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 잘 못했다가

(2023.4.25.)

by 박진환

첫 시간은 빠르게(?) 수학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어린이날 행사 건으로 직원들이 급 모여야 하는 일이 벌어져 시간은 더욱 부족했다. 차 한 잔을 대접하고 교무실로 가면서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이야기는 하되 다투거나 돌아다니지는 말아달라고. 그래서 그랬을까? 교실로 들어가는데 조용하다.


"와, 너희들 선생님이 없는데도 이렇게 조용했단 말이야? 야, 이거 모두 칭찬도장 찍어주어야겠는 걸?"

그러자, 00가 역시 여기에 초를 친다.

"선생님, 오기 전까지 여기 아이들 시끄럽게 떠들었어요. 막 돌아다니고."

"그럼 어떻게 조용해진 거지?"

"선생님 온다고 00가 알려줬어요."

"으...."


그렇게 시작한 첫 시간은 수학 '9'. 마침내 '9'까지 왔다. 다음달부터는 속도를 조금 빼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이렇게 천천히 가면 좋겠는데... 천천히 가서 그런지 아이들이 수학시간에 대해 자꾸 묻는다. 몇몇 아이들이 어제 오늘 내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이제 수학나라 안 해요?"

"선생님, 어제 수학 안 했는데요?"

"어제는 수학시간이 없었는데?"

"선생님, 수학 놀이 언제 해요?"


그런데, 어떤 애는 이런다.


"선생님, **는 수학놀이가 싫대요."

"왜 **는 하기 싫어."

"그냥 싫어요."

"할 때는 재미있게 하더니."


하지만 ** 녀석 나중에 수학놀이 하면서 웃으면서 즐기고 있었다. 재미없다 하지 않았냐 하니 멋적게 웃는다.


"9하면 생각나는 거 뭐가 있지?"

"9월!"

"9월 9일 9시"

"맞아. 또!"

"구미호!"

"와, 맞다. 구미호! 한 번 그려 볼까?"

"한자로 '구'요'

"아 그렇네."


이제 거의 마칠 무렵이 되니 아이들의 생각주머니가 터졌는지 이전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말을 꺼낸다. 이래서 수업을 단차시로 보면 안되는 게 있다. 한 시간 수업으로 아이들의 상태나 상황을 모두 진단하거나 예단할 수 없다는 걸, 이럴 때마다 느낀다. 긴 호흡으로 반복하고 나선형식으로 발전하면서 배움과 성장이 있는 수업. 아직 그림과 글자에 힘이 없어서 그렇지 이 아이들은 분명 2학기에는 크게 많이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오늘의 수학놀이는 아이들에게 빈 카드 안에 1~9까지의 다양한 형태의 점 개수를 찍게 한 뒤에 섞은 뒤 짝을 찾게 하는 놀이였다. 미국 초등수학 이론서에 있는 것을 처음으로 따라 해 봤는데, 역시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점카드를 아이들이 직접 만든다는 점이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 위치나 크기, 배치, 어울림에서 무리였지 않나 싶다. 그들의 말을 믿지 않고 싶었는데...적어도 이부분에서는 그래도 각자 카드를 만들면서 수의 개수에 대한 감각, 묶어 세는 감각을 좀 더 높이는데는 작은 도움을 주었으리라 그냥 믿어버렸다. 아이들은 나름 즐겁게 참여하여으니 말이다.


오늘 국어시간은 'ㄸ'을 배우는 시간. 'ㄸ'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건, 역시 초등1학년이 가장 혐오하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똥'. 'ㄸ'의 이름과 소리값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책 <아이스크림 똥>을 소개해 주었다. 이미 본 아이들도 있었지만, 담임이 보여주는 그림책은 또 다른 맛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는지, 역시나 집중해서 본다. 특히 이 그림책을 만든 김윤정 작가를 5월 25일에 1학년 교실로 초대한 터라 자신 있게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우리 교실로 이 그림책을 만든 작가님이 오신다고 하니 어찌나 반가워하고 좋아하던지. 오랜 인연이 있어 해마다 초대를 했다 작년에 새 책 작업으로 잠시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 기회가 있어 1학년 교실로 초대할 수 있어 정말 반가웠다. 작가님도 내가 있는 거산을 찾아 올 수 있다니 무척이나 기뻐했다. 11월에 있을 거산독서한마당에 남편 최덕규 작가님이 1학년 교실을 방문할 터여서 더욱 그랬다.


"야, 이게 과연 무얼까?"

"아이스크림 같이 생겼지만 똥인 거 알아요."

"그래, 뭐 한 번 보지."


중간에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그림책을 넘기면서, 집, 코, 버섯 따위의 그림에서 마지막 똥에 이르자, 아이들과 함께 소리 지르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문장을 함께 크게 소리치게 했다.


"나는 똥이다!"

"그래, 잉? 너희가 똥이라고?"

"아이, 그게 아니잖아요."

"아니, 너희가 똥이라며~"


그러자 그때, 몇몇 아이들이 나오면서 한 마디씩 했다.


"얘들아, 우리 선생님한테 우리 똥 묻히자."

"맞다, 우리 똥을 묻히자~~~~"

"야, 이건 아니잖아. 똥냄새가 너무나 저리가~~"

"우리가 똥이면 선생님은 대왕 똥이에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꼭 이럴 거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아이들에게 호되게 당했다. 아이들이나 나나 이런 시간을 즐긴다. 서로 엉키고 부대끼며 사는 삶. 나는 아이들과 이런 삶이 참 좋다. 요즘 들어 체력이 부쩍 딸리지만,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것 같다. 이제 이렇게 아이들과 사는 날도 정말 머지 않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우리가 만난 55번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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