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야~ 약속을 지켜 줘!

(2023.04.07.)

by 박진환

출근을 늘 반겨주는 아이들 셋과 오늘도 하루를 시작했다. 한 녀석은 책에 빠져 있고 한 녀석은 종이인형 만든다고 바쁘고 다른 한 녀석은 친구들 곁을 돌아다니고. 나는 그 틈 사이로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곡을 켜 놓고 있다. 아이들이 오면 타 줄 ABC차를 꺼내 포트에 담고 교무실로 가 본다. 아침 일찍부터 거산풍년기원잔치를 준비하는 선생님 세 분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일손을 거들어 뒷마당에 다녀오니 아이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교실로 들어서며 반갑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아이들. 그 가운데 독감으로 사흘 넘게 고생한 지*이가 멋적게 들어서고 마침내 완전체가 된 아이들에게 오늘 행사에 쓸 우리반 현수막에 그려진 씨감자 아래에 자기 이름을 쓰게 했다. 그렇게 한 잔을 따르고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시작한 오늘.


첫 시간은 선 그림 시간. 오늘은 네 번째 단계로 요정들의 달리기 흔적을 크래용으로 나타내고 태양과 나무를 그리는 과정이었다. 마음 급한 아이들이 여전히 있고 마음은 급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까지 겹치면서 선이 흔들리는 모습이 아쉬웠다. 뭐 그래도 또 하고 또 하고 해야지. 차곡차곡 쌓이는 선 위로 해가 뜨고 나무가 드리워지는 간단한 선 그림 시간 뒤로 우리들이 만든 현수막을 들고 단체 사진 한 장을 찍고 곧바로 현관으로 나갔다. 이미 6학년 선배들이 풍물로 잔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곧바로 합류해 뒤를 따랐다. 시농제의 이름을 바꾼 풍년기원잔치. 학교 공사로 운동장도 사용하지 못해 뒷마당과 텃밭, 그리고 학교 길 건너 논으로 이어지는 길에 우리 새싹마을도 함께 했다.


1학년 새싹마을 텃밭에 둘러 선 아이들은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일찍이 보여주고 들려준 <감자는 약속을 지켜쓸까?>에 나온 이야기로 현수막에 쓴 "감자야, 약속을 지켜 줘~"를 힘껏 세 번 외치는 것으로 우리들의 다짐을 확인했다. 전학년 사이에서 현수막을 들고 예쁘게 소리치는 새싹마을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영상으로 찍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울 정도였다. 그렇게 잔치를 마무리 하고 중간놀이를 이후에 생태지원단 어머님들이 전해 준 축하 떡과 음료, 딸기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맛나게 먹는 아이들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떡과 딸기를 먹는 내게 한 녀석이 왜 뺐어 먹냐 한다. 같이 먹으라고 준 건데 ㅜ.ㅜ 난 삐친 척하고 나와서 교무실에 하소연을 한 뒤에 다시 들어갔다. 실실 웃고 있는 녀석들을 어떻게 골려 주어야 할지 두고두고 이 사건은 잊지 않을 생각이다. ㅋ


오후 시간은 공책에 홀소리를 배운 글자 모두를 정리하여 일부는 수업시간에 쓰고 나머지는 숙제로 내 주려 집에서 할 수 있도록 틀을 짜는데 시간을 보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장담한 몇몇 아이들과 입을 다문 나머지 아이들이 월요일까지 처음 나가는 이 과제를 어떻게 해 올지 사뭇 궁금하다. 지금껏 1학년을 네 번 해 보았지만, 이렇게 숙제가 걱정된다고 일찍부터 말을 한 아이들은 처음이었다. 어쨌거나 과제 학습은 필요하다. 숙제를 위한 숙제가 아니라, 학교 수업의 연장 선에서 복습으로 단단히 학습한 결과가 다져지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보호자 분들에게는 목표는 월요일이지만 다음 주 안으로 받으면 되니 부담스럽게 숙제를 강제하지는 않고 스스로 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려 한다. 벌써 4월의 첫 주도 지났다. 어제까지 비와 바람이 세차던 날이 오늘 맑은 날로 바뀌었다. 이번 한 주 돌아보면 자잘한 일들이 있었던 나날이었다. 흐리다 비가 오고 맑아지는 날처럼 그렇게 하루를 살고 또 살아야겠다.


* 오늘 아이들 말 가운데 재미있었던 것


"선생님, 왜 선생님은 목젖이 있어요?"

"잊지? 왜?"

"저도 있어요."

"앵? 애기가 무슨 목젖이 있어? 어른이 되어야 생기는 거야."

"아닌데요. 저 있어요. 한 번 보세요. 아~~"

"ㅎㅎ 입은 왜 벌려... 아.... 입 속 저 목젖. 선생님은 이 목젖을 가리켰는데."

"보자, 한 번 사진 찍어 줄 게. 너 목젖 함 봐봐."

"아, 진짜 목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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