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7.)
11월도 어느덧 한 주가 지나간다. 다음 달이면 이제 올해도 다 지나가고 우리 1학년이랑도 헤어져야 한다. 시간이 참 빠르다. 세상은 알 수 없는 지점으로 가고 있다. 미국대통령이 바뀌고 우리나라도 정치경제 여러 지점에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후 위기와 전쟁은 벌써 닥쳐 왔는데,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문제에 집착하여 더 큰 위기와 위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교사라는 직업으로 1학년들과 하루를 살았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작은 희망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러나 늘 고민하고 걱정이 된다. 나는 지금 세상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오늘 첫 수업은 시간표와 다르게 움직여야 했다. 일단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다음 주에 있을 신축도서관 행사에 참여할 활동으로 안내했다. 어제 일찍 마친 아이들은 시 따라쓰기나 다른 책 읽기로 안내했다. 어떤 아이는 처음으로 시를 써 보겠다 하여 그러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신이 잘 틀리는 글자 '좋다'에서 'ㅎ'이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며 이걸로 시를 써보겠다 하여 그러라고 했다. 그랬더니 산문 같은 시를 써 낸다. 키특하고 대견하기 그지 없다.
'안 좋다'에서 왜 조 밑에 'ㅎ'이 있을까? | 곽**
안 좋다 할 땐
"왜 'ㅎ'이 들어가요?"
나는 이게 너무 궁금하다.
안 좋다 할 때
왜 'ㅎ'이 있어요?
너무 헷갈린다.
'ㅎ'이 안 들어 가면
안 헷갈릴 텐데.
너무 헷갈린다.
이렇게 다른 아이들이 시를 쓰고 책을 읽고 시를 따라 쓸 때, 다른 아이들이 쓴 결과물들이 속속 들어 오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무난히 책 소개 활동을 해 냈다. 그 사이에 나는 또 아이들의 일기를 읽었다. 어제 써 온 일기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지 나도 무척이나 궁금했다. 글은 참 신기하다. 평소에 아이들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할 때, 글보다 더 대단한 걸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늘 1학년은 이즈음에 일기를 쓰게 하다 보니 그동안 배운 말과 글로 어떤 이야기를 써 낼지 늘 궁금하다. 오늘도 아이들의 글에는 각기 다른 삶들이 숨어 있다. 다행히 아이들이 나름 열심히 써 와 준다.
오늘은 그 글 모두를 보건수업 때 도서관에 가서 타이핑을 해 보았다. 일기를 가르쳐 준 지 딱 일주일이 된 이즈음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다. 맞춤법은 틀린 대로 그대로 담았다. 띄어쓰기는 이제 웬만큼 하는 것 같아 읽기 편하게 내가 몇 개씩은 조정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우리 아이들은 한 달은 '하루 한 문장 쓰기'로 문장을 늘여가며 익혔고 맞춤법도 지도를 받았다. 다음으로 두 달 동안 '맨 처음 글쓰기' 공책으로 파생어와 단문, 조사의 쓰임, 겪은 일 쓰기로 이어갔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늘 틀리는 지점에서 틀린다.
쌍시옷과 '같다'와 '갔다', '에'와 '애', 받침 중 겹받침에서 많이 헷갈려 한다. 1학기 때 학습을 했고 연습을 시켰지만, 일상에서 자주 만나고 그걸 기억해 자주 쓰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주 틀리곤 한다. 특히 자기 발음이 부정확하면 받침을 틀리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1학년에는 경쟁적 받아쓰기를 시키지 않는다. 이 맘 때는 겪은 일 쓰기로 문장을 익혀가며 맞춤법, 띄어쓰기를 익히게 한다. 자신이 쓰는 문장, 일상에서 쓰는 말에서 문장으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익히면 다음은 꾸준한 책 읽기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경험이 내게도 쌓였기 때문이다.
