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4.)
오늘 아침은 우리 학교 첫 다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1학년도 참가하여 입학을 축하 받고 자기 소개를 하며 전체 학년이 10모둠으로 나뉘어 각자 얼굴을 보고 만나며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아침에 차 한 잔 하고 옛이야기 중간쯤 들려주고는 곧바로 모듈러 과학실로 갔다. 이미 앉아 있던 선배들 사이로 들어간 우리 아이들은 낯선 풍경에 잠시 당황한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이내 각자 소개도 하고 인사도 하고 모둠별로 나뉘어 친교활동을 하면서 부터는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혼자만 모둠에 들어가서 겁난다고 안 가고 싶다고 한 아이도 있었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잘 어울려서 활동을 즐겼다. 시골학교라 전체 학년이 다 모여 삶을 나누고 전체 학년이 다 모여 모둠을 구성해 학교 행사에 무학년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런 관계망 속에서 또 다른 성장을 하게 정기적인 다모임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다모임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1학년 아이들의 표정은 과학실로 들어갈 와는 사뭇 다른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더구나 곧바로 중간놀이 시간으로 이어진 터라 더욱 밝아 보였다. 그런데 어제에 이어 오늘도 길고양이가 아이들 시선을 끌었다. 어제부터 나타난 태어난지 두 세 달 지난듯한 고양이가 아이들 손을 타더니 계속 찾아온다. 심지어 학교로 들어오기까지 해 끄집어 내기 바빴다. 오늘도 많은 아이들이 고양이 주변을 감쌌다. 몇몇 녀석들은 큰 상자 두 개를 가져와 고양이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고 어떤 아이는 참치와 사료를 가져와 먹여주기까지 했다. 학교측에서는 혹시나 고양이가 어제처럼 실내로 들어와 야간 방범에 방해물이 될까 걱정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저 불쌍하고 안쓰러운 고양이 한 마리를 지켜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어른 말을 잘 안 듣던 아이도, 공부가 안 돼 늘 바깥으로 도는 아이들도, 1,2학년 어린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고양이 한 마리를 둘러싸며 동정과 연민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기만 하다. 학교측 고민도 당연한데, 아이들의 마음도 어디에 가둬 둘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부디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는 말길 바랄 뿐이다. 이런 마음이 가득한 그 가운데에 1학년 녀석들 몇몇이 다리를 꼬부장하게 굻고는 한없이 고양이를 쓰다듬는데, 참 귀엽기가 그지없다. 여리고 약한 아이가 또 여리고 약한 한 생명을 보듬고 쓰다듬는 경험은 너무도 소중하다. 타인에 대한 고통, 다른 생명에 대한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게 가장 무서운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우리 아이들이 고양이 곁에 있는 게 참 좋고 안심이 된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어느새 중간놀이 시간이 지났다. 교실로 들어와서는 선 그림을 하나 그리게 했다. 오늘은 '기울어진 선 그리기' 다행이 곧은 선보다는 뻗은 선보다는 부담없이 그린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리기도 전에 한 아이가 한 마디 한다.
"아, 어렵겠다."
"선생님이 이야기 했지. 어렵겠다. 힘들겠다. 못하겠어요. 난 못해요. 하기 싫어요 같이 안 하려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나는 할 거예요."
"나도 하고 싶어요."
"맞아, 다른 친구들 말이 맞아요. 이런 말을 해야 어려운 것도 해낼 수 있어요. "
"네, 한 번 해볼게요."
"그렇지. 그런 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예쁜 말인데."
몇 년 전 고학년 아이들하고 체육을 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난 어차피 해 봐야 못해요."
"실패할 게 뻔해요. 난 안 할래요."
특히 '난 어차피'라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쓰고 있었다. 실패에 대한 자책,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체념이 어느덧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실패에 대해 책망하는 어른, 실패를 거듭하며 성공의 맛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 실패했을 때 아무도 격려하지 않았던 경험, 실패했을때 아무도 피드백을 주지 않고 괜찮아만 했을 때, 아이들은 이런 결과를 보인다. 1학년 조차 벌써부터 '못해요, 하기 싫어요. 난 원래 못해요. 꼭 해야 해요? 어렵겠다. 힘들겠다.' 이런 말들을 쏟아낸다. 한편으로는 왜 저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안 쓰럽기도 한데, 그렇다고 내 버려 둘 수는 없어 용기를 갖게 하며 작은 성취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잦은 실패의 경험이 곧 자신을 성장시키는다는 진리를 몸으로 터득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하지 않으면 고학년이 되어서 도전을 회피하게 된다는 것을 어른들이 꼭 깨닫고 우리 아이들을 돕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존 케인의 재밌는 그림책 <나는 오, 너는 아!>를 보여주었다. 함께 소리치며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너무나 재미있어 했다. 재밌는 구성에서 팬티라는 소재와 구름이 나올 때마다 자기 이름을 외치게 만드는 구성은 참으로 신기하다. 다음으로는 줄 을 한 줄로 세워 자유롭게 지나가게 하는 놀이를 했다. <일명 지퍼 열어 닫아 놀이>. 처음에는 어색해 했다. 이걸 하려면 '앞으로 나란히'도 알아야 해서 한 번 해보라고 했더니 역시나 ㅎㅎ 앞으로 끌어 안기 바쁘다. 정식으로 '앞으로 나란히'를 가르쳐 주며 서로 마주보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지퍼 열듯이 문을 열어 돌아오는 놀이를 아이들은 한껏 즐겼다.
하~ 오늘은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은 날이었다. 저녁 7시에는 우리 1학년 보호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오늘도 밤 늦게 남아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보호자여서 일한다는 느낌보단 괜히 설레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3월의 끝자락이 보이는 금요일. 23번째 우리 아이들과 만난 날을 잘 마무리 해보려 한다. 맞다. 나도 힘들지만,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아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