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는 어린이들에게 잃어버린 삶을 되돌려 주는 것
얼마 전 매우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오랜 만에 '학급문집'으로 작은 모임선생님들께 내 작은 실천을 전하려 길을 나섰다. 모처럼 대면 강의여서 피곤했지만 기분은 가벼웠다. 그렇게 시작한 강의. 한 시간을 마치고 쉬는 시간. 젊은 교사 한 분이 내게 와 자신의 실천을 내 보이며 의견을 물었다. 빠르게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실천했는지를 설명하던 선생님에게 이런 저런 경험을 전하다 나처럼 안 된다 하기에 좀 더 실천하고 공부하시면 깨닫게 될 것이라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을까?
"선생님은 질문에 응답하는 자유로운 강의라 해서 물었는데, 더 공부해라 더 하면 알게 될 거라고만 하시니 무시 당하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경력이 짧다고 무시당해서 불쾌해요. 선생님 문집을 보면 1학년 아이들이 코로나 상황에도 놀러 다녀온 글이 있는데, 다른 아이들이 그런 글을 보면 어떻게 할 것인지 이해가 안 가고. 집에서 글을 쓰게 하면 학부모님들이 도와주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 글인지 의심스러워 학교에서만 지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물었는데, 더 실천하고 공부하라고만 하니..."
정말 당황스러웠다. 난 단지 이것저것 생각이 많고 염려가 많아 열심히 실천한 자신의 글쓰기 지도에 확신이 없는 것 같은 젊은 선생님에게 좀 더 실천해 보시면 깨닫는게 있다는 뜻이었는데, 그에게는 그런 모호한 말이 자신을 무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았다. 한편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20년간 강의를 하면서 한 번도 겪지 못한 반응이어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난 호흡을 가다듬고 애써 침착해 하며 그 젊은 교사에게 당신을 무시할 의도도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 말을 전하며 이해를 구했다. 다만 학생을 교육하면서 학부모들에게서 듣는 불편한 지적(그는 이런 과정을 민원이라 표현했다)을 맞서 싸울 자신이 없는 것 같다면 어떤 교육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젊은 교사인 당신은 자신의 지도에 대한 확신부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런 걱정 저런 걱정하며 학부모들의 눈치를 살피며 지도하는 글쓰기 교육으로는 어떤 것도 해 낼 수는 없다고 했다. 이 밖에도 이런 저런 말로 이해와 설득을 구했지만, 안타깝게도 젊은 교사는 강의가 끝날 때까지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맨 앞에서 강의를 하는 나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다른 선생님들의 긍정적인 눈빛과 질문들이 그나마 끝까지 내가 강의를 마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10년이 자나면서 자신도 아이들 글을 읽어 낼 수 있게 됐다며 항변하는 한 젊은 교사의 항변을 떠올리며 안타깝고 아쉬운 생각이 절로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강의 속에서도 누누히 강조했지만, 나는 글쓰기로 어린이들의 삶을 돕고 어린이들이 써온 글로 성장을 도왔지, 글쓰기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이런 점을 강의 곳곳에서 피력했지만, 그가 이해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구나 그날은 학급문집 강의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할 시간은 없었다. 돌아보면 이런 지점을 내가 좀 더 자세히 언급해야 해야 하지 않았나 싶어 반성이 되기도 했다. 학급문집 강의는 잘 하지 않는데, 최근에 요청하는 곳이 있어 가게 되는데, 글쓰기와 학급운영이 전제가 되지 않는 학급문집 강의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는 그 젊은 교사의 분개(?)한 반응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을 쓸 글은 그 젊은 교사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아울러 당시 젊은 교사에게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내 부족함을 채우고 공립학교에서 담임교사가 글쓰기에 대한 철학과 관점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다시금 보완하고 보충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쓰기 교육은 서로에 대한 믿음에서
어린이들에게 글쓰기는 삶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은 이오덕선생님의 글쓰기 철학을 익혀 온 지난 30년 간 동안 줄기차게 다져온 생각들이다. 처음에는 그 뜻을 잘 알지 못했다. '도대체 삶이 뭐지?' '나도 내 삶을 잘 모르는데, 어린이들의 삶을 어떻게 돕는다는 것일까?' 결국 나는 어린이들 곁에서 함께 살며 겨우 겨우 삶에 대한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내가 존경하고 내 학급운영의 모델이 돼 주었던 강승숙선생님은 그의 저서 <행복한 교실>(보리, 2003) 에서 '학급운영이란, 교사가 아이들 곁에서 살아주는 것'라 하셨다. 학급운영이라고 3월부터 12월까지 계획을 세워 수업과 생활을 하는 것에 앞서 어린이 곁에서 살아주는 교사.