어설픈 학습지로 표준화된 어휘와 문장을 학습하는 것은 덤이지 핵심은 일상 속에서 쓰는 말을 글로 쓰게 하는 것. 거기에 삶을 담아내는 능력(?), 삶을 발견해 가는 경험을 쌓게 하는 게, 1학년 글쓰기의 가장 큰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나를 거친 아이들은 일상의 삶을 잘도 글로 풀어내었다. 2학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글을 쓰는 걸 자주 만나게 된다. 문장 부호의 다양한 활용도 이 맘 때 익히는 데, 큰 따옴표와 작은 따움표의 쓰임도 이때 익히게 되고 줄을 바꿔 쓰는 법도 이때 익히게 한다. 이제 앞으로 두 달 동안 우리 아이들은 거의 날마다 일기를 쓰며 이 과정을 모두 몸에 익히게 될 것이다. 단, 글쓰기는 글쓰기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책을 읽고 자유롭게 말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게 같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야 글도 풍성해지고 자기 삶을 담아낼 줄 알게 된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추운 날
제목: 습바주에서 놀다 | 천**
나는 오늘은 습반주에서 놀다가 떨어졌다. 엄청 아팥다. 내가 습밭줄에서 떠러진 걸 조승호한테 말했다. 그래서 조승호가 깜짝 놀랬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덜덜 떠른 날
제목: 우산을 놓고 온 날 | 조**
나는 저번에 우산을 학교에 놓고 왔다. 그 이유는 비가 왔다가 그쳤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 내 우산을 펼쳤는데 갑자기 멈춰서 학교에 우산을 놓고 왔는데 비가 다시 와서 '아... 어쩌지!'하고 외쳤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일 가져 가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알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어떤 아이가 우산을 빌려 줬기 때문이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따뜻한 바람이 내 몸속에 들어온 날
제목: 책 놀이 | 문**
방과후를 끝내고 돌봄으로 갔다. 돌봄으로 와서 간식을 먹었다. 간식은 뭐냐면 미니 치즈 케잌을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책놀이를 했다. 책은 뭐냐면 다람쥐는 모를 거야하고 바빠요 바빠라는 책을 책 놀이 선생님 두 권 다 읽어줬다. 책을 다 읽고나서 책 놀이 선생님이 종이랑 플라스틱 접지를 줬다. 나는 종이에다가 호두 껍질로 뭐를 했냐면 씨앗스로 했다. 그리고 만디블라디스 큰 턱 사슴벌레를 그렸다. 그런데 사슴벌레 소순판에다가 콩을 붙쳤다. 근데 시간이 벌써 4:00가 돼서 장수풍뎅이만 그리고 끝냈다. 친구들 하고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극지방처럼 엄청나게 추운 날
제목: 형아의 피아노 | 한**
오늘도 형아가 또 우리집에 있는 피아노를 쳤다. 맨날 맨날 쳐서 정말 지겹다. 왜냐하면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곡만 치기 때문이다. 내 형아는 캐리비안의 해적을 좀 친다. 그래도 못 쳐서 맨날 맨날 연습하는 것이다. 나도 좀 치고 싶은데 피아노는 맨날 형아가 차지한다. 칠려고 일어서면 형아가 앉아 있다. 정말 짜증나고 화난다. 형아는 피아노 중독인 것 같다. 맨날 피아노만 치기 때문이다. 형아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피아노만 친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형아는 피아노 중독이야! 집에서 피아노를 없애 버리고 싶어!' 정말 화 난다. 형아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짜, 나도 좀 하게 해줘!"
꼭 이러헤 말할 거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내 마음처럼 변덕쟁이 날씨
제목: 나만의 비밀이 생긴 날 | 송**
오늘 배미수영장을 갔다. 옷을 벚고 수용복을 입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물속으로 들어간는데 얼음물에 있는 것처럼 추워서 오줌이 나올 뻔했다. 그런데 살짝 나온 거 같았다. '친구들이 나보면 어떡하지.'하며 여기저기 쳐다 보았다. 아무도 몰라서 나만 안음면 대.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어름처럼 추운 날
제목: 아빠의 잠 | 유**
나는 아빠가 이따가 논다고 했다. 아빠는 약속을 안 직킨다. 쇼파에서 크르렁 클크 곰처럼 잤다. 나는 그레도 좋다. 너무 잠을 자는 문어 갔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따뜻하게 입어도 추운 날
제목: 어린이 시 | 전**
나는 오늘 어린이시 따라쓰기를 했다. 나는 어린이시가 좋다. 왜 어린이 시가 좋냐면 글씨를 쓰는데 시가 재밌어서 어린이시가 좋다. 그리고 어린이시를 할 때 많이 갈수록 시가 바뀌어서 시가 재밌고 좋다. 중간놀이 때도 쉬지 않고 했다. 점심놀이 때도 쉬지 않고 했다. 그래서 내가 진*가 하는 시를 따라잡았다. 그래서 진서가 6위가 돼고 내가 5위가 됐다. 1등은 상*이랑 수*다. 왜냐하면 걔넨 어린이시를 다 썼기 때문이다. 나도 끝까지 가고 싶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찬바람이 나를 얼게 한 날
