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2.)
"색깔 상관 없이 다섯 개 모아 보세요."
"선생님, 다 했어요."
"우와, 잘 했어요. 잘 하네요."
오늘은 본격적으로 하는 수학수업 전에 도형이 가득한 가베를 나눠주며 분류해 보게 하는 수업을 해 보았다. 수를 세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류과정이 거쳐야 하고 분류없는 세기는 없다는 말을 수학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첫 출발은 매우 좋았다.
"다음은, 음...모양이 달라도 좋으니 같은 색으로 모아 여덟 개 모아 보세요."
"다음은, 음...색깔이 달라도 되니 모양이 같은 것으로 여덟 개 모아 보세요."
그러자 아이들이 이번에는 모양을 만들기 시작한다. 하얀 색 사람 모양으로 여덟개를 모은 아이도 있었고 각기 다른 색깔의 삼각도형을 모아 새를 만든 아이도 있었다. 단순히 모아 보는 것만으로는 충족이 되지 않는 1학년 아이들이라 가능했던 것 같았다. 기특하고 귀여웠다. 나중에는 다영한 미션을 주어 10개~5개까지 모아보고 만들어 보게 했는데, 재미가 들린 아이들은 기차모양, 벽돌 모양, 사람 모양, 애벌래, 새, 로켓, 꽃게, 심지어 택배차까지 다양하기가 그지 없었다. 그냥 단순한 분류하는 수준의 상황만 파악하려 했다가 선생보다 나은 아이들에게 이끌려 만들고 또 만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이미 난 아이들과 수학의 도형 수업은 다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늘은 중간놀이도 없는 6교시가 있는 날. 잠시 쉬는 시간을 넉넉히 주었는데, 아이들은 저마다 재미있는 놀이감을 스스로 만들어 논다. 절대 어른들은 하지 못할 놀이를. 그렇게 4-5교시로 접어들었다. 이 시간은 낱글자 홀소리 'ㅑ, ㅕ'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첫 배움책>을 소화하고 공책에 사각 크레용으로 글자를 그리고 낱말을 찾는데까지. 불과 두 번째 시간이지만 생각보다 잘 소화해 준다. 특히 아직 한글을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잘 따라와 주는 게 대견하고 고맙다. 마지막 시간에는 선 그리기, 오늘은 '곧은 선 그리기'였는데, 역시나 아이들이 곧은 선을 그리는데 힘들어 한다. 힘을 끝까지 주어 처음과 끝이 한결 같기를 1학년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비슷하게 흉내내고 맞춰가는 아이들 모습이 참 보기좋았다.
오늘 6교시에는 다음주에 심을 감자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를 위해서는 그림책이 필요했는데, 며칠을 두고 찾아도 보이지 않고 찾기가 어려워 오늘은 아이들의 힘을 빌었다.
"자, 지금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명령을 한다."
"에잉? 명령요?"
"그렇지, 지금부터 우리 교실 그림책을 싹 다 뒤져서 그림책 한 권을 찾아주면 선물을 하나 주지."
"와, 선물이 뭔데요."
"책 제목부터 물어야 하는 거 아니니?"
"아, 선물이 뭔데요."
"책 제목 알려주세요."
"책 제목은 <감자는 약속을 지켰을까?>야. 지금부터 자, 시작!!!"
그런데 웬걸, 1분도 안 돼서 주안이가 찾아오는 게 아닌가? 점점 지독해져가는 노안이 걱정인데, 아이들 덕에 이렇게 이겨낼 수가 있으니, 천상 나는 애들하고 살아야 할 팔자인가 보다. 선생보다 정말 나은 아이들을 또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게 뭐죠?"
"감자꽃이요."
"그런데 말이야. 이 감자꽃때문에 감자가 작아진다고도 해요. 이게 무슨 말일까?"
"어, 어. 감자꽃으로 영양분이 모두 몰려서 감자가 먹을 것이 줄어들어서에요."
"와, 주*아. 딩동댕! 그걸 어떻게 알았대? 대단하다. 맞아요. 주*이 말이."
"자, 이 그림은 어디서 봤을까?"
"앞에서요."
"응, 이럴 땐 앞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앞표지라고 하는 거야. 이렇게 앞에 있는 걸 표지라고 하는데, 앞에 있으니 앞표지라고 하는 거지."
"아, 그럼 이건 뒤표지에요?"
"그럼, 맞아. 이건 뭔지 알아?"
"제목!"
"아닌데, 제목은 글이고 이 부분 말이야. 책 앞표지와 뒤표지 를 이어주는 이 부분을 뭐라고 할까? 사람 몸과 관계 있는데....이거 이거.."
"아, 책등이요."
"와, 지*아~ 딩동댕~ 맞아요. 이부분은 책등이라고 해요. 이제 책을 만날 때는 이런 이름도 알아두면 좋아요."
"잠깐, 그럼 책표지 뒤에 이 부분은?"
"...."
"속표지라고 해요."
"아~ 속표지."
그림책 <감자는 약속을 지켰을까라?>라는 책은 감자를 먹으려는 생쥐들에게 더 많은 감자를 얻기 위해서는 땅에 심어야 한다는 말을 건네며 약속을 지켰을지를 묻는 이야기이다. 우리 아이들도 다음주 텃밭에 감자를 심는다. 정말 우리 아이들과 심은 감자가 약속을 지킬까? 생쥐가 된 아이들과 감자를 심는 마음이 아마도 이런 마음이지 싶다. 오늘은 나보다 훨씬 나은 아이들과 지내며 덕보며 하루를 보낸 것 같다. 내일도 다음날도 헤어질 때까지 꼭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