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에 싹이 나서

(2023.03.21.)

by 박진환

상상도 못했다. 학교에서 4-500 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내 교직 경력에 있으리라고는. 그렇게 출근을 하다보니 예상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왜 이렇게 늦었냐고 항의(?)를 한다. 자기들은 늘 나보다 늦었으면서. 어쨌거나 나도 1학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오늘은 옛이야기를 두 번 해주었다. 시작할 때랑, 끝날 때랑. 처음에는 옛이야기에 시쿤둥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이야기 자체를 즐긴다. 듣기도 읽기다. 듣기와 읽기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지금껏 나랑 지낸 1학년은 듣기를 즐겼고 읽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듣기로 들었던 이야기들이 읽기를 읽을 때 자연스럽게 동력을 받았고 글을 쓸 때, 자연스럽게 구성을 만들어 갈 줄 알았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듣기가 없었다면 이를 통해 말을 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읽기 자체를 즐기지 못했을 거라는 확신은 있다. 오늘도 옛이야기를 두 개 한 까닭은 아이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일부러 두 개 이야기 모두 호랑이 관련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나눌때 뒷이야기를 상상해가며 미루어 짐작도 하면서 집중을 하던 아이들 눈빛이 기억이 난다. 내일도 그 눈빛 때문에 난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것이다.


첫 시간은 그림책 <감자에 싹이 나서>였다. 아이들은 생각 밖으로 감자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감자 자체에 싹이 난다는 것도 모르는 아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물었다.


"감자에도 싹이 나요?"

"그럼."

"나 본적이 있어요."

"자, 그림책을 보면 여기 굴러 떨어진 감자에 뭐가 나 있어요."

"싹이요. 두 개다."

"맞아요. 두 개의 싹이 났는데, 작년에 6학년 언니 오빠 형들이랑 감자에 싹 난 것을 어떻게 했는지 보여줄까요?"

"어, 진짜네. 근데 저걸 왜 짤라요?"

"감자는 감자가 씨앗이에요. 그래서 이런 걸 감자씨라고 해요. 묵은 잠자라고도 해요."

"자르면 어떻게 돼요."

"그림책을 한 번 보세요. 뭐라고 해요. 이 농부아저씨가?"

"재를 묻힌다고 해요."

"재가 뭔지 알아요?"


자른 감자에 상처가 난 부분에 재를 묻히는 것이 흙으로부터 옮을 수 있는 나쁜 세균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고 그것을 땅 아래로 묻어야 한다는 것까지 설명하면서 나중에 자라게 되면 그림책처럼 감자가 뭉텅이로 생겨 땅 위로 뽑아 만날 수 있다는 것까지, 지난 해 사진을 보여주자. 아이들은 빨리 감자를 심고 싶다고 했다. 자주감자 색이 어떤 것인지도 보여주며 어제 익힌 '감자꽃'이 피어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시를 낭송하고 노래도 불렀다. 이제 조금씩 감자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학교 공사로 놀이터 근처에 있는 은행나무를 안타깝게도 잘라야 하는 터라 중간놀이 시간에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해서 이것저것 꺼내서 교실놀이를 할 수 있는 거리를 주었다. 투덜대며 나갈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보였지만, 아이들은 이내 교실에서 노는 시간을 즐겼다. 30분이 훌쩍 지나고 수업에 들어가려 하자 벌써 그렇게 시간이 됐냐고 되묻는다.


3-4교시는 어제 익힌 '홀소리 글자 ㅏ, ㅓ'를 익혀가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ㅏ, ㅓ'에 붙은 받침글자로 이어졌다. 홀소리 아래 받침이 들어갔을 때 들리는 소리를 듣고 떠올리며 글자를 익혀 갔는데, 아무래도 이 부분은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되풀이 해서 익혀가며 감각을 일깨우려 했다. 다행히도 그런대로 따라와 주었는데 한 번 꾸준히 가보려 한다. 나중에 홀소리 글자 공책에 크레용으로 'ㅓ'를 쓰고 관련 낱말을 찾아 따라 쓰게 했다. 조금씩 늘어가기는 한데, 여전히 빨리 손이 움직이며 흔들리는 아이들이 있다. 이것 또한 꾸준히 하면 달라지기를 바라고 있는데 아마도 그럴 것이라 믿고 가고 있다.


잘 따라와 주는 걸 다행이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점심을 먹고는 놀이터 놀이가 허용이 되고 나는 10분 동안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 보고 들어와 5교시에는 <1학년 첫배움책>에 실려 있는 자유선 그리기 1,2,3를 해 보았다. 앞서 <작은 배의 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은 그것보다 쉬워 보인다고 했다. 더구나 나비가 꽃을 만나러 가는 선을 그리고 개미가 사탕을 먹으러 가는 선을 그리고 개구리가 폴짝 뛰어 연꽃으로 가는 선을 그리는 과정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쉽게도 장난을 치며 선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낙서하듯 만들어 버리는 아이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선 그림 자체를 즐겼다.


또 이렇게 하루가 갔다. 내일은 수학교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먼저 수에 대한 감각을 확인하는 작업이 더 필요해서 오후에 한 시간동안 내일 수업을 구상하며 밑그림을 그려 보았다. 예전에는 놀이로 그냥 달려 들어갔다면 이제는 좀 더 고민하여 아이들 상태를 보려 하고 있다. 내일은 분류하고 세는 감각, 묶어 셀 수 있는 지를 확인하는 작업, 일대일 대응하여 수를 세는 법도 확인해 갈 것이다. 아이들의 상태를 정확히 읽어내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오늘 수업 끝나기 전에 정말 전래놀이인 '감자에 싹이나서 잎이나서 감자감자 쎄, 하나 빼기' 놀이를 해 보았다. 두 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해서 하나 빼는 일이 아직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는 내내 웃었다.


하~ 내일은 출근이 조금 편하려나. 앞으로 6개월간 잘 버틸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20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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