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9.)
지난 4월말부터 준비했던 우리 새싹이들 100일 잔치가 성대(?)하게 끝이 났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지난 1월부터 난 100일을 기획하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을 갔다 우연히 만난 한 젊은 화가.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이목구비'라는 화방을 운영하는 이를 만나면서 난 100일 떠올렸다. 경희대 한국화 전공자였다는 그의 최근 작업 중에 어린 아이들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있다는 것. 작품을 봤더니 꽤 호감이 갔다. 만나 빠르게 친해진 그에게 1학년을 맡을 나를 소개하고 석 달 뒤에 연락을 할 테니 잘 부탁한다고 했었다. 그렇게 나는 아직 만나지 않은 1학년의 100일을 일찍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만들어진 우리 새싹이들의 캐리커처는 파일로 받아 어버이날 편지 때부터 섰고 오늘 100일째는 액자로 만들어진 것을 아이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었다. 100일째 되는 날, 아침부터 바빴다. 학교 어린이 날 행사 때 썼던 종이 꽃을 다시 꺼내 칠판에 붙이고 작은 현수막을 꺼내 100째 되는 날의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교실로 일찍 들어온 아이들과 함께 준비도 했는데, 나주엥 들어온 아이들이 어찌나 신나게 들어오며 흥분상태로 오늘 100일을 이미 자축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100일 잔치를 하느냐 묻는 아이들부터 뭘 선물로 줄 거냐는 아이들까지 벌써 아이들은 흥분상태였다.
이런 흥분에 난 찬물을 뿌렸다. 수학수업을 하고 시작하자고. 사실 할 생각이 없었지만, 진정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수학나라 공책에 남겨둔 1~50까지의 수를 익히는 빙고놀이 게임을 꺼내 함께 하자고 했다. 에상대로 아이들은 그건 하겠단다. 그렇게 해서 30~50까지의 수를 마음대로 16칸에 쓰고 맞히는 빙고놀이를 차를 마셔가며 했다. 그헣게 안정을 시킨 아이들과 다음으로 한건 준비해둔 파티고깔을 나눠 주었다. 다시 들썩이는 아이들에게 '나는 100일동안 더 0000 됐어요'를 써서 고깔에 붙일 수 있는 종이왕관 머리띠를 꾸미도록 했다. 바로 어제 세종시 00초등학교 1학년 교사로 사는 후배에게 전달받은 것이었다. 그도 100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나라 하며 종이를 받아든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100일 동안 뭐가 더 달라지고 좋아진 것 같아?"
"음...저는요. 친구랑 더 친해진 거 같아요."
"음...저는 한글을 더 알게 됐어요."
"저도 친구랑 더 가까워졌어요."
"에잉, 쟤가 나 따라해요."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니가 먼저 했잖아."
"나는 달리기가 더 빨라진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알아?"
"맞아요. 00 엄청 빨리 달려요."
"하하. 그래. 나중에 00 한 번 뛰어다니는 거 봐야겠네."
"저는요. 더 재밌어졌어요."
"저는요. 더 행복해졌어요."
"저는요. 더 자신 있어졌어요."
다들 행복해지고 재밌어지고 친구랑 친해지고 자신 있어지고 달리기까지 잘하니 지난 100일동안 아이들과 지낸 나도 행복하고 재밌고 더 친해지고 싶고 자신도 생겼다. 달리기까지는 생각해 봐야겠지만. 그렇게 고깔에 붙이고 나니 벌써 중간놀이 시간. 중간놀이 시간에는 땅마을 6학년을 초대했다. 1학년 입학할 때부터 환영하고 아껴지고 사랑해주던 상당수의 6학년을 초대하고 싶었다. 올해 짝학년이기도 한 6학년을 초대한다고 하니 1학년 아이들도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교실로 반갑게 인사를 하며 들어온 6학년 아이들에게 달려가 안기고 손으로 잡아 당겨 앉히는 풍경이 날 웃음짓게 했다. 그리고는 떡과 음료를 나눠주며 지난 100일 1학년이 자란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보았다. 웃으면서도 때때로 진지하게 지난 100일을 돌아보는 아이들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중간놀이 시간이 끝나는 지점에 새싹 1학년 보호자 분들이 6학년 아이들에게 주는 큰 케이크를 선물로 건넸다.
6학년을 교실로 떠나 보낸 뒤, 새싹이들은 우리들만의 마무리 잔치를 했다. 입학식날 사진이 올려진 케이크로 100일을 자축을 했다.
"100일 축하 합니다. 100일 축하 합니다. 우리들의 100일을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는 뒤 아까운 케이크를 잘라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는 제일 큰 선물인 새싹이들 캐리커처를 건네었다. 수줍은 듯 받았지만, 너무 좋아 밥을 먹으면서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싶어 가방에 넣지 않겠다 고집 피오는 아이들과 겨우겨우 점심식사를 마무리 하면서 100일을 그렇게 떠나 보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0일 우리 새싹이들과 지낸 날들은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네 번째 1학년을 하게 되면서 아마도 가장 여유로웠던 100일이었던 것 같다. 일반학교에서는 딱 정해진 교육과정 때문에 늘 쫓기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때도 교과서 대로 하지는 않았지만, 큰 학교여서 동학년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가장 컸던 건 내가 1학년과 지내는 법을 알아가는데 열을 올리다 보니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늘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거산에서 와서 1학년을 맡을 지점에서는 어느 정도 1학년 교육과정을 소화낼 준비가 돼 있었고 성장과정을 알고 있어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아이들도 각기 속도가 다르지만, 충분히 2학년으로 넘어 가기 전에 이 정도로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급해 할 필요도 없었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있고 일반학교 아이들보다 학습해 온 양이 적지만 오히려 그것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좀 더 잘 다져지고 알차게 배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모든 교육관과 수업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응원하는 보호자 분들 덕분에 소신대로 할 수가 있어 좋다. 일반학교에서도 늘 응원을 받긴했지만, 적은 13명의 아이들과 보호자들 간의 친밀도와 응원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보호자의 응원과 믿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만큼 교사에게 힘을 주는 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200일에 대한 나 자신도 기대가 크다.
누구에게나 100일은 있다. 하지만 그 100일을 어떻게 달려왔는지가 중요하다. 누구와 함께 달려왔는지도 중요하다. 오늘 100일 더 행복해지고 재밌어지고 친구랑 친해지고 달리기까지 빨라졌다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나는 신영복선생님의 '다시 처음처럼'을 떠 올렸다. 그렇다. '다시 처음처럼' 또 다른 100일을 우리 새싹이들 곁에서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