곁에서 살아주는 교사는 아이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 돕고 때로는 보호자와 상담을 통해 올바른 성장을 도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글쓰기교육은 어린이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교사에게 건네주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어떤 글에도 학부모는 자녀와 교사에게 격려와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전제가 되어야 비로소 어린이들이 자신의 삶을 담은 글쓰기로 자신의 성장을 돕고 자신의 삶을 가꿀 수 있는 것이다. 교사가 학부모에 대한 믿음이 없고 어린이 글쓰기 지도에 확신이 없어 이른바 '민원'에 흔들린다면 결코 어린이의 삶을 도울 수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어린이에게 글쓰기는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어머니의 행복 | 김해 어방초 4학년
어머니는 계속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지만, 아직 취직을 못하셨다. 근데 오늘 우체국 아저씨가 준 편지를 받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나는 마음이 타는 줄 알았다. 너무 속상해서 울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엄마는 계속 울었다. 어머니는 계속 나를 안고 울고 있었다. 눈물을 그치고 어머니는 내 눈을 쳐다 보셨다. 어머니는 오늘 취직했다 하셨다.(2006)
이런 글을 어떤 테크닉을 가르쳐서 얻을 수는 없다. 학급살이에서 교사가 어린이에게 믿음을 주고 솔직한 생활글이 서로에게 나눠지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자 가치로 어린이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글이 아닌 삶을 나누는 학급문화와 교사와 어린이의 관계가 학교와 가정에서 써 내는 글의 내용과 질을 좌우한다. 공립하교에서 난 이 이상의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본댜. 요즘 메타인지가 어떻고 문해력이 어떻고 하지만, 그것에 앞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 삶을 나눌 수 있는가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다면 어떤 교육도 가능하지 않다. 이런 믿음은 그대로 보호자에게도 전달이 된다. 학기초에 보호자들에게 담임의 교육철학과 1년의 교육과정 운영과 학급살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그대로 전달되어 믿음을 주는 것은 어린이들의 변화이고 말과 행동이다. 그제야 담임교사의 교육력이 발휘되어 가정에서 글쓰기 교육도 설득력 있게 가능하다.
글쓰기는 어린이들에게 잃어버린삶을 돌려주는 것
나는 해마다 어린이 글쓰기를 시작할 때, 생활글 지도로 시작한다. 그전에 일단 글을 써오게 한다. 오늘을 사는 어린이들의 삶이 글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읽어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대게 고학년의 경우, 아니 이제는 저학년에서조차 자주 나타나고 닮은 글감들이 되풀이 되곤 한다. 맛집과 먹을 거리. 방송과 모바일에서 수없이 먹방이 퍼지고 가정에서도 이른 흐름에 동참하자 어린이들의 삶도 그대로 그 틀에 갇히게 된 것이다. 거기다 고학년일수록 게임이야기가 많아지고 여학생은 화장이야기가 많다. 학교이야기보다 학원이야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아이돌과 연예인 이야기도 곧잘 나온다. 문제는 이런 글감들이 늘 되풀이 되면서 어린이들이 더 이상 쓸 게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삶은 자본과 모바일의 확장으로 빠른 속도로 평준화, 평법화되고 있다. 돈을 써서 놀러가고 보러가고 먹으러 가고 즐기러 가는 일만이 곧 자신의 삶이라 여기기 시작한다 것이다. 자본화된 어른들의 삶이 곧 어린이들의 삶이 되고 아이들은 이 외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거나 가질 까닭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글은 밋밋해지고 글쓰기는 삶에서 멀어지고 테크닉으로 전락하면서 기능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글은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만 잘 쓸 수 있는 것이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의 전유물이 되어 간다. 더 이상 글쓰기가 어린이들의 삶을 돕는 도구가 되지 못하고 차별하고 구별짓는 도구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글쓰기는 학교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배워야 하는 높은 학습력을 요구하는 기능이 돼 버렸다. 갈수록 어린이들이 글쓰기에 대해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힘든 노동으로 여기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어린이의 삶을 돕는 도구로서 가장 먼저 작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이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놓치거나 잃어버리고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내가 어린이들에게 글감을 던져주지 않는 까닭은 이런 삶을 찾게 하기 위해서이지 글감 찾는 능력이란 게 따로 있어서 그런 걸 찾게 하기 위함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바로 같은 또래 혹은 다른 학년의 어린이가 쓴 글을 들려주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놓치고 사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런 삶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이다. 어린이들은 이런 삶을 만날 때면 그런 건 나도 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삶을 돌아보는 경험을 자주 하지 못하면 대게 어린이들은 이런 글을 쓰지 못한다.
