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23.)
밤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출근 길에 살짝 흩날리더니 이내 그친다. 따듯한 차가 어울리는 아침이었다. 오렌지 차를 준비하고 따라주는데 이제는 아주 잘도 마신다. 처음에는 못 마시겠다고 하던 몇몇 아이들도 이제는 더 달라고 하는 정도가 됐다. 아침에 차 한 잔 안 하냐면서 내가 잠시 다른 일을 하면 이내 잔소리가 날아온다. 어쨌든 아침에 차 마시고 옛이야기 들려주면 너무나 좋아라 하고 그림책 보여줄라치면 앞으로 서로 다가 앉으려고 난리를 치고 아침 기지개 펴는 운동을 하는 것도 노래부르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루틴이 3주 만에 어느덧 완성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첫 시간. 오늘도 어제에 이어 수학의 영역에서 '분류하기' 놀이 수업을 했다. 지난날 조성실선생님이 펴낸 1학년 놀이수학 책 부록에 끼어 있던 걸 복사하여 코팅을 해 놓았던 때가 어언 6년 전이었다. 그때 고생스럽게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만든 재료를 지금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1학년은 정말 좋은 교구가 있다면 절반은 성공적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돼 버린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다양한 그림이 들어 있는 작은 카드로 분류하기를 하며 수에 대한 감각을 확인하고 높이는 수업을 이어갔다.
"자, 선생님이 나눠 준 작은 카드를 같은 걸로만 모아보세요. 대신 아주 보기 좋게 정리하며 분류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림이 같은 걸로요?"
작은 손으로 작은 카드를 손가락 하나로 옮겨 놓고 줄을 세우는 모습이 얼마나 귀뎝던지. 어떤 아이는 한 줄로 늘어 놓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단을 나누어 늘어놓기도 했다. 또 다른 아이는 세상에 모은 카드로 해당하는 개수만큼 숫자로 나타내는 게 아닌가? 어제도 기발하게 분류한 도형조각으로 택배차도 만들어내던 아이라 이 수업을 하면서 그 아이의 남다른 감각에 새삼 감탄을 하기도 했다. 다들 같은 그림으로 뷴류를 다 한 걸 확인한 다음에는 같은 모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다섯개만 다시 모아 보라고 했다. 그 다음으로는 그림이 10개가 되는 걸 찾아 한 번에 보기 좋게 놓아 보라고 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보기 좋은 늘어 놓는 게 뭐예요? 이렇게요?"
"하하하. 000 걸 따라 했네. 그걸로 무늬를 만들라는 게 아니라, 칠판을 한 번 볼래요?"
나는 칠판 쪽으로 아이들의 시선을 끈 뒤에, 쉽게 묶어서 단번에 이게 10개라는 걸 알 수 있게 늘어 놓는 거라는 걸 그림을 그려 설명했다. 그랬더니 좀 이해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러자 다양한 그림 배치가 나왔다. 다섯개, 다섯 개가 있었고 네개 네 개 두 개도 있었다. 8개로 했을 때는 2개씩 4개를 하는 아이도 있고 네 개씩 두 묶음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묶음에서는 좀 더 제대로 가르쳐 연습을 해야겠다는 진단도 내릴 수 있었다. 이렇게 여기까지 아이들과 분류에 대한 이해와 수에 대한 감각을 알아보는 수업을 해 보았다. 이런 진단활동이 정말 필요한 과정이라는 걸 1학년 네 번을 거쳐서야 겨우 알게 됐다.
중간놀이를 거치고 난 뒤 이어진 시간은 선 그리기 시간이었다. <첫 배움책>으로 잠시 뻗은 선 그리기 수업을 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스케치북이 아닌 이런 공책 같은 곳에서 좀 더 좁은 간격으로 촘촘하게 그려 나가는 걸 아이들은 매우 힘들어 했다. 내가 이전에 만난 아이들보다도 이런 지점에서는 좀 더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기도 교재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재는 교재일 뿐, 앞으로 좀 더 계획을 세워 선을 그리고 형태를 만들어 가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히 더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수업은 감자 심기에 대해 영상을 보며 심는 과정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다.
오늘 수업을 마치고 점심놀이 시간에 교실에서 곧잘 만화책을 즐겨 보던 아이가 또 꺼내들어 보려 하길래, 잠시 접어두고 나를 따라오라 했다. 그랬더니 쪼르르 따라온다. 난 일부러 00이의 읽기 상태를 알아보고도 싶어서 1학년 말이나 2학년에 문해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읽을만한 동화책 <엄마 사용법>을 건네 주었다. 아, 그랬더니 한 번 읽어 보겠단다. 그런데 웨 걸. 너무나 웃었다. 동화책을 그림 위주로 훑어 보고 있었던 것. 나는 그러지 말고 앞부분부터 차근 차근 보라며 표지설명을 해주었다. 조금 더 관심을 보이게 하려고. 그러고 나서 또 어떤가를 지켜보니 놀랍게도 20쪽까지 차근차근 읽어가는 게 아닌가? 재밌단다. 나중에는 너무도 대견해서 집에 가서 읽어도 된다고 하니 집에 가져가겠단다.
또 한 녀석은 내게 다가와 그림 그린 종이를 내민다. 공룡을 잘 그렸다고 칭찬 받은 며칠 전 기억으로 나에게 또 그림을 그려 칭찬 받고 싶어서 가져 온 것.
"선생님, 그림 또 그렸어요."
"오~ 정말? 뭘까?"
"이번에는 정말 정성을 다했어요."
"야, 정말 멋진 그림을 또 그렸네."
"이거 저 앞에 또 붙여 놓을래? 네 이름 적어서."
"아니에요. 이건 열심히 그린 거라 가져 갈 거에요."
"아, 하하. 그래 그럼."
요즘 1학년과 살다보면 정말 저 아이들의 세계는 남다르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해 관계와 눈치가 살벌(?)해지는 고학년과 다른 순수함이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고 위로해주고 힘을 준다. 날마다 별나고 특별한 아이들과 지내는 하루 루틴을 어쩌면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만들어준 것이라는 생각이 불쑥 든다. 나이 오십 넘은 나이에 이 또 무슨 성장감성이라는 말인가.
오늘은 생태지원단 회의가 있어 오후 3시부터 6시 30분까지 계속 일 하고 회의를 해야만 했다. 피곤하다. 1학년 아이들과 지내는 일도 쉽지 않은데, 이런저런 일을 하려는 게 부담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라 여기기에 한다. 이런 확신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벌써 내일이 금요일이다. 시간은 참으로 잘도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