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은 가능한가?

- 학교에서 어린이 글쓰기 교육이 불가능한 현실과 아련한 희망에 대하여

by 박진환

"안 그래도 00이가 글씨도 그렇고 쓰기도 그렇고 해서 논술 학원에 보내려고요."

"선생님, 00는 00이모가 하는 논술학원에 간다던데요?"

"00는요, 어떤 선생님이 와서 저널 글쓰기도 하고 그런대요."


오랫동안 어린이 글쓰기 교육을 학급운영과 수업에서 소화를 하면서 아이들 글이 달라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보람이 크다. 그럼에도,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보호자들의 생각은 다르거나 더 멀리 생각하는 경우가 잦았다. 일단 생활글이나 시 종류의 글 쓰는 정도로 아이들의 글쓰기 성장했다고 보니 않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여전히 학습의 도구로 여기는 성향이 강한 우리네 교육풍토에서 어린이의 삶을 돕는 글쓰기가 자리를 차지할 여지는 너무도 좁다. 그러니 이런 수준의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보호자들은 학원에 글쓰기 교육을 맡기곤 한다.


입시교육에서 만들어진 논술교육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글쓰기 문화도 지배해 버렸다. 문제는 학원식 초등 논술교육이 패턴 위주의 기계적인 글쓰기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실질적으로 생각하는 글쓰기, 비판적인 안목을 기르는 곳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교육이 아니라 기술을 가르치는 글쓰기로 아이들이 진정한 성장을 도울 수 없지만, 보호자들의 생각은 다른 데 있다. 심지어 학교 교사들조차 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논술 학원을 권하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학교에서 글쓰기는 이미 포기에 가까운 상황이 아닐까?


학교의 올바른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왔다는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도 일반학교와 다르지 않은 풍토가 고착화돼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교과서 이외에서는 쓰기교육이 되지 못하니 아이들 사이의 쓰기 격차가 꽤 크다. 가정에서 신경을 써서 책읽기와 글쓰기를 그룹과외하듯 만드는 보호자들의 자녀가 그런 격차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학교가 제 기능을 못한 탓이 가장 크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학교의 문제를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지 못하고 개별로 해결하여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심화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공동체 문화를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자도생의 생존욕구가 너무도 잘 드러나는 모순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내 교직경력 30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오덕선생님과 관련 단체가 오랫동안 글쓰기 교육에 대한 방향과 철학을 외치고 노력했지만 학교 현장의 변화는 너무도 미미하다. 결국 일부 몇몇 교사들의 노력과 실천, 전문성으로 한정된 지역과 학교, 교실에서만 글쓰기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교육과정에 쓰기쓰기교육과정은 있으나 기능을 잘게 쪼개 학습목표 위주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구성하는 수준으로서는 우리 어린이들의 쓰기능력을 공립초등학교가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게 내가 그동안 경험하고 지켜봐 온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강의를 듣고서 많은 점에서 공감을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글쓰기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면 기존 교육과정 말고도 학급운영에서 꽤 많은 시간을 확보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가 첫번째 질문이고요. 두 번째는 글쓰기를 그렇게 강조하지만 가르치는 교사들이나 배우는 학생들이나 공통적인 게 쓰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끝으로 국가교육과정만으로 쓰기교육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학교는 기존 쓰기교육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새롭게 재구성하여 우리 학생들에게 투입해야 할까요? 참으로 힘든 문제인 것 같아 이렇게 질문을 드려봅니다."


지난주 제주 00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줌으로 세 시간 동안 저학년 글쓰기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 강의를 했더랬다. 다음주 세 시간을 더해 중고학년 글쓰기와 학급문집까지 하면 총 여섯 시간동안 글쓰기에 대한 강의를 하는 셈이다. 그 한꼭지를 끝내는 마지막 지점에서 한 남 선생님이 위와 같은 질문을 하셨다.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질문이고 그동안 내가 글쓰기 교육을 실천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어서 나는 정성을 다해 답을 해드렸다.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방금 해주신 질문이 제가 말씀드린 것을 다 포함하는 엄청 중요한 질문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신 세 가지가 사실은 한 가지로 이어지는 질문이라는 것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시간문제인데요.

