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환 Jul 10. 2024

집에 가져 가고 싶은 것

(2024.7.10.)

아이들 돌봄실로 보내고 청소하고 주문했던 물품이 와서 벽에 아이들 공책과 책으로 만든 작품 붙이는 (아빠)챠트를 유리창과 교사 사물함 일부에 붙였다. 며칠 전 우연히 인터넷 쇼핑몰에서 양면테이프 클리어 겔이라는 걸 발견해 숙원 사업(?)이었던 챠트를 마침내 붙이게 됐다. 이 겔이 물론 오래 전부터 있었던 건 알지만 무거운 것도 가능한지, 떼기도 쉬운지 하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 업체 선전에 떼기도 어렵지 않고 무거운 것도 가능하다고 해서 구입했던 것. 어쨌든 내일부터는 아이들 공책 일부는 챠트에 꼽아 놓고 써도 되겠다 싶다. 아울러 아직 교실 문에 반투명 시트가 붙여지지 않아 늘 아쉬웠는데, 이걸로 당분간 대신해도 되겠다 싶었다.


이것만 했는데도 벌써 한 시간이 지나고 이제 일기를 쓰자고 밴드에 들어오니 우리 학교 북스타트에 수*어머니가 글을 올린 걸 뒤늦게 발견하고 읽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는 다시 예전 글을  훑어보니 지난 일 년이 헛수고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학교 도서관이 2년째 들어서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 언어교육을 강조하는 거산의 새로운 교육과정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북스타트' 활동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사업이었다. 아무리 새 건물을 지어도 교육과정이 부실하면 그야말로빛 좋은 개살구요, 빈 껍데기로 학교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교육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보호자분들이 도와주시고 공감해주시고 함께 애써 주셔 학교에 도서간이 없는 현실을 어느 정도 보완을 할 수 있었다.


이래저래 생각을 하다 이렇게 일기를 쓴다. 오늘은 장염으로 며칠동안 학교로 오지 못한 수*가 오는 날. 수호는 밝은 얼굴로 나를 보자마자 안기며 그동안 학교 오지 못한 아쉬움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반처럼 12명 밖에 없는 교실은 한 명의 부재도 매우 크다. 내일 먼 여행에서 돌아오는 예*주까지 오면 비로소 일주일만에 다시 한 반의 모양새를 갖출 듯하다. 오늘은 통합교과 운동 시간. 걷는 놀이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도 간단하고 우리 아이들 수준에도 미달하는 내용이어서 간단히 움직여보고  공을 튀기며 반환점 돌기, 공을 서로 주고 받기로 시간을 보냈다. 어찌나 재밌어 하던지. 그 전에 나는 오랜만에 아이들과 산책을 나섰다. 비가 온 뒤라 산책하기도 편했다.


한 달 전에 유치원 앞 좁은 화단에 심어 놓은 입학선물로 바든 꽃들을 먼저 보러 가자 했다. 다행스럽게도 어찌나 쑥쑥 잘 크고 있던지. 나중에 겨울에는 다시 옮겨 심어야 하는 생각조차 들 정도로 너무도 잘 커주었다. 아이들도 자신의 꽃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에 환호를 질렀다. 녀석들은 심어 놓고도 잘 찾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하긴 나도 살펴보지 못한 건 마찬가지니. 뒤로 텃밭을 둘러보는데, 아이들 몇몇이 지렁이를 마구 잡아와 내 눈 앞에 내민다. 어른도 잡기 어려운 지렁이를 우리 반 아이들은 쑥쑥 잡아 손 위로 올린다. 지렁이의 유익한 점도 알아 곧바로 놔주는 아이들. 우리 학교에 보호자들이 보낸 이유는 바로 이것에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지적인 발달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발달도 도와주고 싶었던 그 마음 말이다. 딱 맞게 커주는 아이들인 것 같아 기분도 덩달아 좋았다.


3,4교시에는 어제 만들어 놓은 겹받침 사전으로 내용을 채워가는 시간으로 보냈다. 어제 익혔던 겹받침 ㄳ, ㅄ, ㄵ, ㄶ, ㄺ, ㄻ, ㄼ, ㄾ, ㅀ을 다시 살펴가며 사전에 담아내었다. 사전 한 쪽마다 한 겹받침을 쓰고 거기에 맞는 낱말을 쓰고 뜻을 글로 쓰게 하거나 그림이 있으면 그리게 하면서 위 모든 글자를 사전에 채워 나갔다. 그러다 보니 준*가 한 소리를 지른다. "야, 이거 재밌니 않아?, 그지?" 그러자 옆에 있던 승*가 맞장구를 친다. "어, 재밌어." 그렇게 한 쪽마다 채워 가게 하고 도울 아이들을 살피는데, 재*이가 내가 한 마디 건넨다.


"선생님, 이거 가져가면 안 돼요?"

"왜?"

"집에 가져 가서 보고 싶어서요."

"하하. 일단은 학교에서 봐. 2학기 때 집에 가져 갈 수 있도록 할게."

"아, 가져 가고 싶은데."


학습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 재*이가 집중하는 지점은 배울 때 놀이형식으로 하는 때다. 그때는 잘하든 못하든 신 나게 한다. 매우 적극적이다. 이런 기운을 잘 살려 가면 좋겠는데, 쉽지 않아 보아 안타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그나마 학교에서 이렇게라도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한데...어느 덧 마지막 시간까지 해서 오늘 하고자 한 양을 모두 채웠다.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힘들어 했지만, 다들 뿌듯해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에 유리에 붙인 챠트에 아이들 작품을 꽂아 두니 그럴 듯하다. 내일은 이 모든 챠트에 그동안 아이들이 학습한 결과를 채울 생각이다. 하~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이제 여름방학까지 불과 2주 밖에 안 남았는데, 평가에 각종 업무에 숨이 턱턱 막힌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129일째 되는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끙끙 끙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