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1.)
비가 온 뒤, 월요일이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고 또 다음날도..오라고 해도 오지 않던 가을을 빨리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수요일은 특히 추워진단다. 오늘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 옷차림도 어느새 점퍼와 긴팔이었다. 지난 금요일 현장학습의 추억을 갖고 있던 몇몇 아이들은 그날이 재밌었다며 줄타기와 버나를 돌리던 이야기를 꺼냈다. 주말에 인근 송악마을예술제도 있었는데, 그 얘기를 꺼내는 아이는 없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집에 머물러 있었던 탓이 커 보였다. 날씨가 좋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 것 같았다.
아침에 가볍게 책을 읽고 난 뒤, 첫 수업은 온작품 <한밤중 달빛식당> . 오늘은 이 책을 함께 읽는 마지막 시간. 이야기 끝에 주인공 연우가 '나쁜기억'을 없애주는 음료를 먹고는 다시 기억을 되살리게 되고 그 되살린 기억 속에서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가 연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언제가 기억할 것이라는 걸 떠올리며 다시 기운을 차린 연우. 연우는 병원에서 퇴원해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 연우랑 함께 열심히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하며 손잡고 길을 나선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읽기를 확인하며 얼마나 내용을 파악했는지를 살폈다.
다행히 떠듬떠듬 읽던 한 아이도 어느새 문장 속 내용을 읽어내며 자신 있게 손을 들어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왜 연우는 아빠의 모습이 좋았을까? 아빠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내 걱정을 쏟아 내는 게 왜 좋았지?"
"저요! 아빠가 자기 걱정을 해주니까요."
"맞아. 지금껏 아빠는 어땠지?"
"맨 날 술 먹고 집에도 안 들어오고 돈만 주고 갔어요."
"맞아. 그랬던 아빠가 연우 걱정을 하니 얼마나 좋았겠어. 00이가 잘 알고 있네."
문장을 읽고도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면 참으로 힘든 과정을 더 거쳐야 하는데...다행히도 00는 유창성은 떨어져도 내용파악은 하고 있었다. 그러면 앞으로 시간과 노력이 해결해 주면 될 일. 그렇게 우리는 <한밤중 달빛 식당> 모두를 읽어내며 마무리를 지었다. 다음 시간에 느낀 점을 이야기 나누겠다고 하니, 갑자기 서로 이야기를 꺼낸다. 대부분 단편적인 게 많아서 좀 더 많은 생각과 여러 가지 느낌을 이야기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마지막 불록시간은 수학이었다. 오늘은 답이 10이 넘는 덧셈을 마무리 하는 시간. 일단 수학익힘책부터 했다. 시간 차는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마무리를 해주었다. 문제는 여러 가지 덧셈에 관한 것. 교환법칙과 덧셈 항의 차이에 따라 같은 수가 되기도 하고 답의 결과가 내려가기도 하고 올라가는 규칙을 발견할 수도 있는 상황을 읽어내길 바랐다. 역시나 좀 더 연습이 필요했고 다음 시간까지는 해야 해결될 문제인 것 같았다. 어쨌든 시간은 흘렀고 다음 시간에 좀 더 마무리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빴다. 도서관에 스마트 대출반납기가 설치돼 기사가 오고 도와줄 일이 연이어 벌어졌고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도교육감님이 학교 준공을 앞두고 방문하여 도서관을 안내해 드려야 했다. 나보고 경력이 얼마나 되냐길래. 32년이라 했다. 깜짝 놀라던 교육감님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학교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살지는 몰랐다며 고생이 많다 격려를 해주셨다. 난 나 같은 교사들이 오랫동안 학교에 머물며 학교교육에 매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교사가 학교에 오래 버티지 못하는 까닭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과 제도의 문제가 더 크다. 교사보다는 행정직, 흔히 말하는 전문직에 대한 열망과 관리자에 에 대한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체제와 문화가 문제였다. 내가 발령을 나고도 30년이 지나도 이런 제도와 문화는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그런 와중에 난 여지껏 사회적 책임과 오기로 버텨왔다. 이제 그것도 나이가 드니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여러 가지로 힘들지만.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233일째이고 아이들과 헤어져야 할 날을 73일 남겨두고 있는 날이었다. 글을 다 쓰고 하늘을 보니 너무도 맑다. 참 예쁘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파랗다. 정말 파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