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심은 3월의 마지막 날

(2023.03.31.)

by 박진환

"선생님, 이 정도면 돼요?"

"선생님, 이거 봐주세요."

"선생님, 다 했어요."


올해 첫 우리 1학년 밭골을 찾아 감자심기를 시작하는 날.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이 정도면 됐냐고 확인을 요청하는 말들이 줄을 지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법 깊게 파는 아이들도 있었고, 파도 파도 제자리인 아이들도 있었다. 다행인 것은 모든 아이들이 열심히 자기에게 주어진 두 개의 씨감자를 심는데 아주 애를 썼다는 것. 그렇게 심고 심어서 물을 주는데까지 이어졌다. 번호 대로 한 명씩 물을 주게끔 했는데, 다들 신기해 하면서 힘들지만 재미있어 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두 번의 6학년들과 아주 다른 풍경이었다. 하기 싫어서, 흙조차 만지기 싫어서, 딴죽을 피던 상당수 아이들의 모습, 감자종류조차 모르고 심고 난 뒤에 관심도 없던 아이들과 사뭇 달랐다.


6년간 생태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라면 분명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감자를 심더라도 해마다 다른 지식과 경험으로 위계를 짓는 방식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여전히 든다. 올해부터라도 이런 지점은 당장 바뀌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오늘로 3주간 이어진 감자심기 과정은 1단락을 지었다. 감자에 대한 지식과 감성을 높이려고 그림책 세 권을 거쳤고 시를 네 편 만나고 노래도 부르고, 동영상으로 감자를 심는 모습을 사전에 익히면서 오늘 심기까지, 일련의 활동이 모두 아이들에게 유익한 경험과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그림책 제목처럼, 풍성한 수확으로 감자가 약속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앞으로 가꾸면서 감자꽃과 잎을 관찰하면서 그 약속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우리 아이들을 지켜 볼 것이다.


감자를 다 심고 중간놀이 시간이 이어지고 다시 교실로 돌아와 나는 다음주 주간학습시간표를 인쇄했다. 곧바로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왔고 시작은 <첫 배움책>의 선 그림을 마무리 하는 것으로 시작을 했다. 동그라미를 일정한 틀에 가득차게 그리는 시간. 저마다 자신의 감성으로 4각의 틀에 꽉 차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후에는 미처 다 하지 못한 'ㅣ'와 관련된 낱말을 공책에 쓰고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했다. 이제 제법 익숙하지만, 아직도 예전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대충하는 아이들이 꽤 많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근차근 가려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아 앞으로 잔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도 했다. 오늘 활동 중 '인어'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이 서로 논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더 잘 그린다는 논쟁. 내가 보면 도긴개긴인데, 정말 어이가 없이 웃었다.


"왜 웃어요?"

"응? 뭐..."

"이거 봐요. 선생님보다 내가 더 잘 그렸죠. 인어."

"뭐? 봐봐. 선생님이 더 잘 그렸지. 뭐."

"아니에요~ 내가 더 잘 그렸어요."

"뭐 그렇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히~"


실 없는 말들이 이어지면서 아이들은 어느덧 'ㅣ'라는 글자 사이로 각종 낱말과 그림으로 공책을 가득 채웠다. 어느덧 홀소리의 기본글자들을 마무리 했다. 다음주에는 공책에다 이 글자 쓰는 법을 다시 익히면서 바르게 글씨를 쓰는 연습과 홀소리 복습을 시키려 한다. 다음주부터는 숙제도 내줄 생각인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참! 오늘 3-4교시 수업 하기 전에 아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엄마 사용법>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생명장난감이었던 엄마가 엄마가 없는 주인공 아이의 피 한방울을 가슴에 받아 안으면서 마음이 생겼고 그것으로 진짜 엄마처럼 되었다는 이야기. 때론 슬프기도 하고 때론 웃기도 하면서 한 편의 동화를 일주일간 우리 아이들은 아주 즐겁게 만났다.


"여기 주인공은 더 이상 회사에서 나온 엄마사용법을 쓰지 않고 버렸지. 왜 그랬을까?"

"이제 엄마랑 어떻게 지내야 한다는 걸 알아서요."

"엄마랑 어떻게 지내야 행복하다는 걸 알아서요."

"맞아. 정말 너희는 어떻게 이런 걸 아니?"

"우리는 엄마가 있잖아요."

"맞아, 엄마가 있지. 너희에게는. 그러면 너희는 어떻게 엄마를 사용해? 어떻게 엄마를 대하면 너희가 바라는 엄마 모습이었니?"

"저는요. 청소를 깨끗하게 하면 간식도 주고 칭찬해 줘요."

"난 엄마 심부름을 해주면 우리 엄마가 나한테 잘 해줘요."

"난 엄마한테 애교를 부리면 내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줘요."

"애교?"

"윤*가 애교 부릴 줄도 알아?"

"네."

"한 번 보여줄 수 있겠어?"

"..."

"한 번 친구들 앞에서 해줘봐. 어떤 애교인데?"

"춤을 춰요."

"춤을? 하하하."


그랬더니 윤*가 정말 와서 춤을 추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니 샘이 났는지, 나머지 아이들도 자기도 애교를 보여줄 수 있다며...그래서 보여달라고 했더니 멍석을 깔아주니 어찌나 발을 빼던지. <엄마 사용법>이라는 동화 한 편으로 엄마에 대한 생각과 엄마를 대하는 생각들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 아이들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담겼길 바랄 뿐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동화를 읽어준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앞으로도 곧잘 동화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 서른번째 날이었다. 입학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다. 무사히 한 달을 보내서 다행이다. 앞으로 더 바쁘고 힘든 일이 많을 텐데...3월처럼 잘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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