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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Nov 26. 2024

찬바람이 부는 날에

(2024.11.26.)

오늘은 날씨가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보여주는 듯하다. 해가 났다가 비가 내리다가 찬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글을 쓰는 지금은 다시 쨍쨍한 햇빛이 비추고 하늘도 파랗다.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을 듯. 마치 제주 남부의 날씨를 보는 듯하다. 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책 읽고 인사 나누고 차 한 잔 마시고는 아이들이 늘 기다리는 학년 마무리 잔치를 대비와 읽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시작한 '연극 극본 읽기' 시간으로 보냈다. 


우리 반에서 읽기 능력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아이들 둘을 극의 주인공으로 삼은 <냄새 맡은 값>에서 이 아이들이 제법 읽어 내기 시작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물론 외워서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일단 읽어내어 한 눈에 훑어 내리는 읽기 연습은 언제나 어느 때라도 필요하기에 나는 1학년에게도 극본 읽기는 교육과정에 들어와야 한다고 본다. 나는 늘 이 지점에서 나름 좋은 성과를 얻기도 했다. 아이들이 읽기 좋아하고 즐기는 텍스트이고 반복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거리가 극본만 한 게 사실 없다.


즐겁게 두 번씩 읽고 부족한 부분은 다시 연습시키는 과정을 거치니 벌써 오전 첫 블록시간이 다 지나갔다. 중간놀이 시간 이후로는 통합교과 상상의 시간. 오늘은 교실에 공룡이 있다면, 들어와 있다면이라는 주제로 도서관을 찾아 공룡들을 살펴보고 맘에 드는 공룡을 선택해 미리 그려 놓은 교실 그림에 붙여 다시 사람을 그려 놓고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맥락 없이 뭘 하는 건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 통합교과 '상상' 시간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뽑아내어 수업을 하는 것인데, 하면서도 영 마땅치 않다. 


아이들은 즐겁게 이 시간을 보내고 발표도 했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도무지 교사인 나로서는 모르겠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거인이 된다면'이라는 또 다른 주제로 수업을 즐겼다. 사진의 효과로 작은 것을 들어올리고 커다란 것을 거리와 각도에 따라 작게 표현해 뭔가를 다르게 표현하는 착시효과 수업. 아이들은 찬 바람을 맞아가며 할 수 있는 장면을 찾으러 돌아다니며 나를 불렀다.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찍은 사진은 썩 맘에 들지 않았지만, 오늘 이 과정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돌아와 교실에서 나는 아이들의 일기를 몇 편 읽어주었다. 작년 아이들과 달리 이번 아이들은 자기 일기를 잘 쓰나 못 쓰나 상관없이 즐기고자 한다. 그날 읽어 줄 글감이나 내용이 있으면 읽어주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너 편 읽어주고 나니 오늘 아이들의 글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집안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난 1학년 아이들에게도 글감을 정해 일기를 쓰게 하지 않는다. 1학년 아이들도 자기 삶을 돌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양한 글감이 담긴 생활글을 읽어주거나 겪은 일 쓰기로 글감 찾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러면 1학년도 제법 글감을 찾는다. 때로는 어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처음에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면 노는 이야기 위주인데, 어느 순간 자기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글감으로 삼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오늘처럼 따듯한 이야기를 써 내기도 한다. 제대로 온전히 따듯한 사랑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은 삶도 아름답다. 글도 아름답다. 오늘은 아이들을 만난지 269일째 되는 날이고 헤어질 날을 37일 앞 둔 날이었다. 

=====


날짜: 2024년 11월 23일 월요일

날씨: 학교가 북극으로 바뀐 날

제목: 마사지 | 송**


나는 맨날 밤이 기다려진다. 밤마다 다리가 아파지기 때문이다. 허벅지랑 다리랑 발목이랑 종아리가 따가우면서 아프다. 그런데 밤이 기다려진다. 왜냐면 아빠가 마사지를 해주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우면 아빠가 힘센 손으로 내 엉덩이를 간지럭게 한다.


"하지마. 아빠!"

"내 엉덩이 간지럭피지 마."


다시 다리를 주물러 준다. 천국에서 구름 타고 있는 거 같아서 잠이 솔솔 잠이 온다. 기분이 좋아서 맨날 다리 아프다고 하고 마사지를 해주라고 한다. '나 사실은 안 아픈데.' 시원해서 아프다고 한다.



날짜: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날씨: 가을에 해가 없었는데 더운 날

제목: 바쁜 우리 엄마 아빠 | 전**


나는 오늘 엄마가 아빠랑 전화를 했다. 내가 전화하는 걸 대충 들었는데 일 얘기만 했다. 지금 듣고 있다. 엄마랑 아빠랑 전화할 때 아빠한테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와장창!"


아긴 아빠가 정리하는 소리다. 나도 거기에 한 번 가 봤다. 아빠는 전라도, 여수 등등 마트에서 일을 한다. 근데 아빠가 일하기가 힘들 때, 엄마한테 같이 하자고 해서 나를 할머니댁이나 친구네에 종종 맡기곤 한다. 엄마랑 아빠가 바쁘거나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짜: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날씨: 춥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날

제목: 새 신발 | 문**


나는 학교 갔다와서 자전거를 탔다. 그런데 할머니한테 화장이 돼 있어서 할머니한테 물었다.


"할머니, 왜 화장이 돼 있어?"

라고 물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대답했다.


"할머니, 우리 00 신발 사오려고."


나는 깜짝 놀라서 신이 났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근데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그래서 나는 오줌을 길가에 쌌다. 나는 새 신발을 신을 내일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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