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쓰고 싶어요

(2024.8.20.)

by 박진환

개학한 지 이틀 째다.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교실 뒤편을 바라보며 들어온다. 다락방이 한동안 아이들의 공간이 될 게 뻔했지만, 막상 아이들 행동과 모습을 보니 우습다. 날씨까지 더워 아이들이 밖에 잘 나가지 않은 탓에 오늘 내내 교실 다락방은 큰 역할을 해주었다.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크고 멋진 공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2학년도 3학년도 심지어 6학년도 부러워 하며 지나가거나 들러서 본다.


오늘은 아침에 2학기 첫 차를 마시는 날이기도 했다. 흑두차를 건네며 책도 한 권 읽어주었다. 책 제목은 <내 짝꿍 최영대> . 너무도 오래된 책이지만, 오늘 이 책을 꺼내 든 건 오늘 짝을 바꾸고 자리도 옮기자는 아이들 요구 때문이었다. 책을 절반 정도 읽고 나중에 집에 가기 전에 마저 읽어주었다. 27년 전 이야기라 지금에는 안 맞는 풍경과 문체가 살짝 낯설기도 했지만, 약한 아이 영대에 대한 아이들의 공감은 꽤 컸다. 이럴 때면 성선설을 믿게 되곤 한다.


오늘 주로 할 것은 2학기의 핵심 학습 주제인 읽고 쓰기를 위해 문장을 어떻게 만날지에 대한 점검과 기초를 다지는 것이었다. 내가 주로 쓰는 접근 방법은 하루에 한 문장씩 쓰게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말을 해서 문장의 윤곽을 잡아야 한다. 이것을 한 달 내지 한 달 반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잘 따라주는 아이는 어렵지 않게 일기쓰기의 세계로 진입을 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문장과 친숙해지는 과정으로 양철북에서 나온 <어린이시 따라쓰기>로 어린이시를 낭송과 암송도 하면서 글씨체도 점검하고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 끝으로 김영주교장의 <어휘 맞춤법 띄어쓰기> 책을 내 수업 방식에 맞게 바꿔 공책으로 만든 <맨 처음 글쓰기>로 어휘와 문법으로 접근하여 문장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긴 문장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을 밟는다. 이 과정을 잘 따라온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은 꽤나 높았었다.


오늘 그 첫 시간으로 먼저 1학기 때 살짝 점검했던 <어린이시 따라쓰기>를 꺼내어 시작했다. 오늘의 시는 '비'. 세 줄짜리 어린이시를 읊고 암송하며 따라 써보게 했다. 나중에는 암송한 것을 공책에 옮겨 써보게 했는데, 처음에는 힘들어 하던 아이들이 제법 옮겨 쓰기 시작했다. 맞춤법도 틀리고 띄어쓰기도 엉망인 아이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문장으로 암송한 것을 옮겨 쓸 수 있는 것을 보니 대견하고 2학기 학습의 발전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더구나 오늘 너무도 기뻤던 건, 1학기 때 글 한자 읽기 어려워 했던 다*이가 제일 먼저 완벽하게 글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암송한 것을 그대로 글로 옮겼다는 거였다. 크게 놀란 나머지 축하를 해주고 하이파이브도 해주고 새우깡도 통째로 한 봉지를 건네주며 칭찬해주었다. 1학기 말에 가능성은 있었지만, 방학 때 3주만에 가정에서 큰 노력을 해주신 덕에, 본인도 노력한 덕에 너무도 큰 성과가 있었다. 이제 읽기 유창성만 자유로워지면 제법 높은 문해력을 보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렇게 하고 난 뒤에는 하루 한 문장 쓰기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게 하고 말을 하게 했다. 내가 쓰고 싶은 문장을 말로 하게 하였는데, 저마다 한 마디씩 하였다. 그때마다 아이들 입에서 나온 말은 "선생님, 이렇게 쓰고 싶어요."였다. 난 이 말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그렇게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 학년을 거듭해서 올라가며 쓰기에는 수학만큼이나 담을 쌓는 아이들의 입에서 물론 아직 1학년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이렇게 쓰고 싶다는 말을 한다는 게 너무도 반갑고 고맙기만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문장과 오늘 있었던 아침의 일을 돌아보며 한 마디씩 하게 했는데, 그걸 또 문장으로 아이들은 써내었다. 틀린 글자는 바로 잡아 주고 다시 쓰게 해서 오늘의 한 문장을 처음으로 완성해 보았다. 다행히도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단다. 앞으로 갈 길이 멀고 쓸 게 너무도 많은데, 시작을 이렇게라도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12월이 됐을 때도 "선생님, 이렇게 글을 쓰고 싶어요!"라고 말을 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170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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