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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l 09. 2024

끙끙 끙끙

(2024.7.9.)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고 학교는 비 때문에 난리다. 공사 뒤 비가 마구 내리면서 곳곳에서 빈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장교감샘들은 분주히 학교 안팎을 돌아보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지난주 만나 뵌 퇴임 교장샘은 학교 상황을 전하니 자신의 학교는 예전에 신축 뒤에 4년 동안 곳곳에서 비 새는 걸 막아야했다며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 걱정을 한다. 거산 건물이 안 착이 되려면 2-3년은 족히 걸릴 듯하다. 그때는 나도 떠나야겠지.


어제부터 차가 말썽을 피웠다. 야근을 하고 쏟아지는 비를 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출고한지 3개월 밖에 안 된 차의 계기판이 온통 난리를 피우며 작동을 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나마 나아져지만, 엔진 쪽에 경고등이 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출고한지 얼마 되지 않은 차가 이렇게 되니 마음도 몹시 불편하다. 뽑기를 잘 못한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하나.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게 더 걱정인데, 조퇴를 해서 학교 인근 서비스센터에 오니 당일 접수는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단다. 덕분에 학교에서 할 일을 고객센터에서 하고 있다.


오늘 첫 수업은 겹받침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지난주 겹모음에 이어 겹받침. 익히 한글을 익힌 아이들에게는 크게 어렵지 않지만, 그래도 어려운 게 이 겹받침이다. 상황에 따라 읽는 소리가 달라지니 처음인 아이들에게는 마냥 외워야 할 것들이다. 그럼에도 하나 하나 설명을 하며 같이 읽고 쓰고 쓰임을 알아보았다. 그때 때때로 집중하며 다른 아이들이 읽어내지 못한 부분을 짚어서 묻는 지*이가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질문이 있어요."

"응, 뭔데?"

"근데, 왜 '않고'를 '안고'라고 안 읽고 '안코'라고 읽어요?"

"와, 좋은 질문이네. 다른 친구들은 못 본 걸 알아챘네. 맞아요. 지*가 묻는 건 매우 중요한 건데, 이렇게 겹받침 끝에 ㅎ이 있고 뒤에 ㄱ이 있으면 섞어 'ㅋ' 소리가 나게 읽어요. 지*아, 대단해요."


그냥 한 질문에 갑자기 칭찬을 받으니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라니. 요석들은 이럴 땐 다 귀엽다. 그렇게 겹받침을 두루 살핀 뒤에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북아트 접기 방식 중 보일러 접기를 사용했다. 이번에는 4절지가 없어서 8절지를 사용했는데, 오히려 1학년에게는 8절이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8조각이 나는 종이를 어긋나게 가위로 잘라 접어 책 하나를 만들고 두 개를 더 만들어 풀로 붙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머메이드지로 표지를 만들었다. 표지에 자기 이름을 써서 '00의 겹받침 사전'을 표시하고 책 등에도 쓰게 했다. 테두리를 꾸미고 마스킹테이프를 붙여 꾸며보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게 했다.


역시나 설명을 이렇게 하고 안내를 하며 실물화상기까지 띄워 하나 하나 설명했지만, 약 절반의 아이들은 방황하기 시작했다. 표지 이름에 예로 든 내 이름을 따라 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제목을 빠뜨리고 쓰는 아이, 테두리 꾸미기를 테두리에 하지 않고 가운데로 그려 나가는 아이까지, 두루 두루 다시 지도를 해야 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어서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이들도 끙끙, 나도 끙끙이었다. 그럼에도 우여곡절 끝에 도우미 선생님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사전을 만들어 냈다. 이제 내일은 사전 안에 오늘 배운 겹받침을 쓰면서 내용을 채울 예정이다. 어쨌거나 아이들이 재밌어 하니 다행이다.


3교시에는 연극수업이 이어졌다. 연극선생님은 2학기부터 하게 될 연극 두 가지 극본을 들고 오셨다. 아직 읽기가 원활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무리로 보였지만, 함께 읽으면서 극본의 맛을 익혔다. 읽기 교재로 삼겠다고 연극선생님께 파일로 달라고 했다. 2학기때 극본을 읽고 대사를 외워 연극으로 올릴 모습이 기대가 됐다. 3교시에는 현관 문 넘어로 반가운 손님이 보였다. 바로 내가 너무도 존경하는 동화작가 '송언'선생님. 그야말로 10년만의 만남이다. 2학년에 작가초대수업으로 내가 섭외를 했는데, 오늘이 그날인 것. 15년 전에도 거산에 왔다는 송언작가님은 거산이 이렇게 바뀌었냐는 듯 웃으신다. 10년 전에만 해도 빡빡 깎은 스포츠 머리에 콧수염을 기르쳤던데, 세상에 흰머리를 치렁치렁 길게 풀어해치고 오셔 깜짝 놀랐다.


내 손을 굳게 잡아 악수를 하시며 웃으시는 송언작가님의 얼굴은 꽤나 건강하게 보이셨다. 2학년과 작가와의 만남을 마치고 서둘러 또 다른 만남이 있으시다고 가볍게 인사만 하시고 급하 떠나셔 아쉬웠다. 또 연락드리겠다는 말로 나 또한 인사를 대신했다. 점심을 먹고는 아이들과 나는 마지막 시간을 노래 부르는 시간으로 보냈다. 그것은 바로 백창우 곡의 '비가 온다'였다.


비가 온다 둑둑 비가 온다 둑둑

두두둑 두두둑 두두둑 두두둑

갑작이 비가 온다~

좍 좍 두두둑 좍 좍 두두둑

갑자기 비가 온다~

개가 운다 낑낑 개가 운다 낑낑

끄그긍 끄그긍 깨개갱 깨개갱

무서워서 개가 운다~


아이들과 부르는데,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이 음이 안 맞는 지라 그냥 크게 부르는 것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 외워 부르는 친구들에게는 잠시 산책할 시간을 주겠다고 하니 어찌나 집중을 하던지. 세 명의 아이들은 산책권을 얻어서 잠시 시간을 보냈고 나머지 아이들과 주구장창 비 오는 날에 이 노래를 불렀다. 정말 오늘은 여러가지고 끙끙 거리는 날이었다. 고장난 차도 끙끙...너무도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도 끙끙...힘겹게 때론 즐겁게 뱅는 아이들도 끙끙... 이런 끙끙들이 조만간 해소가 되길 바라고 있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128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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