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며 응원하기

(2022.4.12)

by 박진환

오늘도 세 녀석은 교실에 없었다. 섭섭했는데, 이내 곧 들어와 인사를 하고는 내게 달려든다. 물을 끓이려고 정수기 근처로 가는데, 나를 따라나서며 고양이와 강아지 소리를 낸다. 귀여운 녀석들. 시끄럽게 재잘대는 녀석들에게 우유를 교실로 배달해달라고 했더니 그제야 조용해졌다. 교실로 들어와 물을 끓이고 오렌지차 티벡을 담고 나니 녀석들이 내 곁에 또 쪼르르 달려오더니 재잘된다.


"책 하나 읽어줄까?"

"네!"

"뭘 읽어줄까?"

"이거요."

"응? 아, 마주이야기 시네. 튀겨질 뻔 했어요."

"이 그림 웃겨요."

"그러게. 샘도 오래 전에 보고 안 봐서 다시 봐야겠어."


왜 비가 오는 지 알아? | 정세진


엄마 왜 비가 오는 지 알아?

할아버지가 우리 보고 싶어서

울기 때문이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나?"

"그래나 보다."


김꽃게 | 김지완


난 꽃개와 새우를 좋아하니까

김꽃게 김새우이고

누난 고기를 좋아하니까

김고기야.


"하하하. 재밌어요."

"그럼 넌 뭐니? 뭘 좋아해?"

"난 계란."

"그럼 넌 .... 하하하."


튀겨질 뻔 했어요 | 김진혁


우리 아빠 큰 일 날 뻔 했어요.

아빠가 드라이기 쓰다가

'퍽'하고 연기 났는데요

우리 아빠요

튀겨질 뻔 했어요.


"하하하. 재밌다."

"드라이기가 고장이 났나 보네."

"나는 옛날에 여름에 뜨거워서 구워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유치원 아이들이 말로 내 뱉은 걸 시로 옮긴 마주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문득 올해 이 아이들 하고도 이런 시집 하나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글보다는 말이 앞서는 아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게 있나 싶다. 이런 말들은 우리 아이들도 곧잘 하는 것이라. 일단 한 번 생각해 보자 마음 먹었다. 이내 아이들이 들어오고 옛 이야기 한 편 들려주고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이야기는 좀 길었지만, 화수분이야기와 의리가 있는 친구 둘의 이야기 섞여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에 매우 적합했다.


첫 수업은 수학 '4'로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 미처 어제 하지 못한 그림책 <숫자 3의 비밀>을 꺼내 들었다. 1이 남자를 2로 여자를 3이 자식을 뜻하는 것이라며 3이라는 것은 아시아인들이 완전한 수로 생각했다는 것. 그 가운데 옛이야기로 삼족구와 삼족오라 일컬어지는 다리 셋 달린 개와 까마귀 이야기를 꺼내어 3이라는 숫자에 대한 감각을 다시금 되새기고 4로 넘어 갔다.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일반학교 아이들과 달리 쓰고 그리는 활동이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에서 활발하게 이뤄지지는 않은 채 올라 온 것 같았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 상태여서 진짜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4''를 쓰는 순서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꽤 있었는데, 차라리 정말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면 되니까.


세상에 '4'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들도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네잎클로버 이후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동서남북이었고 자동차 바퀴 네 개를 힌트로 주었는데, 나중에는 네 발 달린 짐승이 나오고 네 시를 가리키는 시계까지 하나 둘씩 다시금 되새기는 과정을 밟았다.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4'와 관련된 사물과 세상이야기를 수학시간에 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고 재미도 있었다. 나중에는 1~9까지의 수로 빙고놀이도 해 보았다. 수를 가지고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아이들이 재미를 느낀 것만으로도 만족한 수업이었다.


그림으로 마무리 지은 아이들과 잠시 쉬는 시간을 보낸 뒤에는 국어수업으로 넘어갔다. 오늘은 어제 배운 'ㄱ'에 홀소리를 붙여 읽는 법을 다시금 확인했다. 문제는 우리 반 두 아이인데, 한 아이는 통과를 했는데, 다른 아이가 힘들어 했다. 외우지 않게 소리로 읽는 법을 가르쳤지만, 이것도 이 아이들에게는 쉬운 게 아닌 듯했다. 'ㄱ'라는 소리와 '끄'라는 소리조차 글자로 외워 읽으려 해서 소리가 지는 값을 이해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도 그랬지만,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가보자....4월 안으로 소리 값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그것만 되도 절반은 성공이니까. 오늘은 'ㄲ'을 배워서 그림책을 빅북으로 <꽁꽁꽁>을 보여주었다. 술 마시고 들어오신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냉장실에 넣고 문도 제대로 닿지 않아 벌어지는 일로 재미있게 그려진 그림을 아이들과 신나게 보며 'ㄲ'이 들어간 글자 '꽁꽁꽁'을 익혀 보았다.


오늘은 이렇게 국악시간에 이어 선 그림까지 이어지는 수업으로 오늘도 마무리를 지었다. 수업이 많은 날은 아이들이 조금씩 집중을 하지 못하고 딴 짓을 하거나 멍하니 있거나 자세가 자꾸 흐트러진다. 아이들 탓은 아닌데, 조금 더 적응해주고 힘을 내주면 좋겠다는 철저히 교사의 처지에서 아이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내일은 4교시이니 오늘보다는 훨씬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1학년의 3~5월은 길면 1학기는 정말 아이들에게 참으로 힘든 시절이다. 힘들지만, 무난히 이 시절을 넘길 수 있도록 돕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천천히 가는 것. 다행히도 거산이라는 공간과 거산의 교육과정이 속도를 내지 않아도 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교사나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것을 서로가 잘 이용하길 바랄 뿐이다. 오늘 아침 마주보며 마주이야기 시를 나누었듯이 앞으로도 서로 마주보며 응원하며 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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