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0일을 칠판에 쓰고 나서

(2024.09.24.)

by 박진환

해마다 특히 1학년들 하고는 날짜 세기를 날마다 한다. 수세기 감각을 키우기 위한 것도 있고 우리가 함께 지낼 날이 멀지 않았으니 잘 지내보자는 의지를 담는 것이기도 하다. 100까지의 수를 세기까지 2학기 1단원 수학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200여 일을 달려왔고 이제 100일을 앞두고 헤어져야 한다. 오늘 아이들 앞에서 칠판에 D-100을 적어 놓자 아이들은 이게 뭐냐고 묻는다.


"선생님, 저게 뭐예요?"

"음...이거는 이제 우리가 함께 지낼 날이 100일만 남았다는 거야."

"아, 안 돼~~"

"100일 뒤에는 여러분과 선생님은 헤어질 거야."

"헤어지면요?"

"2학년이 될 준비를 해야지."

"선생님이 2학년 해주면 안 돼요?"

"안돼."

"왜요?"

"음...너희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안 될 것 같아."

"안 돼~"

"다리 붙잡고 뭐해~"

"안 돼요. 안 떨어질래요. 2학년 같이 가요."


사실은 얘들 데리고 2학년을 하고 싶기는 하다. 아직 내가 도울 게 많을 것 같은 아이들. 1학년 잘 보내고 내년에 좀만 내가 더 도와주면 달라질 것 같은데...오만이겠다 싶고..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 싶기도 하고...오늘 책 읽기 뒤에 하루 한 문장을 쓰는데, 이제야 좀 달라졌다 싶어 마음이 좀 덜 불안했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닌데, 10월 연휴 이후에는 일기를 쓰기 시작해도 되지 않겠나 하는 조심스러운 맘이 들기도 했다.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쓸 수 있는 일은 이 나이 때 아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다. 그걸 이 아이들이 한 달 만에 해주었다. 그동안 내 격려와 칭찬도 있었지만, 꾸중, 지적과 잔소리도 엄청 많았는데, 그걸 아이들이 잘 견뎌주었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은 연극수업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연극강사는 연극이 전문이라 특히 1학년을 가르치는데는 빈구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려운 말을 쓰기도 하고 아이들도 함께 놀 때는 연극선생님가 잘 어울리지만, 구체적인 지도들 들어가면 집중력을 잃어 버린다. 그때 내 역할이 생기는 것인기는 한데, 오늘은 낭독극 발표에 어울리는 배역을 찾아 맞춰 연습도 해 보는 걸 미리 해 보았다. 나중에 연극선생님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막상 목소리를 내어 낭독을 해 보니 아이들도 누가 이 역할에 맞는 목소리인지 확인을 하고 인정을 하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잘 해주었다. 이제 연습만 잘 하면 되는데, 아무래도 집중력이 문제다. 잠시 가만히 있어주는 걸 힘들어 한다. 아무래도 실전에 강하지 않을까 싶다. 믿어야 한다. 아이들을.


나머지 시간에는 감정을 드러내는 낱말과 표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일단은 교과서를 살펴보고 그보다는 감정카드를 이용해 다양한 표현을 아이들에게 묻고 맞히기 놀이로 해 보았다. 다행히도 두루 두루 아이들마다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 주었다. 공책에 색연필로 적어가며 하나 하나씩 익혔다. 나중에 좀 더 익힌 상태에서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카드를 찾아 지금 자기 감정이 어떤지, 그리고 예전 일을 떠올려 그 시절 그 사건에서 내 감정은 어땠는지를 이야기 해 보려 한다. 마지막 시간에는 통합교과 하루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색종이로 손목시계를 만들어 보았다. 어찌나 재미나 하던지. 좀 다양하게 해 보고 싶은 게 많은 데, 아이들 상황과 처지, 그리고 남은 기간, 학교행사가 겹쳐지니 아쉽기만 하다.


오늘 연극선생님이 조금 일찍 교실에 들어와서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기다렸다. 몇 달전 페친이 되었고 어느 정도 연극선생님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사고를 가진 분인지 알게 돼 더욱 친근감이 생겼다. 그래서 선생님도 일찍 교실에 머무르면서도 어색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26살짜리 아들이 디자인 전공을 하다 연극배우이자 강사인 자기를 돕다가 음악 음향 관련 대학을 다시 전공하게 됐다는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우리 아이들이 지난번 만든 '문장부호' 책을 가지고 와서 맞혀 보라고 하자 나중에는 날 보고 선생님한테 배웠어야 했다며 이렇게 문장부호를 릴적에 배웠으면 금세 알았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도우미 선생님깢도 덩달아 자기도 지난 몇 개월 내 수업을 보면서 다르다는 걸 많이 느꼈다며 맞장구를 친다.


고마운 말씀이긴 한데, 이제는 그런 칭찬들에 힘을 얻지 못한다. 아니 별 감정들이 없어졌다. 늘 하던 일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고 점점 거산에 와서 일에 지치고 소진이 되면서 감정마저도 무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내가 그렇다. 에너지가 작년까지만 못하다는 게 내 스스로 판단이기도 하다. 뭔가 에너지를 얻고 싶은데, 힘을 얻고 싶은데, 그게 무얼까 나도 고민이다. 너무 나이가 들어 메너리즘에 빠진 것일까? 아님 무얼까. 그럼에도 남은 100일을 생각하면 괜히 코끝이찡해진다. 해마다 겪는 일이라 관성화가 된 것일까? 아님 정말 이 아이들과 정이 든 탓일까?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오늘도 하루는 지나갔다. 206일째이고 아이들과헤어지기까지100일이 남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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