기는 아이, 오늘도 개미를 죽여가며 곤충채집이 아니라 잡아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아이, 공부하다 갑자기 뜬금없이 낙서를 해서 써야 할 자리를 낙서장으로 만드는 아이, 우유곽을 따지 못해 석달째 따달라고 하고 숟가락을 바로 잡지 못해 매번 주의를 주어야 하는 아이...이번 아이들은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수업을 모두 마치고 인사를 나누기 전 사진을 찍고 난 뒤에는 모두 달려들어 나하고 안고 가며 나더라 잘 있어야 인사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귀여운 악동들. 그야말로 난 사랑스런 악동들과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잔소리 많은 이 나이 많은 도사 선생을 그래도 나 좋다고 쫓아다니고 손을 먼저 잡으려 하고 웃으면서 맞아주는 데는 장사가 없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요놈들에게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악동들을 지켜내는 156살 도사선생이니까. 오늘은 이 악동들과 만난 지 83일째 되는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확히 안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