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6.)
어제 돌봄시간에 대활약을 펼친 녀석들이 교실로 들어오는데, 해당 인물 중 한 녀석이 들어오자 마자 대뜸 이런다.
"어제 00랑 싸우지 않았어요."
"글쎄, 그렇다고 용서가 되지는 않을 듯하네. 어제 돌봄시간에 어떻게 했는지 샘이 들었거든."
할 말을 잃은 듯 자리로 가는 그 녀석과 다른 녀석들, 그리고 전체 우리 반을 대상으로 나는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주로 빈틈이 많은 돌봄시간 같은 경우와 점심시간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어서 내가 딱히 관여를 하기도 그렇지만, 학교 공사 때문에 방과후와 돌봄까지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 아이들 문제일 수도 있지만, 결국 시공간의 문제도 결합돼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봤다. 뛰어 놀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고 모든 학교 살이가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라 아이들 탓만은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어른만큼이나 아이들도 이 여건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6개월은 이렇게 아이들에게나 우리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모쪼록 서로가 잘 이겨내길 바랄 뿐이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혼은 냈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며 했다는 걸 아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데....아무래도 무리겠지? ㅎ
오렌지 차를 마시면서 옛이야기를 한 편 들려주고나니 벌써 수업시간 30분이 지나간다. 아침 시간에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9시 넘어 교실에 들어오고 수업시간은 9시 10분인 것은 난 분명 불만이다. 우리 학교가 교사의 수업운영시간을 고려하고 급식시간과 방과후 돌봄시간까지 고려해야 하는 일반적인 공교육시스템에 있지만, 정작 시간 운영에서 혁신학교에 맞게 차별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10분만 더 늦게 여유롭게 수업운영을 하면서 10분 좀 늦게 마치며 하루를 마감할 수는 없을지. 이게 힘들다고 하니...내가 쓸데 없는 꼰대모양새를 갖춘건지....어쩔 수 없이 나는 오늘도 여유(?)롭게 수업을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어쨌든 나는 이렇게 할 것이다. 수업시간이 부족한 것은 또 다른 것으로 매꾸던지 하고 말이다.
첫 수업시간은 수학. 오늘은 숫자 '2'를 익히는 것으로 시작했다. 놀랍게도(?) 어떤 아이는 숫자 2를 쓰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대게 숫자 정도는 쓸 줄 아는 아이들을 만났는데, 숫자조차 쓰지 못하는 아이가 있어 앞으로도 좀 더 살펴 봐야 할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공책에 2를 쓰고 어제와 달리 오늘은 점 두 개를 찍게 해 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메사포타미아 숫자를 쓰게 하면서 시대를 달리한, 그리고 수의 감각을 함께 터득할 수 있는 구성으로 숫자를 써보게 했다. 그 아래는 공책이 대부분 1센티미터 간격의 점이 있는데, 예전에는 이걸 의미 있게 활용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은 해 보자는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안내를 했다. 숫자 '2'를 크게 쓸 때, 어느 위치에서 써야 하는지를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점을 찍게 했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아이들은 자유롭게 숫자를 쓰게 했는데 대부분은 따라와 주었다. 점을 활용한 그림을 그리는데에도 이렇게 해 보는 경험이 있어야 할 것 같았고 그래야 공책에 이런 점을 찍어 배포한 명분이 설 것 같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작업을 계속 할 생각이다.
그 다음으로는 아이들에게 세상에 두 개 밖에 없는 게 무엇이 있을까를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 답을 하지 못했다. 물론 쉬운 건 아니었지만, 딱딱하고 굳은 어른들의 머리와 생각보다는 상상보다는 나을 줄 알았건만. ㅎ 겨우겨우 힌트를 주면서 아이들 입에서 나온 건, '엄마, 아빠', '밤과 낮', '동생과 나' 정도였다. 그러고보니 세상에 둘 밖에 없는 걸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하고 나는 수학놀이 수업 준비를 했다. 각종 그림이 그려 있는 작은 딱지를 세 바구니에 넣고 주사위를 얹었다. 주사위 수에 따라 6가지 그림을 스무 번에 걸쳐 챙겨 가는 놀이었는데,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 했다. 물론 조성실선생님의 놀이수학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아직은 놀이수학에 참여할 아이들의 준비도가 떨어져 보였다. 일단 장난이 앞서고 자기가 챙겨야 할 딱지를 손에서 가지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 아이들이 곳곳에 있어 주의와 집중을 이야기 해야 했다. 겨우 한 트랙을 돌고나서야 적응을 하며 즐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이런 부분을 짚고 확인하고 앞으로도 놀이수학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주사위를 굴려 나온 딱지를 가져가기 스무 번. 이제 모둠에서 제자리로 돌아가 자기가 가져온 딱지를 배열하고는 수를 세어 공책에 표시하고 숫자를 쓰는 활동을 하며 마무리짓게 했다. 전에는 이런 활동을 주로 세는 것에 집중을 하여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에 초점을 맞춰 수업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이 배열이라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하고 조작을 통해 확인하고 가늠하며 숫자를 쓰는 것까지 이어져야 하는 1학년 수학에서 수의 감각을 익히는데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관점임을 이해하며 수업을 하게 되었다. 새삼 조성실 선생님이 강조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딱지 종류를 분류할 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종류별로 얼마나 많이 모았나, 무엇을 가장 많이 모았나 알아보려고, 즉 자기 필요에 따라 딱지를 분류합니다. 분류나 자료 정리는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저절로 자기만의 분류 방법을 익힙니다. 이것이 바로 수학적 경험이고, 사고력 신장입니다. 놀이를 통해 수학교육의 여러 가지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물론 짧은 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고, 경험을 많이 해야 쌓이는 것이지요."(이야기와 놀이가 있는 수학시간1. 교육공동체 벗, 31쪽)
오늘 마지막 시간은 국어였는데, 이것은 내일로 미루고 봄활동으로 당장 당겨 내일 있을 거산 풍년기원 잔치 1학년 현수막을 만들었다. 어제 일부 만든 작업 아래에 이전에 다림질로 크레파스 미술작품을 녹여 스며들게 하는 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현수막 주제가 감자라서 사포에 감자를 그리게 해서 다림질로 녹여 완성해 보려 했다. 그런대로 진행은 무난했는데, 역시나 이런 것을 할 때는 디테일이 중요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광목천의 두께와 크레파스 상태를 보고 해야 하는데, 급하게 상황을 만들 때는 결과가 늘 아쉬웠다. 오늘도 그랬다. 아이들이 다림질을 하고 잠깐 나간 사이에 크레파스로 직접 그려 부족한 결과를 채워 내긴 했는데, 역시 아쉽기는 하다. 다음에는 잘 준비를 해서 완성도를 높여야 할 것 같다.
문득 얼마 전 이윤엽 판화가의 새 책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서유재, 2023)을 읽으며 마음이 참 따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느림과 평화가 있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동시 같은 글로 담아내고 이윤엽 특유의 판화그림으로 완성해 낸 책의 제목.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우리 학급문집 제목 '자로 잰 듯 반듯하지 않아도'. 이 둘이 전하는 메시지가 요즘 내가 다시금 되새겨야 지점인 것 같다. 하~ 오늘은 우리 아이들과 만난 서른 여섯 번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