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환 May 29. 2024

하루는 숨가쁘게 돌아갔지만

(2024.5.29.)

오늘 일기는 우리 학교 행정실장님 때문에 이렇게 밤 늦게 다시 써야 했다. 오늘 학교 직원들 회식이 있는 날이라 급히 다 학교를 나갔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 실장님의 오판이 그만 일기 마무리를 짓던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오늘 일기를 안 쓸도 없는 나는 회식을 마치고 돌아와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다시 돌이켜 보는 오늘 하루. 아이들이 흑두콩차를 따라주고 함께 마시며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침을 열었다. 첫 시간은 수학. 어제 아이들이 좋아했던 숫자카드로 10이하의 수의 짝을 찾으며 놀았다. 나중에는 MATH BLOKE 이라는 교구로 10이하의 수의 짝을 찾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았다. 이번 교구는 숫자에 크기를 정해 일정하게 높이를 맞춰 숫자와 숫자의 모으기와 가르기 상태를 이해시키는 새로운 시도이다. 지난해 구입한 교구였는데, 예상한 대로 아이들은 매우 좋아했다.


끝으로 수학나라 공책에 실은 10이 되는 나라 땅 차지하기 놀이를 했다. 짝을 지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10이 되는 수에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쳐 나가는 것. 그래서 제일 먼저 땅을 많이 차지한 사람이 이기는 놀이를 했다. 조건도 달았는데, 먼저 해결하고 팀이 중간놀이 시간을 먼저 나갈 수 있다는 것. 나는 이것을 먼저 이긴 사람이 나갈 수 있다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진 사람은 어쩌냐 물었다. 그래서 같이 나갈 수 있다고 하니 둘이 모두 좋아라 했다. 이 모습은 나중에 수학수업을 마칠 무렵 진풍경을 만들기도 했다. 놀이에서 진 아이가 이긴 아이에게 "이긴 걸 축하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어떤 아이가 이 말을 먼저 꺼내자. 다른 아이들도 어떻게 주워 들었는지 똑 같은 말을 하며 축하를 건넨다. 이유인즉, 이기나 지나 중간놀이로 나가는 시간은 똑 같기 때문. 경쟁과 이기는 것에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어떤 조건과 상황을 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중간놀이 시간 이후는 국어시간. 오늘은 닿소리 'ㅁ'을 배우는 시간. 첫배움책에서 받침글자를 해결한 뒤 닿소리 공책으로 낱말을 다시 확인하고 한글첫배움책으로 글자쓰기를 익혔다. 그리고는 오늘은 'ㅁ'자가 들어간 그림책을 찾아 보라고 했다. 생각보다 이번에 만난 아이들이 책과 거리가  있었다. 교실에 내가 늘 가지고 다니는 책을 우리 아이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오로지 바깥으로 나가 텃밭과 산으로 놀러 다기기가 바쁘다. 당연히 이 나이 또래 아이들이 즐겨야 할 것들이지만, 적어도 교실에서는 책에 관심을 보였으면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책을 보여주고 동화를 읽어주는데, 그러니 반응을 조금씩 보이고 읽어 준 책을 빌려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책장에 있는 수많은 책에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오늘은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그림책이 있는 책장으로 가서 'ㅁ'자가 들어간 책을 찾아보라 했다. 그렇게 12명의 아이들이 12권의 책을 가져왔다. 한 명 한 명이 가져온 그림책을 실물화상기 아래에 놓고 책제목을 읽고 내용을 간단히 훑어 보았다. 그랬더니 다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우리 교실에 있었다니 하는 표정과 말들이었다. 이 책들도 가져가고 싶어서 해서 내일 가져가 보라고 앞 책상에 올려 놓았다. 얼마나 가져가 읽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때 뿐이지 중간놀이 시간이 되면 우리 아이들은 텃밭과 뒷산으로 바로 뛰어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시도를 나는 계속 할 것이다.


오늘 마지막 시간은 아침부터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 문양이 있는 비석 색칠하기를 했다. 그리고는 일찍 마친 아이들은 비석치기 방법을 가르쳐 주어 교실 뒤편에서 놀도록 했다. 그림을 빨리 그리고 놀고 싶은 아이들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우기고 보채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그러기를 몇 번 하며 시간을 보내고 결국은 시간을 다 보내며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불만에 가득찬 얼굴을 한 아이를 뒤로 하고 나는 서둘러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해야 했다. 곧바로 심폐소생술 연수가 있었기때문이었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작은 사고도 있었다. 선*가 들고가던 다 먹은 식판을 준*가 빨리 교실로 가겠다고 앞뒤 안 가리고 뛰어가는 통에 부딪혀 밥과 국이 든 내용물이 모두 쏟아졌던 것. 마침 준* 할머님이 지원단 활동으로 오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듯 뒷수습을 하셨다. 준*할머님이 안 계셨으면 나는 준*랑 직접 같이 치웠을 것이다. 잘못을 한 것을 본인이 수습해야 맡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고 조심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기 때문인데, 그런면에서는 아쉽기도 했다. 나중에 주의를 주기는 했는데, 이래저래 오늘도 숨가쁘게 하루가 지나간 듯하다. 오늘은 아이들과 내가 만난지 84일째 되는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귀여운 악동들과 고군분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