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같은 아이들

(2023.03.27.)

by 박진환

조금은 쌀쌀해진 월요일 아침. 꽃샘추위가 온다는 아침이었지만, 그래도 봄은 봄인 모양이다. 아이들은 밝은 얼굴로 교실 문을 열었다.


"00야, 왜 너 혼자왔어? 친구들은?"

"없던데요? 오늘 우리 엄마가 여기까지 태워다 줬어요."

"그랬구나. 아, 이제 들어오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놀이터에서 안 놀았어요."

"그래, 잘 했어. 반갑다. 이게 누구야?"


시끌벅적 아침 인사로 시작한 새싹마을. 들어오자마자 지*이가 <엄마 사용법> 책을 가방에서 꺼내 책꽂이에 꽂기 바빴다.


"지*아, 그거 다 읽었어. 그냥 선생님 주세요. 선생님이 꽂을게. 근데 다 읽었어?"

"네. 다 읽었어요."

"어땠어?"

"음...좀 슬펐어요."

"그지, 이 책이 알고보면 슬픈 이야기인데, 지*이가 정확하게 읽었네."

"그러면 엄마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어?"

"현수한테 갔으면 좋겠어요."

"그랬구나. 다른 친구들은 이 책이 뭔지 모르겠지만, 표지라도 볼래요? 여기 누굴까?"

"여자예요. 저 사람이 엄마예요."

"맞아, 그런데 표정이 왜 이럴까?"

"로봇 같아요. 살아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맞아요. 뭔가 이상해 보이는 엄마 같지."

"선생님 저도 읽으면 안 돼요?"

"음...그러지 말고...그냥 선생님이 읽어줄까?"

"네."

"여기 총 다섯 꼭지가 있으니 이번 주에 다 읽어줄 수 있겠다. 다섯 손가락 펴 볼래요?, 하나씩 꺾어 볼까? 월, 화, 수, 목, 금....딱 다섯 개 5일이면 이 책 다 읽어줄 수 있어요. 그렇게 해 볼까?"


그렇게 해서 읽어준 <엄마의 사용법>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엄마를 산다니. 엄마가 없어서 엄마 생명장난감을 산다니. 첫 꼭지부터 궁금증은 잔뜩 쌓였지만, 딱 오늘 한 꼭지라서 딱 거기까지만 읽어주었다. 아이들은 원망 섞인 목소리를 냈지만, 뭐 내일을 기대하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가볍게 몸도 풀고 율동과 노래로 입도 풀고 난 뒤에, 이번 주에 심을 감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이문구 시인의 <감자>라는 동시를 들려주고 여기에 곡을 붙인 백창우씨의 노래로 시간을 보냈다.


감자 | 이문구


씨앗은 여물어야 싹이 트는데

감자는 반쪽씩 잘라 심어도

씨눈마다 굵은 싹이 솟아오르고

어둡게 자랐어도 사이가 좋아

캘 때는 온 식구가 따라 나온다.


노래가 느린 편에다 음의 기복이 심하지 않아 따라 부르기에 쉽지 않았지만, 여러 번 들려주고 함께 부르니 제법 익숙해진 듯했다. 앞으로 두고 두고 부를 작정이다. 아이들이 그림책으로 이미 감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었던 터라 동시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다음으로는 산책을 나서는 시간. 오늘은 공사장 곁을 지나 텃밭으로 먼저 향했다. 주사님이 이미 멀칭을 다 해 놓으시고 쉬고 계셨다. 이번주에 심을 감자가 여기에 묻힐 거라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너무 좁다며 더 넓은 데는 없냐고 한다. 못 말리는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1학년 텃밭을 구경하고 가볍게 뒷산으로 가기로 했다. 뒷산 쪽은 공사장을 끼고 있어서 옆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야만 했다. 목표는 진달래꽃이 있는 곳에 가는 것. 멀리서 진달래가 핀 것을 보고 아이들과 나는 환호를 했다. 그곳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가는데, 아이들이 제법 따라온다. 진달래 가까이 가자 정말 예쁘다고 난리다. 아직 덜 핀 꽃들이 보여 다음주 수요일즈음에 할 진달래 화전이 꽤나 기대가 됐다. 진달래 곁으로 아이들을 오라고 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야말로 아이들이 진달래였다. 아이들이 봄이었고 진달래였다.


곧바로 내려와 중간놀이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놀이터로 뛰어갔는데, 교실로 들어선 내 곁으로 아까부터 민들레 꽃을 주며 사랑한다며 졸졸 따라오는 **이 이가 빠져 발음도 잘 안 되는 입으로 내게 그림책을 들고 막 부탁을 했다.


"선새니, 채...이거줘요"

"뭐라고?"

"선.생.님. 책...익어줘요."

"어 책 읽어 달라고. ㅎ"

"그럼, 읽어줘야지. 어디보자 이거 선생님이 옛이야기로 들려준 그림책이네."

"...."

"이거 한 번 읽어볼래?"

"이. 야. 기."

"에고 맞다. 맞아. 읽을 줄 아네. 이 책은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야."


이후로 **이는 내 이야기는 잘 듣지도 않았다. 글자를 막 보면서 자기가 아는 글자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그림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예쁜 사람이 없다고도 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내 이야기는 잘 듣지 않고 오로지 아는 글자와 그림 몇 장면에 꽂혀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수업에서 일반적인 글자로 감각을 익히고 다음에 청주교대 엄훈교수의 <읽기 회복 프로그램> 교재로 보충을 해주어야 할 것 같다. 부디 1학년 말에 자기 손으로 간단한 일기를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싶다. 정확한 진단을 해 봐야겠지만. **이는 나중에 책읽어준 것이 고맙다는 것인지 종이를 한 장 가져가서 편지를 써왔다. 정말 이뻐서 미치겠다. ㅎ


중간놀이시간을 그렇게 ** 책 읽어주는 것으로 보내다 보니 벌써 3교시가 됐다. 아이들과 기울어진 선 그리기를 하고 오늘의 글자 'ㅗ, ㅜ'를 익혔다. 예전보다 정말 천천히 가고 있다. 선의 굵기나 기울기가 아직은 부족해 보인다. 글자는 이제 감각이 살아나는 듯하다. 일정한 패턴에 익숙해지면 좀 더 탄력이 붙지 않을까 싶다. 한글을 아직 모르는 두 아이는 4월부터는 좀 더 시간을 할애해서 따로 가르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3월의 마지막 주 첫 월요일. 무난히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제 내일을 준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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