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8.)
드디어 기다리던 책걸상이 교실로 들어왔다. 출근하자마자 아침 일찍부터 교실이 파랬다. 새 책상과 의자가 들어온 것. 2주전에 올 거라던 책걸상이 이제야 들어왔는데, 연락도 없이 아침 일찍 오는 바람에 출근하자마자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새 책상과 의자가 들어오니 기분이 새로웠다. 그동안 1학년들에게 새 책상이 없어 6학년이 남기고 간 것을 임시로 쓰고 있었는데, 오늘 마침내 갈아치우게 된 것이다. 먼저 온 아이들 셋이 지난 책상에 들어 있던 친구들 학용품을 싹 다 제자리에 넣어 정리하고 있어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책상과 의자 높이를 아이들 키 높이에 맞춰 낮췄다. 나중에는 교무선생님과 보건, 행정선생님이 오셔 책걸상 낮추기 작업에 함께 하셨다. 덕분에 아이들이 오기 전에 모두 정리해 놓을 수 있었다.
교실로 들어선 아이들도 처음에는 뭔가 분위기를 못 느끼는듯하다 이내 책걸상이 바뀐 걸 알고 신나하며 반겼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정신은 없었지만 할 건 다하고 시작했다. 차도 한 잔 마시고 옛이야기도 들려주고 시작한 조금은 뒤 늦은 수업은 '수학' 오늘은 '초기의 수 개념'인 '수의 보존성'으로 수업을 했다. 빨강 카드와 파란 카드 열 장을 늘어 놓고 간격을 같게 하기도 하고 늘이기도 하여 수의 보존성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했다.
"위 빨강색 하고 아래 파랑색 카드하고 어느 색 카드가 더 많아 보여요?"
"파랑색이요."
"빨강색이요."
"빨강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파랑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서로 눈치 보고 틀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틀리고 맞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이미 아이들은 틀리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경험을 한 것인지, 아님 욕심과 욕망의 다른 분출인지 알수는 없지만, 나는 아이들의 반응이 아쉽기는 했다. 그럼에도 수업은 이어갔다.
"위 빨강색이 몇 개일까?"
"10개요."
"아래 파랑색은?"
"...10개다!"
"맞아요. 개수는 차이가 없는데, 어떻게 늘어 놓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죠."
오늘은 이 지점을 알게 되면 되는 거였다. 막연히 겉모습으로만 보이는 수배열이 어떨 땐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 잘못 알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배열을 잘 하면 좋다는 것. 그래서 나는 이어 임의로 배열한 6개의 수 세 가지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기 있는 동그라미 묶음은 각각 몇 개일까?"
"6개요."
"그런데 한 눈에 6개로 보이는 건 어떤 거였어요."
"1번이요."
"왜?"
"한 눈에 보여요."
"잘 안보이는 건?"
"3번."
"왜요?"
"길게 있어서 하나 하나 세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와, 맞아요. 하하."
다음으로 7개의 구슬 묶음을 보여주고 물었다.
"단번에 개수를 살릴 수 있는 건 무얼까?"
"1번이요."
"왜?"
"4개하고 3개하고 합치면 일곱개여서 단번에 보여요."
"와~ 너무 정확하게 얘기해주는데? 다른 사람은?"
"저도 1번이요."
"왜?"
"6개가 보이고 한 개 더 하니까 7개여서 금방 셀 수 있어요."
몇몇 감각이 빠른 아이들이 묶음에 대한 높은 인식을 보여주었다. 아이들과 이부분도 확인을 했다. 묶음으로 세면 좋은 점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를 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공통적인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을지라도 6 또는 8 이상의 배열을 즉각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은 묶음에 대한 인식, 즉 즉각적 인지는 더 큰 묶음의 개수를 세는 데 강력한 수단이다. 클레먼츠와 사라마(2007)는 즉각적인 인지는 수 세기를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우리 아이들에게 수 세기를 가르치기 위해 묶음 인식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내일은 본격적으로 수를 만날 텐데. 비교와 순서 짓기로 확장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중간놀이 시간에 이어진 국어시간에는 '꺾은 선 그리기'를 해 보았다. 아이들이 이건 쉽단다. 에전 <작은 배의 여행>에서 한 뾰족섬을 연상 시키는 선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x' 으로 만들기까지 하니 별 거 아닌데도 신기해 한다. 오늘은 어제 배운 'ㅗ, ㅜ'를 다지고 'ㅛ, ㅠ'를 배우기 시작했다. 되풀이 하는 패턴으로 학습을 하는데 아직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의자를 매우 불편해 하며 집중을 하지 않았다. 글자를 보며 읽는 게 아니라, 소리만 따라하는 모습도 보이고 당장 쓰고 있는 글자도 모른채 있는 모습을 보이며 학습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도 남아서 글자를 알 때까지는 놀 수 없다고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는 다른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복습을 했는데, 다시 알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결국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에 거의 글자를 알게 되었다. 사실 그것도 확실하지 않고 의심스럽지만, 일단 통과는 했다. 그때 그 아이가 한 마디를 했다.
"선생님, 이제 나가도 돼요?"
"아니, 이제 점심시간 다 끝났는데. 봐 친구들 다 들어오잖아."
"아..."
"그러게 다음에는 꼭 수업시간에 알고 넘어가. 꼭 그래야 돼."
하지만 이런 충고가 무섭게 아이는 눈이 벌게 지면서 눈물을 뚝 흘린다. 무척이나 놀고 싶었던 녀석을 붙잡아 알도록 시간을 보낸 것이 아이에게는 매우 슬픈 시간이 돼 버렸다. 1학년 담임을 하면서 늘 갈등을 빚는 것 중의 하나가 이거다. 노는 시간을 담보 삼아 조건을 내밀어 알아야 하는 것을 꼭 알도록 하는 것. 이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하는데, 앞으로 진군하는 공교육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언제까지 기다려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다려는 주되, 반드시 피드백을 해야 하고 학년을 넘어서기 전에 이 다음 학년의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는 해주지 않으면 격차를 감당 못하고 일찍 배우기를 포기하는 아이들을 지난 30년간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런 실랑이와 갈등은 이어질 것이다. 중심을 잘 잡으면서도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지 않도록 잘 조절해 나가도록 힘을 쓰려 한다. 오늘은 우리 아이들과 만난 스물 일곱번 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