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30.)
"얘들아, 우리 친구들 오기 전에 씨감자 가지러 가자."
"야~~ 감자요? 어딨는데요?"
일찍 온 아이들 셋과 학교 비닐하우스에 있는 씨감자를 가지러 갔다. 텃밭에 가서 얼마나 심을 수 있을지 수를 대강 알아본 다음 씨감자와 칼을 챙겨 교실로 갔다. 돌아와 아이들을 기다리자 이내 들어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오늘의 차(ABC)를 마시고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옛날이야기, 아님 동화를 읽어달라고 했지만, 원래 하던대로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화수분'이야기.
"얘들아, 너희는 화수분이라는 거 알아요?"
"아니요? 하수분이요?"
"아니, 화수분. 따라해보세요. 화! 수! 분! 화수분이라는 건 어떤 허름한 그릇에 뭐 하나를 넣으면 무엇이든 계속 가득차서 나오는 걸 말해요."
"와, 좋겠다."
"좋겠지, 너희는 화수분을 가지고 있다면 뭘 가지고 싶어?"
저마다 가지고 싶은 걸 꺼낸다. 돈, 금, 닌텐도, 초콜릿... 아이들다운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어 확인할 때면 늘 느끼지만, 아이들을 조금씩 알게 되는 면이 있다. 특히 오후 시간에 있었던 <엄마 사용법>에서 더욱 그랬다.
"와, 엄마 사용법이다!"
"선생님, 저 엄마 사용법 샀어요."
"으잉? 왜? 읽고 싶어서요. 서점에 가서 샀어요."
"저거 서점에 팔아?"
"응, 저거 비싸. 만원이 넘었어."
"자, 오늘의 이야기는 파랑 사냥꾼! 한 번 들어보세요."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 병문안을 간 현수가 조용히 있기만 하는 생명장나감 엄마를 데리고 가서 벌어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아버지는 현수가 생명장난감 엄마가 자기가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하자 물었다. 너는 어떤 엄마를 꿈꾸고 있냐고. 그것에 대한 답을 얻기 전에 나는 아이들에게 먼저 물었다.
"너희는 어떤 엄마를 생각하고 있니?"
"친절한 엄마요. 우리 엄마는 친절해요."
"나는 우리 엄마가 나한테 뭐든 걸 다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우리 엄마가 혼내지만, 그래도 좋아요."
"맞아, 그지. 왜 그럴까?"
"그냥 좋으니까."
"맞아, 엄마니까."
"저는요, 우리 엄마가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장난치고 말을 안 듣는데?"
"우리 엄마는 그래도 나한테 잘 해줄 거예요."
엄마란 존재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남아 있고 기대하는지 잠시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혹은 동화나 그림책을 읽다가 때때로 옛이야기를 할 때면 이렇게 아이들 마음을 물어 볼 때가 있다. 책에서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 책이라는 것이 이런 장점과 지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에 어른들의 '책 읽어주기'가 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그래서 영상을 보여주고 게임기를 갖다주고 폰을 손에 쥐어주는 것보다 훨씬 귀하고 소중한 일이다.
첫 시간은 어제 하지 못한 씨감자를 만나고 잘라 재를 묻혀 하루동안 묵히는 작업을 했다. 시작은 노래로 했다. 엊그제 이문구 시에 곡을 붙인 '감자'를 했다면 오늘은 이원수 시에 곡을 붙인 '씨감자'를 가르쳐 주었다. 편곡이 재밌게 돼 있어 아이들이 즐거워 했다.
씨감자(이원수 시, 백창우 곡)
감자씨는 묵은 감자/ 칼로 썰어 심는다.
토막토막 자른 자리/ 재를 묻혀 심는다.
밭 가득 심고나면/ 날 저물어 달 밤
감자는 아픈 몸/ 흙을 덮고 자네.
오다가 돌아보면/ 훤-한 밭골에
달빛이 내려와서/ 입 맞춰 주고 있네.
실컷 노래를 부르고 난 뒤에는 실물화상기에 씨감자 하나를 공책 위에 놓고 따라 그리는 것을 시연했다. 위에는 제목 씨감자를 아래에는 풍성하게 감자를 얻게 해달라고 '약속을 지켜줘'라는 짧은 글을 따라 쓰게 했다. 그런데 제법 쓴다. 그림도 그렇고...이렇게 마무리를 지은 다음에 아이들에게 신문지를 책상 위에 하나씩 놓게 하고 바르게 앉은 아이들부터 씨감자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칼을 쥐게 하고 조심스럽게 자르도록 했다. 1학년에게 칼을 쥐어줘 씨감자를 자르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다가 옆에서 안내하고 조심스럽게 하면 되지 싶어 했는데, 예상한대로 매우 잘 해주었다. 아이들은 씨감자를 자르는 경험을 스스로 했고 재도 묻혀 하루 묵히는 과정을 모두 해냈다. 이제 내일만 기다리면 되었다.
3-4교시에는 둥근선 그림을 그리고 어제 배우다 못한 'ㅡ, ㅣ'를 익혔다. 아직 글씨를 쓰는 힘이 부족해 보인다. 다음주부터는 공책에 연필로 글자를 쓰는 연습과 과제도 내 보내야 할 듯하다. 1학년 때부터 제대로 글씨를 쓰지 못한 아이들이 6학년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를 너무도 잘 봤기에 차근 차근, 천천히, 예쁘게 쓰게 하려 한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지만, 끝까지 해 낼 수 있도록 했다. 무엇을 하면 끝까지 잘 마무리 하는 습관을 가지게 하는 것. 이 작은 루틴이 6년 뒤의 모습을 달라지게 할 거라는 걸 알기에 마무리를 잘 해내려 했다. 3월도 이제 내일이면 끝이다. 오늘은 스물 아홉번째 우리 아이들을 만난 날. 이 아이들과 남은 8개월을 흘륭히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