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아주 천천히

(2023.04.11.)

by 박진환

교실에 들어섰는데, 아이들이 없다. 이상하다 싶은데 가방은 있는데... 어디 놀러 갔겠거니 하고 난 따뜻한 차를 끓일 물을 찾아 움직였다. 그러고 잠시 뒤에 아이들이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너희들 어디 갔다 이제 와?"

"유치원에 갔어요."

"유치원에?"

"네, 유치원이 좋아요."

"그럼, 뭐 유치원에 계속 있던지."

"잉~"

"뭐야. 초등학생이 유치원에 가 있고."


내가 안 와 심심하던 차에 오랜만에 유치원을 찾아 움직였나 보다. 거기다 새롭게 들어온 아이도 있다고 소문을 들었는지 그것 때문인지 아침 일찍부터 다녀온 아이들. 이어서 아이들이 들어오고 나는 따듯한 호박차 한 잔을 대접했다. 오늘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내리지는 않고 흐린 것이 그냥 넘어가려 하는 가 싶었는데, 오후에 결국 비가 흩날리기도 했다. 하여간 그렇게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 멍하니 있었는데. 아이들이 옛이야기 안 들려주고 뭐하냐는 듯 누가 선창을 하더니 다들 따라 소리를 친다. 나중에는 리듬까지 타기 시작한다.


"옛이야기 해주세요. 멍하니 있지 마시고요."

"옛이야기! 해주세요!. 멍하니 있지 마시고요."

"알았어. 알았어. 오늘 옛이야기는 말이야."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 첫 시간 수업은 수학이었다. 오늘은 '3'를 쓰는 법, 표기하는 법, 꾸미는 법을 익히고 숫자 '3'을 떠올리며 세상에 '3'하면 생각나는 걸 이야기 해 보기로 했다. 딱히 나오지 않는 것 같아서 나중에 이런 저런 힌트를 주면서 겨우겨우 맞춰 나갔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삼각형 같은 피라미드', '개다리 소반', '선풍기 날', 세잎 클로버' 따위였다. 3이 갖는 의미는 여러 가지 일 것인데, 일단은 너무 무겁게 다가가지 않았다. 내일은 <숫자 3의 비밀>이라는 그림책으로 지난 시간을 복습하고 숫자 4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다. 숫자 3을 쓰는 법도 새로 익혀야 하는 아이들도 보기 보다 많았다. 아무래도 일반 학교 아이들보다 학습량이 적었던 탓이 큰 모양이다. 오히려 잘 됐다. 내가 할 역할이 크고 잘못 배운 것을 바로 잡는 어려움을 줄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음으로는 바둑알을 손에 쥐고 짐작한 개수를 맞히고 해당하는 숫자를 공책에 기록해 가며 노는 놀이를 해 보았다. 처음에는 낯설어 했지만, 다들 조막만한 손에 바둑알을 쥐고 서로 맞혀가며 노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주어진 칸에 주사위 굴린 만큼 동그라미를 채워 나가는데, 이번에는 친구들끼리가 아닌 선생님인 나랑 전체 반 아이들의 대결로 이끌어 갔다. 조성실선생님이 자주 쓰시던 방식을 활용해 봤다. 역시나 아이들은 13명이 한 편이 되어 함께 응원하며 나와 겨루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런데 우스운 건 분명 똑같이 개수를 세서 나가고 있는데, 아이들이 표시한 게 각각 달라 이미 끝났다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 남았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 에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런 것도 과정이다 싶었는데, 칸이 많은 상황이고 실물화상기를 써서 움직이다 보니 내가 직접 두루 확인을 못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세는 즐거움으로 한 시간을 빠듯이 보낸 것에 만족했다.


오후 수업은 국어시간과 선그림 시간이었다. 마침내 오늘부터 닿소리를 시작하는 시간. 첫 시간은 어금니 소리라고도 하고 혀뿌리 소리라고도 하는 삼형제 글자 'ㄱㅋㄲ'을 먼저 익혔다. 우리 나라 글자는 발성기관의 위치에 따라 나오는 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소리라는 걸 물론 가르쳐는 주었다. 교재 <한글이 ㄱㄲㅋ>를 사용하여 실제로 소리가 나오는 위치와 작동하는 원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어금니 소리에서 이 세 소리가 어떻게 나며 글자의 이름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첫배움책> 'ㄱ'편으로 들어가 선그림 형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ㄱ'을 쓰는 법과 홀소리와 결합했을 때, 첫소리와 끝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는 수업으로 진행을 해 보았다. 대부분 아이들은 익히 감각을 가지고 읽는데 무리가 없었지만, 이 과정을 발견하는데 너 큰 의미를 두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글자가 만들어지고 소리가 나는지를 1학년도 알 필요가 있었던 것. 다행히 한글을 새롭게 익혀야 하는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무난히 읽어주었고 다른 아이도 가능성을 일단은 보여주었다. 천천히 나가려 한다. 아주 천천히.


비가 내린다. 바람도 세차다. 오늘 밤에는 한파까지 온다고 하니 4월 날씨 참 기괴하다.

수두가 번져 오늘부터 아이들 당분간 마스크를 끼며 수업을 해야 할 상황이 됐다. 오후에 소독업체를 불러 소독을 시작했는데, 비도 내리고 바람 부는 바깥에서 서 있으려니 작년 00 어머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신다. 오늘 둘째 상담 때문에 오셨다고 한다. 길을 나서시며 브런치에서 1학년 일기 잘 읽고 있는데, 샘이 엄청 난다며 덕담을 던지시고 가신다. 그러고 보니 6학년 아이들이 갑자기 보고 싶다.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선생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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