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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y 20. 2024

코끝이 찡, 괜히 눈물이 핑

(2024.5.20.)

"선생님, 오늘 주사 맞아요?"


오랜만에 학교 오는 하*이가 들어오더니 대뜸 이런 말을 꺼낸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건강검진을 하는 날인 걸 어머님으로부터 들었던 걸 게다. 뒤 따라 들어오던 녀석들도 그러길래.


"음..넌 맞을 거고, 음..넌 안 맞아도 될 거야."

"예? 왜요?"

"음..넌 선생님 말 잘 듣는 주사를 맞아야 하거든."


오늘도 두 아이가 빠졌다. 아직도 완전체가 되려면 오늘을 보내야 한다. 지난 보름동안 뒤섞인 아이들의 리듬과 속도를 나머지 두 주 동안 채워야 한다. 그래야 방학전까지 안정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한 건강검진은 수가 적은 데다 결석생 둘이 있어서 10여 분만에 끝낼 수 있었다. 다녀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흑두콩을 대접하고 웃긴 옛이야기 한 편 들려주고 지난 주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고 첫 수업을 시작했다.


오늘의 첫 수업은 '겨울별 이야기'의 선 그림 그리기. 요정이 땅에 내려와 노는 이야기로 왼쪽 한 편은 사각크래용으로 땅이 올라오는 모습을 굵은 선으로 표현하여 해를 그리고, 다른 쪽 한 편은 가는 선으로 땅의 다른 모습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는 것이었다. 늘 그리던 굵은 선은 그런대로 해내던 아이들이 가는 선을 그릴 때는 왼쪽과 오른쪽의 폭이 크게 다르고 흔들렸다. 그래서 좀 더 지도하며 왼쪽 시작점에 점을 찍고 오른쪽 끝날 지점에 같은 간격으로 점을 찍어 잇도록 했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섬세하게 지도해야 할 지점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수업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즐거워 해 무리는 없었다.


조금 남은 시간과 두 번째 수업은 수학. 가르기 모으기를 되풀이해서 연습시키는 시간. 지난 주까지 공부한 내용으로 교과서도 살짝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공책에 가르기 모이기를 9 이하의 수로 나타내는 연습을 했다. 구슬판으로 연습을 하며 공책에 수를 적어나가는 과정이었는데, 몇몇 아이들이 구슬판을 놔두고 손가락으로 하거나 머리로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직도 이 구슬판의 활용가치를 잘 못느꼈나 싶어 다시 연습 시켜가며 확인을 했다. 오늘은 자석 수막대로도 수업을 진행했다. 먼저 자석수막대 이용법을 가르친 뒤에 하나 작고 큰 수를 막대로 나타내게 했다. 다음으로 9이하의 수를 자석수막대로 나타내는 연습과 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구슬로만 하다 수막대로 옮기니 아이들이 환기가 되는 듯했다. 나중에는 10으로 들어가버렸다. 자리수 개념으로서 10을 익혀야 하지만, 가르기와 모으기의 한 양태로 단계를 뛰어 넘어 10으로 넘어갔다. 짐작한 대로 아이들은 큰 무리가 없었다. 가르기 모으기의 연장된 수로 10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지난주부터 수마다 가르는 가짓수의 패턴과 규칙이 있다는 것도 확인 시켜가며 했다. 9는 8가지, 8은 7가지의 가르는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과 확인을 하며 10으로도 확장시켜 갔다. 10을 자석막대로 나타내는 과정에 놀이를 적용해 시간제약을을 두기도 하니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아져 갔다.


마지막에는 지난주에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즐겼던 작은 숫자 카드(0--10)로 시간을 보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모둠끼리 10이 되는 수를 많이 찾으라는 미션을 주었더니 아이들끼리 서로 의논해 가며 찾아낸다. 구체물에서 그림으로 그림에서 추상화로 이어지는 초등 연산의 단계의 마지막 부분을 나름 충실하게 거치며 지나온 것 같은데, 다음 주에는 10이하의 수 모두를 이 작은 카드로 찾아내는 모둠별 놀이학습과 개별학습으로 진행을 해 볼까 한다. 충분히 연습이 된 뒤에 교과서 문제와 덧셈과 뺄셈으로 넘어가면 좋지 않을까 싶다. 부디 아이들이 이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을 보내려 급식실로 아이들과 손을 잡고 신나게 갔다. 맛난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들과 날마다 하는 사진 한 장을 찍고 헤어졌다. 둘 밖에 없는 여자아이 둘은 내 곁에서 한동안 머물며 껌딱지처럼 안 떨어지고 싶다느니, 평생 같이 살면 안 되냐니 하며 나이 50 중반을 넘어서는 나를 홀린다. 끈적한(?) 인사를 나누며 이 빠진 거 개수 함께 세고 웃으면서 또 겨우 겨우 떨어 뜨려 보냈다. 그러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이가 달려와서 들어 안아 달라 한다. 세 번이나 안아주고 나서야 겨우 보낼 수 있었다. 이 녀석들은 석달이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어리광을 부린다. 그럴 나이이긴 분명하나 조금 색깔이 다른 아이들이다.


지난 주에는 6학년선생님이 내 뒤에서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장면을 찍어 보내 준 사진 때문에 울고 웃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어서 찍었을 거라 짐작한 갓 4년차된 선생님의 배려에 사진을 한참 보다 웃다가 문득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핑 도는 것이 갱년기인가 싶었다. 이제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둘 날이 머지 않았다는 걸 직감하는 요즘이었기 때문일 터였다. 돌이켜 보면, 31년이라는 지난 세월이 참으로 오래되었으면서도 빨랐다.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고 기쁨과 슬픔, 고통과 좌절, 배움과 성장 등을 교사라는 직업으로 모두 겪어냈다. 그 한 지점, 아니 거의 끝자락에서 나는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다들 여러가지 이유로 학교를 떠나거나 교사를 떠나 다른 것을 선택하지만, 나는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교직이 나와 적성에 맞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이들을 내가 좋아하는지도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나온 31년을 후회하지 않고 있다는 것. 교직에서 보람과 기쁨,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큰 보탬이 되어주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라는, 어린이라는 존재들과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것이다. 내일 우리 학교 4학년과 6학년은 멀리 울릉도, 독도로 떠난다. 거산에 오면서 한 일 중 내가 잘한 것 중에 하나는 울릉도 독도로 가는 길을 앞장서서 터 놨다는 것. 이후는 각자의 선택이었지만, 그 길에 호응하고 나서주는 이가 생겼다는 것.


머지 않은 훗날. 나는 이 시점, 이 시절을 다시 떠올리며 그리워 할 것이다. 그 순간 결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오늘도 내일도 아이들과 함께 잘 살아 보려 한다. 오늘은 우리 새싹이들과 만난지 75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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