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들과 사는 하루

(2024.8.28.)

by 박진환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도서관 관련 조명공사가 들어오고 담당자인 나에게 물으러 오고 관련 비품 구입에 혼선이 있어 품의종결처리하고 그걸 다시 고려해 다시 주문하고...오전 틈나는 대로 나는 업무를 보아야 했다. 어쨌든 2년 동안 잠들어 있는 거산 은행나무 도서관을 한 달 내로 깨워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이젠 딱 한 달이 남았다. 독서교육지원단 보호자들과 함께 움직일 거라 크게 걱정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주 업무자가 나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고 일도 잔뜩 밀려 있는 터라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좋은 도서관을 학교 도서관을 선물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들어도 애 쓰고 있다. 아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오늘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침 시간은 하루 한 문장 쓰기. 앞으로 한 달 동안 이어질 활동이다. 한 열흘 가까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조금씩 적응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은 예*가 행정실에 아침 일찍 머물러 있던 나를 찾아와 반기더니 교실 들어가기 전에 한 마디 한다.


"선생님, 저 오늘 지금 하루 한 문장 쓸 거 생각했어요."

"정말? 뭔데?"

"버스에 타서 일어난 일이에요."

"버스, 버스에 탔는데?"

"어 버스에 탔는데 맨 뒷자리에 앉았어요."

"뒷자리에 탔는데, 왜?"

"저 처음 타 봤어요. 맨 뒷자리."


이제 아이들 사이에서 하루 한 문장 쓰기가 어느덧 자기 삶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게 되면 꼭 한 번씩은 "아, 오늘 이걸로 일기 써야지." 하는 말이 나오곤 한다. 그때가 비로소 글쓰기의 재미와 성장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 길목에 서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오늘 예*주가 그걸 보여주었다. 하루 한 문장씩 쓰고 난 뒤, <어린이 시, 따라쓰기>를 하고는 <맨 처음 글쓰기>로 들어갔다. 오늘의 주제는 '눈'. 이번 주까지 혹은 다음주까지는 계속 이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일단 쓰기에 대한 적응을 해 놓은 다음에 온작품읽기 수업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부디 잘 적응을 해주길 바라는데, 일단 지켜보고 있다.


오늘은 사실 수요일이라, 우리 학교 1학년에게는 중간놀이가 없다. 방과후 활동을 먼 곳에서 오는 강사를 배려해 배치하다 보니 1학년이 부득이 몇 년째 계속 수요일 6교시 수업을 해야 한다. 1학년에게는 분명 무리이다. 내년에는 고려해 보겠다고 하는데, 나 또한 지난 해에는 어떻게 해봤지만, 올해는 아이들 성향이 마구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이라 안쓰러워 1학기는 유연하게 시간을 보냈다. 2학기부터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계획대로 하겠다고 했지만, 역시나 안쓰럽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오늘은 15분 정도 배려를 하겠다고 하니, 아이들 말이 웃긴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6학년 때까지 우리 선생님 해주세요."

"맞아요. 아예 고등학교 때까지 해주세요."

"아니야, 대학교까지 해야 해."

"전, 평생 여기에만 다닐래요."


아이고....내가 이런 애들 하고 산다. 하여간 짧은 중간놀이 시간을 보내고 수학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간단히 수학익힘책으로 그동안의 학습을 복습하고 수세기 칩으로 10으로 묶어 세기를 해 보았다. 그림에서만 보던 것하고 직접 하는 것은 역시나 차이가 난다. 이렇게 실물로 자꾸 해 보는 게 아이들에게 10 묶음과 낱개로 수를 세고 자릿수를 익히는데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어릴 때일 수록 실물 교구로 만져보고 확인을 하는 활동이 많고 잦아야 하는데, 디지털 교과서라고 들먹이면서 자꾸 교구에서 멀어지게만 하고 정답 찾기 문제 풀이 수업으로 몰아 대는 교육 정책이 얼마나 아이들을 망칠 것인지 정말 걱정이 크다.


나중에 아이들은 가지고 있는 수세기 칩으로 홀수와 짝수의 개념을 익혀가며 놀이로 홀짝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이들은 역시나 놀이가 곧 학습이 되고 학습자체에 놀이가 섞여 있는 걸 좋아한다. 공부한 듯 공부하지 않은...얼마 전 한 보호자가 내게 와서는 한 마디 걱정스러운 말을 건넸던 게 문득 떠오른다.


"선생님, 우리 00가 사실 제가 보기에는 공부 작년에 선생님이랑 더 많이 공부한 것 같은데, 학년을 올라와서는 자꾸 이번 학년에 너무 많이 공부한다고 하네요."


내가 나름 답을 해드렸기는 했는데... 그 아이의 어머님도 수긍을 하시는 것 같은데...오늘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달팽이의 하루'를 부르고 싶다고 난리였다. 다른 노래는 대충 부르는 녀석들이 이 노래는 너무도 다르게 부른다. 나중에는 교과서에 있는 달팽이도 만들고 싶다하여 그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라는 노래도 같이 부르자고 했는데, 썩 반응이 좋지는 않다. 참 모를 일이다. 달팽이 같이 느릿하면서도 뭔가 생기가 넘치는 아이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이 정말 달팽이처럼 하루를 사는 듯 보인다.


하~ 바쁜 오늘 하루도 다 지나갔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 지 178일 째 되는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하나가 된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