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9.)
"얘들아, 이거 좀 정리 같이 할까?"
"뭔데요?"
"이거 너희들 수학시간에 쓸 재밌는 놀이도구야."
출근하자마자 나는 어제 퇴근무렵에 택배로 받은 수학교구를 꺼내 일찍 온 아이들과 풀기 시작했다. 오늘은 원래 감자를 잘라 재를 묻히는 시간이었는데, 조금 늦어진 감자 때문에 내일로 미뤘던 것. 곧이어 들어온 아이들과 나는 하나씩 교구에 쌓인 비닐을 풀어내고는 단호박 차를 아이들에게 대접했다. 차를 받아든 아이들은 이내 한 잔 더 요구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옛이야기를 요구했다.
"선생님, 옛날 이야기 해주세요."
"아, 맞다. 옛날 이야기."
"엄마 사용법도 해주세요."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는데."
"그럼,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나는 그동안 수업준비를 하느라 잠시 등을 돌리며 바빴는데, 이내 뒤에서 누가 선창을 하기 시작하자 합창 같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옛날이야기! 옛날이야기! 옛날이야기"
"알았어, 알았어. 자 오늘은 무슨 이야기 해줄까."
"재밌는 거로 해주세요."
"아냐, 무서운 걸로 해주세요."
"웃기는 걸로 해주세요."
"선생님이 해주는 옛이야기는 재밌고 웃기고 무섭고 그러지 않았나?"
그렇게 옛이야기 한 꼭지를 들려주고 수업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수학수업. 수감각을 일깨워 주는데 가장 적합한 조성실선생님의 원시인이 양의 수를 세는 이야기. 숫자가 만들어지기 전, 수에 대한 세기조차 힘들던 시절에 양을 세던 목장 주인의 이야기. 그 시절에 원시인은 어떻게 양의 수를 세었을까라는 질문에 아이들 몇몇은 이미 일대일 대응 관계로 수를 세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자기 집 양에다가요. 붓이나 연필 같은 걸로 색을 칠해 놔요."
"와~ 대단한 생각인데, 근데 그럼, 잃어버린 양을 알 수 있을까?"
"양이 들어오고 나갈 때, 작대기 같은 걸로 땅에 수만큼 그어서 알 수가 있어요."
"야, 그런 생각도 괜찮네요."
이런 저런 생각이 오가던 차에 오늘 수업을 위해 어제 만들어 놓은 양그림 카드를 칠판에 붙여 놓고 알자석을 붙여갔다. 그랬더니 아이들 몇몇이 이제야 알겠다며 손을 든다.
"양 하나에 알자석 하나. 맞죠."
"맞아요. 옛날 원시인은 이렇게 양 한마리에 돌을 하나씩 챙겨두어서 돌이 남으면 몇 마리가 우리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돌이 모자라면 몇 마리가 더 들어왔는지 알 수 있었대요."
여기서 조성실 선생님이 쓰셨던 원시인의 수 세기 방법을 알려줬더니 웃고 난리다.
"원시인이 어떻게 수를 셌냐면, 한 마리, 두 마리... 아, 많다."
"하하하."
"우리 따라 해 볼까? 한 마리, 두 마리, 아, 많~~~다."
다음으로는 아이들에게 골고루 양그림 카드를 나눠주고 바둑알을 나눠줬다. 그리고는 한 아이의 책상에서 양을 훔쳐 다른 친구 책상에 갖다 놓아 몇 마리가 사라졌는지, 양 도둑은 누구였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신나게 바둑알이 없는 자기 양을 찾아 왔다. 이렇게 되풀이 했는데, 이렇게 단순한 놀이를 아이들은 계속 하자 했다. 다음으로는 책상과 의자를 밀치고 뭉쳐 수를 만드는 놀이를 했다. 흔히 여럿이 흩어져 있다가 교사가 외치는 수만큼 모이고 탈락하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들이 먼저 예상한 만큼 서로 모여 있다가 교사가 든 수 카드(0-13_우리반이 13명라)만큼 모인 아이들에게 바둑알 하나씩 주어 가장 많이 모은 아이들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놀이였다. 한 번 쓴 카드는 다시 쓸 수 없기에 미리 예측해서 끼리끼리 모이는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때로는 놀랍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국어시간으로 어제 배운 '요, 유' 글자와 상관있는 낱말을 읽는 법과 쓰는 법을 익히고 내일 배울 'ㅡ, ㅣ'를 공책에 그리면서 마무리를 지었다. 조금 시간이 남자, 나는 어제 구입한 수 감각을 길러주는 카드 중 점 카드와 수 카드를 나눠주고 또 다른 놀이를 시작했다. 숫자가 쓰여진 카드를 펼쳐 놓고 점 카드를 뒤집어 놓아 진행하는 아이가 점카드를 넘기면 남은 2-3명의 아이가 뒤집은 점 카드 수만큼 숫자를 먼저 찾아 카드를 가져가는 놀이. 처음에 낯설어 하다 이내 익숙해졌지만, 1학년 아이들이라 여러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좀 있었다. 다음에는 규칙이라는 걸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좀 더 천천히 주지를 시키고 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학년을 네 번째 하면서 지난 세 번의 수학수업이 얼마나 부족하고 모자란 수업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수학에 대한 전문성과 지식이 모자라고 일명 아비투스라 일컬어지는 잘못 배운대로 잘못 가르치는 오류와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난 1학년 담임. 다시 1학년이 되면서 지난 3년 간 어설프게 조성실선생님과 수학공부를 해 보고 전문서적을 읽어가며 왜 3월에 진단활동 과정에서 수감각을 확인해야 하고 어떻게 확인하고 접근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와 이론을 바탕으로 수의 감각과 개념에 접근하기 위해 분류와 묶음, 1대1 대응에 이은 수세기에 대한 접근을 체계적으로 조금은 알면서 접근을 하니 아이들도 더 눈에 보이고 내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즐겁게 수학시간을 보내고 곧바로 점심시간이 이어지고 국악시간에 이은 마지막 6교시. 방과후 시간 때문에 부득이 다른 학교에서는 보기 드문 1년 6교시. 정말 수요일은 오후에 회의까지 있어 정말 힘든 날이기도 하다. 6교시까지 이어지는 통에 되도록 아이들이 덜 지루하도록 수업을 배치하지만, 쉽지는 않다. 다모임으로 쉬는 시간을 보내려 했더니 이 녀석들 안중에 없이 잔소리와 장난으로 나와 놀기만을 바랐다. 에이, 그래서 그냥 나도 포기하고 다모임은 저만치 밀어버리고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동화책 <엄아 사용법> 세번째 이야기를 들려줬다. 얼마나 진지하게 듣던지. 조립을 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엄마때문에 슬퍼하는 현수. 그 뒤로 파란사냥꾼에게 쫓기는 불량 장난감 고릴라의 이야기에서 멈추자 다들 원망하기 시작한다.
사실 난 올해 만난 아이들이 이야기를 즐기는 아이들이라 참 좋다. 이야기를 즐기는 아이는 분명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성장과정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폭이 누구보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과 내가 우리들 만의 서사, 우리들 만의 이야기를 일 년동안 만들고 싶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 아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