거꾸로 본 세상 | 김해 어방초 6년 김00
오늘 4시 50분쯤에 집에 전화가 왔다. 전화한 사람은 유리였다.
“여보세요?”
“민정, 내 유린데 놀이터에서 놀래?”
“누구랑?”
“해인이랑.”
“그래, 그럼 지금 나와.”
“어!”
나는 얼른 준비를 하고 서둘러 나갔다. 내가 빨리 온 건지 애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잠시 뒤 친구가 오자 ,
“왜 이렇게 늦었노?”
라고 미끄럼틀에서 말하는 순간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철봉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내 몸이 거꾸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정말 그냥 앞으로 본 그대로 봤던 세상과 너무 다른 세상을 보는 듯 했다. 정말로 알지 못했던 하늘 아래 아파트, 가게, 상가, 여러 건물들이 빈틈없이 빽빽이 자리하고 있었다.
“민정, 미안! 늦었제? 뭐하노?”
“아니~ 야~ 거꾸로 본 세상 정말 멋지다.”
“무슨 말인지.”
오늘 내가 본 ‘거꾸로 본 세상’은 정말 멋진 세상이었다.(2004. 4. 16)
누구나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써 보려 하는 어린이는 극히 드물다. 이런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과 2011 개정국어교육과정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까지만 해도 일기란, 하루 중 일어난 일을 돌아보고 가장 특별한 것을 적는 것이라고 했다. 매우 오랫동안 우리 어린이들은 교과서와 교사의 지도로 일기나 생활글은 특별한 것을 적는 것이어야 했다. '거꾸로 본 세상'이라는 생활글처럼 누구나 겪지만 그것을 글로 쓰게 가르치는 것. 이것이 바로 읽어버린 어린이들의 삶을 되살려 주는 일이다. 쓸 거리가 없다고 항변하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다양한 삶을 자주 들려주는 과정에서 어린이들은 스스로 깨닫는다. '저런 삶도 글로 쓸 수 있구나. 보잘 것 없어 보였던 하찮은 삶도 저렇게 글로 쓰면 빛이 날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다. 어린이 글쓰기는 어른과 어린이가 서로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점차 잃어가는 삶을 되찾도록 안내해주고 그것을 말과 글에 담아 나눌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비슷해지거나 비슷해져야 안정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남과 다른 삶에 대한 가치와 믿음을 깨닫게 해주고 응원해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 교육이 있고 글쓰기는 어린이들의 삶을 도울 수 있는 훌륭한 도구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자신의 삶에 유익한 도구라고 여길 때라야 글쓰기가 더 이상 불필요한 노동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내가 아이들로부터 좋은 글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오덕선생님의 가르침 바탕에 이런 철학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갈 때부터였다. 내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공부와 실천이 오랫동안 이어져서야 가능했다.
아래 소개하는 책 중 멘 위쪽 <아이들 글읽기와 삶읽기>(우리교육, 2009)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내 곁을 살아 간 어린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며 얻은 글로 에세이를 쓴 것이다. 이어지는 <내 꿈이 어때서>와 <지구를 지켰다>(2016, 휴먼어린이)는 경기 시흥에 계신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소속 임연아선생님과 내가 문집에서 좋은 글들만 다시 추린 생활글모음집이다.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삶을 이해시키는데 좋은 글이 없다면 이런 책에 담긴 어린이들의 글을 들려주거나 읽게 하는 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