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글쓰기

- 학교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글쓰기를 만날까?

by 박진환

새학년을 시작하는 어린이들을 만날 때면 늘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는 쓰기의 갈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일기였다. 한동안 일기를 어린이들에게 쓰게 하고 글쓰기의 기본으로 삼아왔다. 다른 나라에는 흔히 볼 수 없는 교사의 일기쓰기 지도는 아주 오랫동안 은연 중 당연시 여긴 한국 초등학교 교사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저학년 국어교과 정도에 실려 있는 일기가 전학년에 걸쳐 학생과 교사에게 잠재적 교육과정처럼 다뤄진 것은 한국 초등학교의 오래된 관행이었다. 심지어 학교는 일기로 상장을 주고 평가까지 하였다. 그러던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은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관행 개선되어야'한다는 권고사항이 교육부를 거쳐 온 나라의 학교로 전달이 되었다. 이런 권고가 지나치게 기계적이고도 일방적인 통지가 돼 학교에서 일기지도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문제가 있었다. 다만 그동안 일기가 어린이들의 가장 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의 형식이라 것을 너무도 가볍게 본 어른과 교사들에게는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필자 또한 어린이들의 소중한 일기 내용이 서로 공유되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는 점에서 큰 반성을 하게 됐다. '일기'에 대한 깊은 성찰은 아무리 가르침의 대상인 어린이라고 할 지라도 어른인 교사가 함부로 보고 판단할 권한은 없는 글쓰기의 갈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쓰기에서 자기 삶을 글로 써내는 서사문의 갈래 가운데 '일기'가 가진 가치와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갈래의 글쓰기 지도는 물론 교실에서 어린이들의 삶을 읽고 돕는데 이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일기'보다는 '생활글'이라는 말로 바꿔 지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담임의 판단과 설득으로 모든 글을 공개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어린이들의 의견을 더 존중하여 공개할 글과 나눌 글을 가르고 굳이 교사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글은 생활글장에 쓰지 않게 했다. 굳이 썼다면 표시를 해두어 어린이들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저학년의 경우에는 '일기'라는 표현을 써서 지도의 갈래로 뚜렷이 삼아서 구분을 지어 오랫동안 실천해 왔다.


꽤 오랫동안 필자는 어린이 글쓰기를 다룰 때면 서사문부터 다루어야 한다는 이오덕선생님의 가르침을 일찍부터 따랐다. 어린이들의 삶이 시간과 장소, 혹은 생각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글로 일기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 해마다 일기를 처음 받아볼 때면, 대부분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제목을 안 쓰거나, 날씨를 단순히 '맑음', '흐림', '비'로 표현한다. 서술방식도 시간의 흐름대로 쭉 나열하거나 대화글 하나 없이 밋밋하게 사건 위주로 쓴다. 더구나 주어와 서술어 관계도 맞지 않거나 한 문장이 너무도 길 때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읽는 이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아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습관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를 잘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글을 쓰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6학년이 돼도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되는 데는 어릴 적부터 만나는 쓰기를 만나는 어린이들의 환경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1학년을 맡아 담임을 하면서였다.

IMG_4728.jpg

1학년 어린이들은 말을 하고 글을 읽고 쓰는 모든 과정을 즐긴다. 자기 말만 할 것 같은 1학년 어린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동화를 읽어주면 얼마나 듣고 싶어하는지는 실천해 본 많은 교사들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국어교과의 기능영역인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는 이렇게 어린이들 몸 속에 뒤섞여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제 몫을 해 낸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들은 네 가지의 언어 기능 중에서 흥미를 보이며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유독 힘들어하는 지점에 읽기와 쓰기가 있다. 읽기가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쓰기는 더욱 어렵다. 1학년부터 1학기 때부터 한글의 낱자를 공책에 써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도 많은 어린이들이 이미 연필 잡는 법조차 잘못돼 있어 한 해 내내 가르쳐도 고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강요된 글쓰기나 빠른 글쓰기 습관이 소근육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어린이들의 연필쥐는 법을 망가뜨려 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받아쓰기와 의미없이 되풀이 해서 쓰는 과제나 학습에서 어린이들은 쓰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초등 국어교육에서 쓰기교육과정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매우 단편적이고 기계적으로 배열만 돼 있지 모든 과정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지도하는 체제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많은 교과를 다루어야 할 초등교사에게 글쓰기는 매우 어려운 영역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글쓰기에 대한 전문적인 연수나 실천을 경험한 교사들을 학교에서 찾기란 힘들었다. 꽤 오랫동안 학교에서는 글쓰기를 경쟁의 도구로 삼아 시상을 하는 한 영역으로만 삼아왔던 터였다. 따라서 많은 어린이들은 오랫동안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쌓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초등논술'이라는 해괴한 글쓰기 교육 용어가 입시라는 명분을 등에 지고 학교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어린이들의 삶은 글쓰기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어린이들의 삶도 또 다른 지점에 글쓰기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이제는 글쓰기가 공부의 결정적인 요소라며 기법으로 제공이 되면서 안타깝게도 어린이 글쓰기는 삶의 도구가 아닌 학습의 도구로 여겨지게 됐다. 필자는 글쓰기 교육과 어린이의 삶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눈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다음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국어교육과정에서 쓰기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분석하여 보고자 한다. 가능하면 다른 교육과정에서 쓰기가 다루어지고 있는 부분도 살펴볼 생각이다. 꽤 어렵고 긴 작업이 될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어린이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