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볕 따뜻한 날에

(2024.10.11.)

by 박진환

어제 밤늦게 보호자 상담을 하다 날마다 내가 올리는 글 이야기가 나왔다. 재밌다고 대단하시다고 하셨다. 나는 이렇게 날마다 글을 쓰게 된 까닭을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얘전만 못하다고 했다. 사실이 그렇다. 처음 1학년 이야기를 쓰던 시절이 2016년이었으니 거의 8년 전이다. 그때 만난 아이들이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될 나이가 됐으니...그동안 나도 변했다. 40대에서 50대가 됐고 체력도 열정도 덩달아 줄어들었다. 생생한 아이들의 말도 예전에는 다 생각났는데, 지금은 마치 쥐어 짜듯이 생각해 내거나 너무도 좋은 말은 그때 쪽지에 적어 놓지 않으면 무슨 말이었던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날마다 되풀이 하는 수업에서 쓸 거리를 끄집어 내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려고 하면 오늘은 뭘 써야 하나 할 때가 적지 않다.


오늘도 그렇고 그런 날에 쓰는 우리 반 아이들의 10월 11일(금)의 그 흔한 이야기다. 아침에 책을 읽고 간단히 공책에 기록한 뒤에 곧바로 온작품읽기 책을 꺼내 들었다. 오늘 주요 내용은 두 번째 찾아간 달빛식당에서 만난 술 취한 아저씨 이야기였다. 아내를 잃은 아저씨는 술을 드셨고 아내를 잊기 위해 식당에 그 기억으로 값을 치르고 무덤덤하게 청국장을 먹었다. 잠에서 깨어난 아저씨는 길바닥 전봇대에 기대어 있었고 경찰이 왔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공 연우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동호에 이끌려 문방구에 가게 되고 자기 돈을 가져가 물건을 사게 된 것을 확인하게 되고 '도둑새끼'라 불리며 도망치게 되는데, 여기까지가 오늘 같이 나눈 이야기였다.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낱말, 감정 표현, 흉내 내는 말, 겹받침 들어간 낱말을 살펴보며 공책에 써가며 했다. 이제 익숙해진 대부분의 아이들은 알아서 적고 또 다른 공간을 채워나갔다.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두 아이가 걱정스러웠다. 꾸역꾸역 같이 가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일 듯한데, 그래도 그렇게라도 따라오니 대견하기도 했다. 오늘은 주인공 연우의 감정과 아저씨의 감정도 물어보았다. 상황 속에서 인물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확인해 보고 그동안 읽은 분량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오늘을 마감지었다. 오늘 읽은 내용 중에서 아내를 잃은 아저씨가 아내를 기억하는 것으로 음식, 그것도 청국장을 얘기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만약 집안에 어른을 잃는다면 어떤 음식을 떠올리겠냐고. 그랬더니 김치볶음밥, 삼겹살, 계란밥, 초밥, 스테이크 등 다양한 음식이 나왔다. 그렇게 되면 안 되겠지 하는 전제를 깔았지만, 아이들에게도 엄마 혹은 아빠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소울푸드가 있었던 셈. 책으로 수업을 하게 되면 이렇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게 해주고 평소에 알지 못한 아이들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게 책이 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책 하나로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나누고 정을 나눈나면 이미 책은 그 역할을 다 하고 있지 않을까. 앞으로 남은 석 달을 나는 아이들과 이렇게 책으로 삶을 나누려고 한다.


중간놀이 시간 이후, 다음 블록시간은 통합교과 '약속'에 담긴 놀이활동을 해보는 시간이었다. 번호판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뛰어 다니게 하고 점프하게 하는 활동을 먼저 해 보았다. 일찍 알았다면 1학기 때 10까지의 수를 배울 때 써먹었으면 좋아겠다 싶었다. 마침 2학기에는 홀짝도 배웠으니 나중에는 뛰는 방식 중 홀짝을 넣어 보기도 했다. 덩달아 복습도 되고 아이들은 색다른 맛으로 뛰어 다닐 수 있어 보여 좋았다. 다음으로는 집 찾기 놀이. 훌라후프 안에 컵을 쌓아 각각 상대편 세 편, 우리 편 세 편으로 나누어 공을 갖고 상대방 컵을 먼저 빨리 무너뜨리는 경기였는데, 어찌나 신나게 하던지.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지칠 때까지 계속 할 것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함께 웃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유치원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큰 소리로 한 마디를 외쳤다.


"오늘 참 날씨가 좋다."


나도 그래서


"그래, 오늘 참 날씨가 좋네. 하하."


가을 한 낮, 따듯한 햇볕이 좋았던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 지 223일이 된 날이였고 아이들과 헤어지기 83일 남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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