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7.)
학교재량휴업일까지 포함하면 4일간의 연휴였다. 아침 출근길이 막혔다. 평소보다 조금 늦었지만, 겨우 제시간에 교실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없다. 또 유치원교실로 갔나? 아님 놀이터에 있을까? 갑작스런 공문 요구로 아침부터 업무로 시작을 해야 했다.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 후딱 헤치우니 아이들이 몰려 온다. 다들 지난 4일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하느라 시끄러웠다. 그래서 오늘은 시간을 바꿔 학급다모임 시간을 첫시간으로 옮겼다. 앞으로도 이렇게 할까 싶다. 혼자서 떠들지 말고 앞에 나와서 지난 나흘간의 이야기를 하라 했다. 이제는 뭔가 자연스러운지 스스럼 없이 발표를 한다. 격식을 갖추지 않고 그냥 자기 이야기를 나와서 하게끔 했더니 3월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게 말을 꺼낸다. 낯설게 00녀석은 말을 질질끌며 이야기 하길래 흉내를 내며 왜 이러냐고 했더니 겨우 말을 고쳐 말한다.
아이들의 지난 4일은 풍요로운(?) 휴일이었다. 캠핑에서부터 팬션에 이르고, 아산 인근에서 먼 울산까지 가깝고도 멀지만 신나는 휴일을 보내고 돌아왔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나야 당연히 어린 시절, 이런 풍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 넘기겠는데, 이제 27살이 된 내 아들과 나는 저 어릴 적 저렇게 즐기며 살았을까? 토요일도 근무를 해야 했을 시절. 방학은 길었지만, 내 할 일이 더 고민이었던 시절.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난 참 해준 게 별로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잠시 멍해 있었다. 그때였다. 아이들이 마치 노래를 부르듯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00퇴장하시고 00 입장하세요. 이제 레디 액션!"
"이게 무슨 말이야? 다시 해 볼래?"
"00퇴장하시고 00 입장하세요. 이제 레디 액션!"
"아~~ 하하."
우리 아이들 중 몇명 여학생은 리듬을 타면서 어떤 상황을 이렇게 구호나 노래로 만들어 아이들을 호응을 이끌어 낸다. 이끌어 주는 아이도 아이지만, 호응해 주는 아이들이 있어 분위기는 금세 절정에 이르고 흥이 난다. 나중에 국어시간에 겹모음 공부시간에도 전래동요를 시키지 않았는데도 앞서 몇몇 아이가 부르자 따라 부르는 모습도 연출이 됐다. 덕분에 내가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컸다. 말 많고 딴죽걸고 가끔 대들기도 하는 아이들이지만, 이렇게 자기 흥에 겨우 뭔가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건 수줍어 나서지 못했던 아이들도 변화하게 만드는 큰 힘이 돼 주고 있다. 적정수준의 학습인원과 적정수준의 문해력을 갖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조화를 이루면 서로에게 배우는 게 많은데 이번에 맡은 아이들이 딱 그런 것 같다.
오늘 두번째 시간은 50까지의 수를 배우는 수학시간. 오늘은 지난 번에 한 이후로 11부터 30까지의 수를 읽고 세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직도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시간. 생각을 하면 적절히 알 수 있는데, 생각하지 않아 안타깝고 안쓰러운 시간. 그럼에도 함께 배워가야 할 시간을 겨우겨우 넘기면서 숫자 놀이판으로 주위위 놀이도 하고 놀이판을 직접 만들면서 50까지의 수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도 거쳤다. 나중에는 빙고놀이로 50까지의 수를 익히게 했다. 이 과정을 아이들 모두가 즐겼다. 어느 정도 50까지의 수에 익숙해지고 있는데, 내일까지 과정을 지켜 보고 다음주까지 해야 할지를 지켜 볼 작정이다.
국어시간에는 겹모음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다음주까지 겹받침까지 이어져가며 기본 홀소리이와 닿소리와 결이 좀 다른 글자를 익히며 낱말도 익혀나가려 구상 중이다. 에전에는 이런 과정을 빨리 끝내고 낱자 따로 낱말 따로 갔다면 이번에는 낱자와 낱말을 함께 가져 가려 하고 있어 좀 더 긴 호흡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아이들이 있어 살짝 걱정이긴 하지만, 조급해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매번 한다. 두 아이가 아직 믿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길게 보고 믿고 가려 한다. 당장 다음주부터는 가정학습을 요구해야 할 것 같고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에 따로 남겨 가르쳐야 할 상황이 됐다.
2학기에도 글자를 읽지 못하면 곤란하기 때문인데.... 어쨌든 오늘은 'ㅐ, ㅔ, ㅒ, ㅖ'를 익혔다. <첫 배움책>으로 익히고 홀소리 공책에 옮겨 낱자를 익히는 일반적인 과정을 거쳤다. 이제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러운 만큼 정성을 들이는 부분이 늘 이 아이들에게는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다. "천천히, 예쁘게"를 강조하지만, 조금 더 아이들과 이야기 해 가며 천천히를 유도해서 예쁘게 글씨도 그림도 그리도록 안내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는 날이었다. 오늘 좀 아쉬웠는지 **는 홀소리에 어울리는 낱말을 공책에 쓰면 안 되냐 했다. 내일 또 하면 된다고 진정 시켰다. 그 아이는 나를 살짝 부르더니 'ㅐ'가 가운데만 조금더 넓히면 영어 'H'를 닮았다 한다. 귀여웠다. 맞다고 했다.
오늘은 한 아이와 실랑이를 벌였다. 오늘은 좀 엄하게 했다. 학교 선생을 부모한테 이르면 해결이 될 듯한 발언을 연거푸 하는 아이 때문이었다. 지난번에도 주의를 줬다. 사실 이 아이의 부모님은 나에 대한 신뢰가 높아 이 아이의 말이 효용이 없을 것을 알기에 더욱 엄격하게 대했다. 부모로부터 높은 존중을 받고 신뢰를 받는 아이 중 일부는 지나친 자존감으로 자칫 사람의 관계에서 서열이 있다는 것에서 대해 무지하다. 이것을 어릴 때 바로 잡지 않으면 매번 자신의 문제를 부모에 기대서 해결하거나 학교 교사를 부모의 아래 단계로 여기게 된다. 이러면 결국 교육이 되지 않는다.
얼마전 오은영씨 프로그램 중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의 행태 중 이런 서열에 대한 의식이 없이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 육아방식에 대해 언급한 장면을 보았다. 오늘 또 다른 여자 아이는 다른 결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고 보호자는 자식의 행동에 부담과 불편함을 가지고 상담을 하셨다. 본질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은데, 차츰 이런 문제도 보호자와 아이가 함께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1학기가 지나가기 전에 몇몇 보호자들과는 따로 이야기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를 마치면서 즐거웠냐, 재미있었냐를 물었다. 다들 재미있었다고 대답해 준다. 그래서 난 내일은 좀 더 재미있는 수업이 준비 돼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기대를 하라고 했다.
"선생님, 너무 기대를 하게 되면 밤에 생각이 나서 잠을 못 자요."
"음... 그럼 다 자고 기대해. 하하."
"선생님, 저는 맨날 기대가 되요."
"정말? ** 고맙다. 기대해 줘서."
"저도 기대해요."
"다들 고마워.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보자. 자, 단체 사진 또 찍으러 나올까?"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