제목: 채송화 | 김**
우리집에 채송화라는 꽃이 있다. 그 채송화라는 꽃이 어떻게 우리집에 생겼냐면 아빠가 꽃을 사왔는데 너무 일찍 죽어서 엄마가 그때 채송화라는 꽃을 시문거다. 그런대 그 채송화라는 꽃은 총알처럼 빨리 자랐다. 나도 채송화처럼 빨리 자라고 싶다. 그리고 그때 나는 싹이 너무 빨리 자란다는 생각이 든 아무튼 싹이 빨리 자라서 좋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북극 같은 날
제목: 일기를 쓰기 안 좋은 날 | 박**
오늘은 재미있는 일기를 쓸려고 하는데 머리가 안 돌아간다. 그래서 엄마가 나한테 일기 쓰기 좋은 날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그 책은 토끼가 일기를 써야 하는데 쓰기 싫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서 일기를 안 쓸려고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걸 읽어도 재미있는 일기가 안 떠올랐다. 그러다가 지금 쓰고 있는 게 떠올린 일기다. 내일은 또 재미있는 일기를 쓸 거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지금도 너무 추워서 얼음이 몸에 들어 가는 날
제목: 얼마랑 집에 가는 길에 숲밧줄 노리에 놀러 가는 나 | 강**
오늘 학교 끝나고 방과후 댄스를 했다. 방과후도 끝나서 운동화를 신고 돌봄 교실에 갔다. 오늘 간식은 치즈가 들어간 컵 케이크였다. 책 놀이 선생님이 왔었다. 근데 많이 책을 읽어주셔서 엄머가 왔었다. 나는 숲밧줄 놀이를 하고 싶었다. 근데 엄마가 안 된다고 했다.
"아, 제발! 십분만! 어! 제발!"
엄마가 드디어 된다고 했다. 나는 십분이라도 자유롭게 놀았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에어컨과 선풍기가 내 몸을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날씨
제목: 나와 노*가 지은 댄스 | 이**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댄스 수업시간이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댄스를 하러 갔다. 댄스에서 선생님이 댄스를 새로 알려 줬다. 나는 쉬간 시간에 노*와 춤 연습하고 새로운 춤을 만들기도 했다. 이름은 스페셜디오로 했다. 나는 노*와 돌봄 교실에 가서 춤을 완성했다. 내일은 노래까지 완성해서 완벽한 춤과 노래를 만들 거다.
날짜: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날씨: 겨울처럼 추운 날
제목: 엄마 업는 오늘 밤 | 곽**
나는 오늘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기분이 안 좋았다. 왜냐하면 엄마가 엄마 옛날에 어린이집 처음 시작할 때 같치 했던 선생님이랑 밥을 먹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게 왜 싫냐면 나는 엄마 업으면 무섭다. 아빠가 있어도 무섭고 허전하게 나는 늑겨진다. 울기도 한다. 아빠한테 전하해 달라고 한다. 내 마음은 좀 나아졌지만 눈은 엄마가 안 온다 하니 개속 오줌을 펑펑 쏳아낸다. 내 눈은 힘들겠다. 만날 오줌만 싸니까. 하지만 운단고 괸찬아지는 건 안이었다. 여전히 속으로 '발리 와! 빨리 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르게 먹고 '아니야 내 가 자고 있으면 올 거야!'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다음엔 안 약속 잡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시간이 바뀐 보건수업 때문에 아이들과 몸으로 움직이는 통합교과 수업도 다른 시간 대로 옮겨 했다. 훌라후프랑 콩주머니로 해 보는 수업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나게 뛰어 놀았다. 중간놀이 시간까지 이어지고 돌아온 아이들 모습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다. 어떤 녀석은 어제 그렇게 전기를 아끼자는 공부를 했는데도 이 날씨에 에어컨을 틀어 달라고 재잘댄다. 겨우겨우 달래어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으로 가서 빌린 책을 반납하고 자유롭게 책을 만나는 시간을 주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새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다양한 책들을 만나며 신나했다. 책을 대출하고 싶다 하여 몇몇 아이들은 책을 빌려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이고 돌아와 아이들을 다시 챙겨 오늘 하루를 마치고 방과후 교실로 보냈는데, 한 녀석이 내게 위로의 말인지, 무언지 모르는 말을 던진다.
"선생님, 힘들죠."
"그래, 엄청 힘들다. 하하하."
나는 지점 어디쯤 있는 것일까? 어디쯤 가고 있는 것일까?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251일째 되는 날이었고 아이들과 헤어질 날을 55일 앞두고 있는 날이었다. 하긴 어디로 가긴 가야 한다. 오늘 우리 학교 2학기 중 가장 큰 행사인 '거산 예술제'를 하는 공연장으로 가야 한다. 퇴근 뒤에 말이다. 그걸 마치고 집에 가면 밤 11시가 되지 않겠나 싶다.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