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2023.04.04.)

by 박진환

학교 건너편 논밭길 옆 사슴농장에 주차를 처음 한 오늘. 지나는 길 무덤가 옆으로 목련이 만개한 채 한껏 그 자태를 뽐내는 중이었다. 그 아래로는 개나리꽃이 이제 곧 노란빛을 거두리라는 신호를 막 보내고 있었다. 그때 난 '아, 오늘 수업을 바꾸어야겠다.'는 맘을 먹었다. 목련으로 글자와 그림을 그리는 경험과 개나리로 화관, 목걸이, 팔찌, 반지를 만들어 즐기게 하고 싶었는데, 저기 저렇게 떡하니 내가 보지 못한 2년을 보내고 있었으니, 그동안 참 교실에 처박혀 무얼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교실로 막 들어서는데, 불이 여느 때와 달리 꺼져 있었다. '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교실문을 열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랬다. 아침 일찍 오는 삼총사 녀석 세 명이 내가 오기 전에 불을 끄고 숨어서 나를 놀래키려고 했던 것이다. 내 책상 밑에 두 명이 들어가 있었고 공기청정기 옆에 또 한 녀석이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발견하고 뭐라고 하자 어찌나 웃던지, 아침부터 이렇게 날 즐겁게 해주는 아이들이 또 있을까 할 정도로 반갑고 기분 좋은 놀래킴이었다.


이렇게 요란하게 시작한 아침. 오늘은 어제 열감기를 앓은 채로 진달래꽃전잔치에 참여했던 지*이가 결석을 하게 돼 아쉬운 날이기도 했다. 목련과 개나리로 놀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됐으니 말이다. 첫 시간에 옛이야기를 들려주기 전, 아침 차를 다 한 잔씩 마셨다. 이제는 내가 깜빡하고 있으면 녀석들이 나한테 막 시킨다. "오늘은 차 안 마셔요?"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뭘 마실지를 물었다.


"호박차로 할까?"

"다른 걸로 주세요. 그럼 무슨 차가 있지?"

"저번에 누가 산딸기차 가져왔잖아요."

"맞다. 산딸기. 누가 가져왔지?"

"저요, 저요."

"맞다. 우리 효*이가 가지고 왔지."

"그래, 오늘은 우리 효*이가 가져온 산딸기 차를 마시자."

"야~"

"선생님, 그거 맛있어요. 정말."

"그럴 거 같아.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그렇게 끓인 산딸기 차. 정말 향도 좋고 맛도 괜찮았다. 다들 맛난다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하기 시작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 사이로 옛이야기 '빨간 부채, 파란 부채'를 들려주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시작은 그동안 배운 홀소리를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었다. 지난해 <소리씨앗을 심는 아이>라는 책을 펴낸 위재호선생님의 한글 낱자 만나기 이야기에 실린 홀소리 손놀이로 시작을 했다. 이건 유튜브에도 실려 있어 함께 따라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다만 아직 몸으로 익히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어서 되풀이를 여러 번 해야 했다. 조금씩 몸으로 익혀가는데 익숙해질 무렵, 홀소리를 몸으로 모둠끼리 만들어 보는 것도 해 보았다. 모두들 즐겁게 참여했다.


사실 오늘은 수학 공부를 해야 할 시간인데, 내일 씨앗공부할 시간을 오늘 목련과 개나리로 노는 시간으로 바꾸어 보았다. 때때로 이렇게 갑자기 문득 무언가 수업거리가 생각나 시간을 바꿀 때는 나름 희열이나 반가움을 느낄 때가 있다. 오늘 같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수업일 때는 더욱 그렇다. 세 모둠으로 나눠 모둠장 손에 작은 투명 그릇 하나씩을 들고 길을 나섰다. 목련꽃 앞에서 선 아이들은 환호를 지르며 하얗게 빛나는 목련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는 직접 따기보다는 아래에 떨어진 잎 가운데 괜찮은 것을 모으기로 했다. 그 다음으로는 개나리 꽃잎을 따서 뒷꼭지를 따서 구멍 내는 법을 알려주고는 따서 모아보라 했다.


개나리 잎이 네 개였는데, 다섯 개 여섯 개가 있다고 놀라워 하는 아이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개나리 잎을 관찰하며 수다를 떠는 아이들. 모두가 즐겁게 시간을 한동안 보냈다. 그렇게 한 그릇을 다 채워 교실로 들어와서는 곧바로 아이들에게 목련을 나눠 주고 연필로 긁어서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잎에 연필로 긁어서 쓰는 걸 매우 힘들어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에 내가 만났던 아이들과 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아쉽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갔다. 다음으로는 개나리 잎 사이로 실을 꿰어 목걸이, 화관, 팔찌, 가락지를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꽤 많은 아이들이 실에다 개나리를 끼워 넣는 걸 어려워 했다.


다른 학교에서 1학년과 했을 때 무리가 없었는데, 개나리는 특성상 따고 난 뒤에는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시드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사이에 잎은 그대로 시들어 버리고 이미 꿴 개나리도 시들어 반짝반짝한 개나리 장식품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개나리로 무엇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 봄을 느끼는 활동을 해 보았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수업을 마무리 했다. 이런 상황을 나중에 교무실에 와서 말을 하니, 일반학교 아이들과 몸으로 주로 움직인 이 아이들과 차이가 있을 거라며 유치원때부터 글쓰기가 색칠 하기로 펜을 자주 쥐어 본 아이들은 아무래도 손근육이 차이가 있지 않겠냐 한다. 현편으로는 인정을 하면서도 그렇다면 다른 형태라도 그런 연습과 과정이 없었다면 이것도 아쉬운 점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오늘도 새롭게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 이어질 생태놀이 수업시간에는 이런 점을 더 감안한 수업준비가 필요한 교훈을 얻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늘 5교시에는 선 그림을 그렸다. <작은 배의 여행>에 이은 <겨울 별 이야기> 8단계로 나뉘어진 활동에서 2단계까지 해 보았다. 수많은 별들에서 작은 빛 기둥이 굵게 혹은 가늘게 내려 온 선 그림을 그리게 하는데, 익숙해진 사각 그래용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분명 이전과 다르게 거침없이 선을 긋는 아이들이 보였다. 물론 너무 거침이 없던 아이들의 선이 아쉽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오늘 서른 네 번째 만남을 보내고 마무리를 지었다. 내일부터 이틀간 비가 내린다고 한다. 한동안 아니 너무도 긴 시간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온 나라에 불이 나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좀 잦아 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비가 오는 날에는 아이들과 비와 관련한 시나 노래를 만나게 해 주고 싶다. 하여간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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