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아이들이 아니란다

(2023.04.05.)

by 박진환

마침내 단비가 내렸다. 지난 겨울부터 몇 달을 이어 온 가뭄을 밀어내려고 하는 듯 세찬 바람과 비가 내리는 아침 출근 시간. 이렇게 비오는 날 학교에서 4-500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출근하는 일은 정말 낯설고 힘들다. 아침부터 다리 쪽에는 비를 다 맞고 젖은 채로 출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비도 오니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해야 할 것 같아 부랴부랴 물을 떠와 호박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모두 찻잔을 앞에 두고 있을 무렵 호박차를 따르며 움직이자 가영이가 '호박냄새 참 좋다' 한다. 차를 따라 준 뒤에는 옛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늘 옛이야기는 바다가 왜 짜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얼핀 주제를 던지니 아이들이 저마다 '나 알아요. 나 이야기 들어 봤어요.' 한다.


이야기 들어 봤음직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애도 썼다. 부모님께 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 자기들만 아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해 보라며 흉내를 내었더니 너무 재밌단다. 한 번 더 해달란다. 애들은 재밌다고 하는데, 난 힘들다. 그리고 시간도 없다. 벌써 수업시간을 30분이나 잡아 먹었다. 지난 3월부터 매번 이런 식이다. 이런 루틴을 이제 조금씩 벗어나야 할 것 같은데, 이 아이들이 그때는 어떤 반응일지 궁금도 하고 걱정도 든다. 그래도 해야 할 것은 해야겠어서 어제 배운 홀소리 노래와 율동으로 몸을 깨운 뒤에 첫 수업을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 또 잠시 오늘 비도 오고 해서 '비가 온다'라는 백창우님의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래서 시작한 첫 수업은 어제 하려다 못한 수학 수업. 오늘 본격적으로 숫자를 만나는 교육과정을 따랐다. 시작하기 전에 저번 시간에 거론한 원시인을 꺼내들었다. 거기다 아이들 중 한 이름을 갖아 붙이니 아이들은 더욱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집중을 한다.


"한 번은 수아원시인이 물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갔어요. 그날 고기가 많이 잡혀 집에 가져 가서 맛난게 먹었는데, 얼마나 먹었는지 세지는 않았죠. 다음날 가영이 원시인이 나타났어요. 어제 물고기를 많이 잡아 배불리 먹었다는 소리를 듣고 가영이 원시인은 물어어요. 얼마나 잡아 먹었냐고. 그래서 생각해 보니 얼마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던 수아원시인은 어떻게 셀 수 있었을까요?"

"집에 가서 뼈다귀를 세었을 거예요."

"야, 맞네.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맞아요. 수아원시인은 집에 가서 당장 먹은 물고기 뼈를 세어 보았어요. 칠판에 그려 볼 게요. 몇 개였는지 맞혀 보세요. 하나, 둘, 셋...."

"아홉개다"

"맞아요. 아홉개. 여기다가 예전에는 수를 몰라서 이렇게 돌을 갖다 놓았죠."

"기억나요. 양!"

"그래요. 그런데 이 수아나 가영이 원시인은 이제 수를 셀 수는 있었대요. 그런데 까먹지 않고 기억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대요.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주머니에다 생선뼈를 가지고 다녀요."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원시인도 그랬대요. 그런데 생선뼈를 가지고 다니니까 뭔가 문제가 생겼어요."

"곰팡이가 생겨요."

"그렇네. 또?"

"...."

"원시인들은 이게 제일 문제였던 것 같아요."

"아, 맞다. 비린내가 나요."

"맞아요. 비린내. 생선비린내 독한 거 알죠?"

"네."

"그래서 원시인들은 고민을 했대요. 쉬게 기억하고 다닐 방법을 없을까? 그래서 만든 게 가죽에다 표시를 해 놓은 거였어요. 이렇게요."


그렇게 해서 칠판에 가죽이라 여기는 종이 가죽을 붙여 놓고 0표 9개를 그렸다. 그런데 나중에 이것도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너무 무겁고 길어서 가지고 다니기 불편했다고. 그래서 만들어진 게 숫자라고. 이렇게 간편하게 만들어진 숫자를 우리가 잘 쓰고 있는 게 바로 조상님들 덕분이라고. 그러면서 메사포타미아에서 쓰던 상형 숫자와 이집트의 상형 숫자도 보여주며 지금의 숫자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살펴보게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오래 전에 준비한 수학공책으로 숫자 1을 쓰고 메소포타미아 숫자도 쓰고 숫자 1도 그리고 세상에 하나 뿐인 1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나', '엄마', '아빠', '해'와 '달'이었다. 어떤 아이는 '지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1의 의미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공책 뒤편 조성실선생님의 놀이수학 학습지를 펴서 부르는 만큼 색을 칠하고 숫자도 적는 활동을 하면서 오늘 수업을 마무리 했다. 앞으로 계속 다양한 수 세기 전략도 익히며 숫자에 대한 의미도 알아가는 것으로 수학 시간을 보내려 한다.


이어지는 국어수업에서는 낱자 'ㅏ, ㅓ'를 공책에 글로 쓰게 했다. 8칸 공책에 줄을 나누어 긋고 글자를 쓰는 연습, 받침 들어가는 글자를 익는 법을 다시 확인하고 글을 쓰는 활동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아이들이 점차 익숙해져 가며 별 것도 아닌 활동에 재밌다고 한다. 사실 오늘부터 이 활등으로 과제를 내주려 했다가 결석한 아이가 있어 다음으로 미뤘는데, 숙제가 부담스럽다던 아이들이 이런 정도면 괜찮다며 집에 가서 하고 싶다고 설레발을 쳐 주었다. 한 아이가 한 마디 하니 다른 아이도 한 마디 하고 난리였다. 다음으로는 어제부터 시작한 '겨울별 이야기'의 3단계. 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지개를 사각 크레용으로 그려가는 활동이었다. 박지희선생님의 굽은 선 그리기와 같은 활동을 8절도화지 크기로 그렸는데, 아이들은 한 번 해 봤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름 잘 그려 나갔다.


다만 급하게 그린 아이들이 선이 흔들려 아쉬웠다. 그렇게 점심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7일(금)에 치를 거산풍년기원잔치, 일영 시농제에 쓸 우리 텃밭 표지판과 구호를 외칠 현수막을 함께 만드는 시간으로 보냈다. 글자야 내가 써야 했고 아이들은 그 안에 색을 칠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사포에 크레파스로 감자를 그리게 해서 다림질을 하여 현수막에 녹여 스며들게 할 작정이다. 다들 한 글자씩 채워가며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귀엽고 기특했다. 그런데, 이 귀엽고 기특한 아이들 중 남자 애들에 대한 평가가 돌봄선생님으로부터 다르게 들렸다. 오늘 출장으로 송남에 갔다가 상담으로 다시 학교로 들어왔는데, 퇴근을 앞둔 돌봄선생님이 남학생들의 활약(?) 전해주었는데, 내가 보던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 돌봄선생님도 오늘은 엄하게 꾸짖었다며 좀 심하게 움직이며 규칙을 지키지 않아 힘들고 걱정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치 내가 부모가 되어 담임선생님이 귀댁의 자녀가 가정과 학교생활에서 얼마나 다른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요즘 남학생들이 내가 알던 아이들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감지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당연히 알아야 하고 알면서 또 아이들과 사는 법을 다시 터득해야 한다. 좀 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야 할 시절이 되는 것 같다. 보호자 상담이 끝나는 시절에 아이들과 상담도 이어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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