기존 국어교육과정에서 쓰기교육과정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듣기말하기 읽기쓰기가 통합된 채로 이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따로 쓰기가 강조되어 지도가 되려면 가르치려는 학교와 교사가 읽고 쓰는 것에 대한 확실한 철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것은 학습된 철학이겠지요. 독일에 아시겠지만 헬레레랑에라는 초중종합학교가 있지요. 운 좋게 저는 그 학교를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 학교의 역사와 성과를 책으로 펴낸 <꿈의 학교 헬레네랑에>(착한책가게, 2021)이라는 책도 있고요. 그 책의 저자이자 교장이었던 '에냐 리겔'이 우리 '학교에서 읽고 쓰기를 강조하는 까닭'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 게 있습니다. 그가 말하길 프로젝트 중심의 혁신교육을 추진해 인정 받은 헬레네랑에에서 '읽고 쓰기'를 강조하는 까닭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는 개인의 필요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기대를 이루기 위해서 읽고 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지이요. 다른 한 가지는 사회적인 필요라고 했습니다. 쏟아지는 언론기사와 관공서 문건들 속에서 비판적인 눈으로 세상을 정확히 읽기 위해서는 읽고 쓰기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라는 것이지요. 나찌독제체제의 경험이 있었던 독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접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국어교과와 읽고 쓰기를 대하고 있을까요? 너무도 입시 위주의 관점에서만 읽고 쓰기를 대하여 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둘째, 쓰기의 어려움 문제인에요.

스티븐 핑커라는 세계적인 언어학자가 있습니다. <언어본능>(동녘, 2008)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거기서 그가 뇌를 연구해 얻은 결과,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독서 잘 하는 뇌는 없다'. 매우 놀랍고도 충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사람의 뇌는 일정한 발달단계가 있는데, 그것을 거스르는 조기 언어교육이 사람을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주장하기도 하지요. 아울러 사람의 뇌는 애당초 문자에 친숙하지 않다는 주장도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인류에게 문자의 역사는 매우 짧습니다. 인류가 문자를 만나고 다루기 시작한 것은 거의 최근의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인류에게는 문자가 없었을 시절, 문자를 만나지 못했을 시절이 더 오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류에게 문자가 뇌에 빠르게 받아들여질리는 없겠지요. 문자를 이렇게 읽기도 힘든 일인데, 더구나 쓰기는 것은 사람에게 매우 고차원적인 작업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쓰기가 힘든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러니 읽기와 쓰기를 좀 더 발달단계에 맞게 쉽게 적용을 시키도록 노력하는 일은 엄청 중요한 작업이겠지요. 즐겁게 재미있게 책을 읽는 문화, 즐겁고 신 나게 글을 쓰게 하는 지도법과 삶에서 읽기와 쓰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하는 교육과정과 방법은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강요된 경쟁적 받아쓰기로부터 시작해서 반복해서 쓰게 하는 지루한 쓰기숙제, 기계적이고도 양적인 무미건조한 쓰기교육과정과 교과서, 입시위주의 논술쓰기로 쓰기에서 점점 아이들을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교사의 학습과 실천, 학교의 노력이 없다면 우리네 공립학교에서 쓰기교육은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만 이야기가 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쓰기를 포기하는 '쓰포자'도 우리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끝으로, 학교에서 쓰기교육과정의 문제입니다.

오랫동안 교사로 아이들의 쓰기를 고민하고 가르쳐 본 결과, 국가에서 국어교육과정에서 담긴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학습목표 위주의 잘게 쪼갠 교과서로 우리 어린이들의 쓰기교육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쓰기교육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교사들이 공유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시간과 노력이 엄청 들겁니다. 저도 이만큼 오는데 30년이 걸렸으니까요. 아울러 학교차원에서 국가교육과정과 학교교육과정, 교사교육과정을 어떻게 하면 유기적으로 이어지게 해 아이들이 쓰기에 두려움을 갖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고 즐겁게 글을 쓰게 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적용하는 경험을 계속 쌓아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교육과정이 있지만, 우리가 만나고 있는 학교 아이들의 삶과 읽고 쓰는 수준을 잘 살펴 거기에 적합한 방법을 찾아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이 위계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합의도 매우 중요합니다. 학년군을 기준으로 최소한의 쓰기교육의 내용과 범위를 설정하고 다음 학년군에서 불필요한 힘을 쓰지 않도록 체계를 잡아가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한 가지는 '글쓰기 교육'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교사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이오덕선생님의 글쓰기 철학을 공부하면서 나 스스로 깨달은 것은 '글쓰기란, 잃어가는 아이들의 삶을 되돌려 주는 것'일는 결론을 냈습니다. 앞서 그 의미를 설명해 드렸지요. 글쓰기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바뀌지 않고서는 결코 교육이 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학부모 교육입니다. 학교차원에서 하는 글쓰기 교육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보호자들과 공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시간이 갈수록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끝으로 교사들의 글쓰기가 뒤따라야 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자기 삶과 실천을 글로 쓰는 경험과 나눔이 선행이 되지 않고서 학교 글쓰기 교육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봅니다. 질문해 주신 것에 제가 정확한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글쓰기 강의로 이런 저런 곳에 초대를 받고 있지만,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희망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어린이를 믿고 나가는 실천과 그들의 삶을 돕는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희망 여부와 상관없이 남는 중요한 과제일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시덥지 않아 보이는 글쓰기 교육 관련 글을 쓰는 까닭도 여기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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