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1.)
정말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오늘은 4월 23일 세계의 책의 날 기념, 우리 학교의 작은 행사를 치르는 날이고 어제 현장체험학습겸 봄나들이를 다녀온 기념으로 큰 광목천에 핑거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세계 책의 날 기념으로 우리 학교 짝학년(1-6, 3-5, 2-4) 중 위학년이 아래학년에게 책을 읽어주며 관계를 돈독히 함은 물론 책에 대한 좋은 추억, 책을 매개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뜻을 두었다. 1교시는 그 준비로 시간을 보냈는데, 아래학년 아이들이 위학년 아이들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4월 23일 세계의 책의 날은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까딸루니아 지방 축제일인 '세인트 조지의 날과 1616년 세르반테스와 동시에 사망한 날이 이날인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런 유래에서 이번에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지난해 첫 거산초등학교 책의 날 행사에서도 이런 과정을 거치기도 했는데, 학교공사로 도서관이 없어 부득이 교실에서 선후배 사이의 책을 함께 읽는 시간으로 보냈다.
가까스로 준비를 마친 틈으로 6학년이 교실로 들어왔다. 어제 우리 교실에서 우리 반이 없는 사이에 책을 살펴보고 준비를 해 온 터여서 시작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각자 맡은 아이들에게 간 6학년이 1학년과 한 명씩 데리고 책을 읽는 풍경이 곧바로 이어졌다. 수줍은 듯 부끄러운 듯 그렇게 날아갈 듯하던 1학년 아이들의 몸짓이 푹 가라앉은 모습이 다정한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앉은 6학년과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졌다. 1학년 눈높이를 맞춰가며 책을 읽어주는 6학년의 모습은 지난해 익히 보던 6학년 아이들이 아니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자기 목소리에만 주목해 달라던 몇몇 아이들의 모습도 어찌나 진지하고 다정하던지. 몸으로만 움직이면 알 수 없는 모습, 책을 매개로 해서야 비로소 또 다른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말 도서관이 만들어지면 이런 모습이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만 읽어주고 끝나는 아이들도 있어 다른 책을 함께 골라보게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가르쳐 보게도 했는데, 어떤 아이들은 좀 더 준비해 온 것으로 어린 1학년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였다. 퀴즈도 준비하고 책 모양의 종이를 가져와 인상 깊은 장면을 그리게 했는데, 요 1학년 녀석들이 나하고 수업할 때는 대충 그리더니 형, 언니, 오빠, 누나 앞에서는 너무도 정성을 들여 한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아무튼 오늘 거산 세계 책의 날 행사로 1학년과 6학년 아이들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 너무도 뜻 깊었다. 끝나기 5분 전에는 준비한 꽃을 1학년 동생들이 6학년 형, 누나, 언니, 오빠에게 전달하는 간단한 의식을 해 보았다. 다들 수줍은 듯 밝은 모습이어서 좋았다. 1학년도 6학년도 다 재미있었고 해서 좋았다고 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우정을 쌓아나갔으면 했다. 곧바로 이어진 중간놀이 시간에도 1학년과 6학년의 만남은 쭉 이어졌다.
중간놀이로 아이들이 나간 사이에 나는 쉬지 않고 광목천과 핑거페인트를 준비했다. 매직으로 전체 스케치를 한 뒤, 아이들을 기다렸다. 중간놀이를 마친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와 나와 수업할 준비를 했다. 시작하기 전에 어제 현장학습을 다녀온 풍경과 소감을 나누고 그림책 한 권을 보여주었다. 제목은 <알록달록 손바닥 친구>. 외국의 어느 특수교육 대상 아이들의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며 의논하고 결정하여 손바닥으로 다양한 동물을 표현하면서 만들어 낸 독특한 그림책이다. 아이들과 이 책을 읽고는 한 번 이런 책을 우리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뭐 당연히 다 하잖다. 만들기 어렵지 않겠다는 말까지 하는 아이도 있었다. 하하하. 어쨌거나 이렇게 손바닥 그림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이야기도 나누다 마침내 봄 나들이 다녀온 어제 이야기로 밑그림을 그려 놓은 광목천 그림에 아이들을 몇명씩 나누어 나오게 하여 작품 하나를 만들었다.
저마다 자기 손으로 찍어낸 아이들이 만든 그림이어서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나뭇잎, 나비, 꽃, 태양까지 손으로 표현한 그림 앞에서 아이들은 서로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한 명씩, 친구끼리, 그리고 단체 사진까지. 사실 오늘 수업은 4교시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점심시간까지 이어서 하려 했는데, 다행히(?) 방과후 활동 미술시간이 빠지는 바람에 그 시간에 한 시간 더 수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뭐, 어차피 이것도 미술시간이기는 하니까. 하하하. 그렇게 하고는 남는 시간에 이번 주에 배운 'ㄴ,ㄷ'으로 10칸 공책에 숙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고 아이들과 헤어졌다.
요즘 서로 다툼과 지적, 때로는 비난과 몸싸움이 잦아지고 있다. 응석을 지나치게 부리는 아이도 있어 그런 아이들은 받아주지 않으면 반응이 이내 사라지곤 하는데, 돌봄교실에서는 또 통하는 모양인지 응석도 그런 응석이 없다. 아직은 다들 성장기에 있다. 나도 농담과 장난을 줄이고 다음주부터는 때때로 진지하게 서로의 삶을 돌아보자며 같이 사는 법을 다시 하나씩 익혀야 하지 싶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100일의 절반을 넘어선 51번째 만난 날이다. 300일 중 거진 20%를 지난 것이다. 뭔가 돌아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