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기다려준다는 것

(2024.10.8.)

by 박진환

온작품읽기 수업 중 동화 속 주인공이 한밤중 달빛식당을 찾아 나쁜 기억을 건네고 받은 첫 음식은 딸기 케이크였다. 그때였다. 승*가 뜬금없이 어제 자신이 먹은 간식을 말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1학년은 지금 하고 있는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맥락없는 선수들이다.


"선생님, 저 어제 00 먹었어요."

"그래? 그걸 혼자 먹었어? 그걸 혼자 먹으면 안 되지 .선생님에게 갖다 바치고 그래야지."

"왜요?"(주위 아이들이 하는 말.)

"아니, 너희들이 사랑하고 너무나 좋아하는 도사선생님인데 당연히 바쳐야지."


그러자 지*이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선생님, 지금 제 가방에 빵이 있어요."

"뭐? 그걸 혼자 가지고 먹고 있었다는 거야? 네 이놈 선생님에게 그런 게 있으면 갖다 바치고 먹어야지. 혼자 먹었다고? 그러면 천벌을 받을 게야."


내가 녀석들의 기질을 알기에 한 번 퉁쳤더니 역시나 지*는 자기 가방으로 달려가 가방 속에 숨겨 놓은 작은 카스테라 두 개를 내게 갖다 주었다.


"그래, 그래야지. 어험. 또 누가 가방 속에 숨겨 놓고 있는 거 아냐?"


그랬더니, 예*도 갖다 바치고 또 누구였더라....쿠키 하나를 꺼내 바치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내 책상 한 귀퉁이에 간식거리가 한 주먹만 하게 차기 시작했다.


"너희들 앞으로 학교에는 간식 가져오지 말아야 하는데, 가지고 오면 꼭 선생님에게 갖다 바쳐야 해."


우리 반 아이들은 시내에서 시골로 조금 멀리 보내는 보호자들이 많다. 어린 1학년 아이들의 부모들은 안쓰럽고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들 손과 가방에 간식 거리를 챙겨 주시곤 한다. 난 가급적 그렇게 하지 말아주셨으면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간식이 있으면 밥을 덜 먹게 되고 학교 음식을 가려 먹기도 하는 습성이 생기고 주변 아이들에게 나눠 주는 상황도 곧잘 벌어져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다른 보호자들에게는 또 다른 불편을 끼치는 현상도 있어 자제해 주시라 했는데도 아이들 가방에는 언제나 간식이 보인다.


어제는 보호자분들에게 아이들이 가져간 온작품읽기 책을 집에서도 읽게 해주시되, 때때로 함께 읽어주시라는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오늘 아이들 입을 통해 들은 바로는 12명 중 단 한 분도 어제 아이들과 책을 보신 분들이 없었다. 이걸 어쩌나 싶었다. 함께 지도를 하고 있는 도우미 선생님도 이 사실을 같이 확인하고는 놀래하셨다. 아이들 교육이 학교와 교사의 노력만으로 될 수 없는데...다들 바쁘고 힘든 상황이시겠거니 생각하지만, 힘들더라도 때를 놓치지 않는 부모의 관심이 일관되게 필요하고 그런 것이 쌓여 아이들 성장을 나중에 이끌어 내는데, 보호자들의 마음이 다들 내 맘 같지는 않은 것 같았다.


휴일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일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부모의 모습이 아이들의 정서와 인지 발달에 유효하다는 사실을 학자들의 입을 빌려서 얘기하면 달라질까. 아무튼 아쉬운 마음 뿐이다. 한 달 간 이어지는 상담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당부를 드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한바탕 수업도중 딴 곳으로 빠졌다가 돌아와 아이들과 오늘도 책으로 낱말과 문장도 익히고 내용도 확인해가며 공책에 쓰고 그리고 붙여가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집에서 혼자 책 읽는 것보다 재밌지 않냐고. 아이들은 훨씬 재밌단다. 계속 이렇게 책을 보면 좋겠단다.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어른 책임이다. 아이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오늘 첫 두 시간은 연극시간으로 보냈다. 11월 1일 저학년들의 연극 공연 발표날을 위해 우리 반 아이들은 요즘 극본을 일주일에 두 시간씩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정해진 배역으로 다시 연습을 하고 읽을 때 호흡과 표현, 분위기를 익혀가며 했다. 연극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미리 발음과 표현을 염두해 둔 대사읽기를 해보았다. 오늘의 가장 문제는 자기 역할이 아닌 지점에서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올해 특히 우리 반 아이들이 이런 경향을 많이 보인다. 자기가 맡은 역할이 아니면 관심도 두지 않고 딴짓을 한다. 나중에 들어오신 연극선생님의 지적도 이런 지점에 있었다.


심지어 자기가 맡은 대사를 낭송하다가도 잠시 상대역이 대사를 하는 중간에도 딴짓을 한다. 1학년들의 매력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건 분명하다. 이런 지점에 문제를 인식하고 고쳐가며 나아가는 게 성장이기 때문이다. 귀엽다라고 넘기고 1학년이니까 그렇지 하고 넘기다 보면 아이들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기다려 주는 지점에는 어느 정도의 피드백이 동반되어야 한다. 무작정 기다려 주는 건 방치다. 이런 경계지점을 제재로 보지도 않고 대응하지도 않아 아이들의 청년 시절을 어른들이 감히 망쳐서는 안 된다. 배우는 즐거움을 깨닫는 게 진정 제대로 기다려주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모르나 내가 만난 10여년 전 영국의 자유학교 '썸머힐'에서는 공부하려 하지 않는 아이들을 교사들이 기다려 준다. 그러나 노는 것도 지치고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했을 때, 아이들이 교사 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때 교사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미리 준비한 것을 내 놓고 배움의 자리로 안내한다. 그들은 마냥 기다려주는 게 아니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응당 제공해 줄 교육과정과 전문적인 수업과 안내가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기다려 준다는 좋은 의미의 표현을 자주 쓴다. 하지만 기다려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서로 내린 적은 없다. 이전 교사들에게도 들은 바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지점에서 조심스럽고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오늘은 수업을 마치고 다음주에 있을 현장체험학습, 아니 그냥 소풍 같은 나들이 준비를 위해 안성으로 답사를 갔다. 이번 기획은 우리 12명 아이들과 보호자가 함께 떠나는 소풍. 어쩌면 초등학교 시절에 다시 오지 않을 엄마나 아빠랑 떠나는 소풍. 12명의 아이들과 부모가 한 식구가 되어 6년간 함께 갈 식구로 정과 믿음을 나누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했다. 결과는 어찌될 지 모르겠으나...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우리 12명의 아이들이 서로 배우고 깨달아 6년을 함께 잘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데 모으는 자리가 되고 한 식구라는 생각으로 서로 힘을 모으는 자리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답사를 다녀오는 길이 그리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다.


진정 기다려 준다는 건, 몰랐던 그리고 서로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우리 아이들과 만난지 220일이 되는 날이고 헤어질 날이 86일 남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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