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6.)
오늘은 종일 한동안 못했던 통합교과 '가족'관련 활동 '우리 가족 문패만들기'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다. 테두리가 있는 글자를 한정된 지면에 쓰는 것이라 1학년이 학기에는 사실 쉽지 않은 활동이다. 더구나 아직 쓰는데 익숙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라. 더욱 힘든 건 여러 번 고치고 다시 해야 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 크기 조절, 간격조절, 글씨모양 조절까지 이 모든 걸 감안해서 1학년아이들이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이 작업의 최종 목표는 삼나무에 식구들의 이름을 새긴 우드록을 붙여 매직이나 네임펜으로 색을 칠하고 꾸며서 자기 글씨체로 만든 가족문패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문패라로 일컬어지는 물건도 이제는 거의 사라져 보이지 않은 현실에서 웬 문패냐고? 일단 식구들의 이름을 아직도 잘 모르거나 잘 쓰지 못하는 1학년이 적지 않다는 것. 글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을 찬스는 없다는 것. 우리 반 아이들도 두 명이 아버지 이름을 잘 못 쓰거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이렇게 다시 식구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삼나무 크기에 맞는 하얀 종이를 아이들에게 식구 수만큼 접어서 쓸 수 있게 해준다. 세 식구는 삼등분을, 네 식구는 네 등분을, 다섯 식구는 네 등분한뒤 형제는 성을 빼고 이름만 쓰게 해서 다시 한 등분을 두 개로 분리하게 한다던지 해서 쓰게 했다. 앞뒤로 연습하게 해서 총 열 번은 하게 했다. 다행히도 이전 학교 아이들이 5월에 시작했는데, 이 아이들은 한 달 뒤에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좀 더 적응상태에서 시작한 탓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잘 해주었다. 다만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좀 더 뚜렷하게 그리게 하고 싶어 다시 다시를 주문했다.
물론 이 상황에 이르자 아이들이 힘들어 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신나게 주절거리며 하던 녀석들이 다시 하라고 할 때, 고치라고 할 때는 입이 댓발로 나오거나 기가 죽어 자리로 돌아간다. 물론 그런 표시를 하지 않고 묵묵히 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이런 와중에 뭐든지 잘 하여 칭찬을 자주 받는 한 아이가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내 앞에서 울상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뭐든지 잘 하는 사람은 없다고 선생님도 그렇다고. 잘 안 될 때는 좀만 더 참고 이걸 해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 나중에 좀 더 잘하게 된다고. 하지만 잘 안 되는게 서러웠는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얼굴을 붉힌다.
나도 예전에 그랬을까? 요즘 아이들이라고 칭하는 건 문제가 있어 보여서 말이다. 하여간 내가 만난 저중고 초등학생들의 특징 중 하나가 힘들면 회피한다는 거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학교에서 6학년과 지내면서 그런 아이들을 적지 않게 봤다. 힘들면 안 하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도록 키우겠다는 이 학교의 아이들이 너무도 쉽게 포기하거나 어려운 건 회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 어릴 적부터 힘들어도 도전하고 회피하지 않고 달려들어 최소한의 성취를 이뤄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 이것이 올해 담임으로서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작은 바람이다.
어쨌든 눈물을 찔끔 흘리는 아이는 다시 웃음을 되찾았고 힘들어하던 아이들도 이어서 나누어준 우드록 판에 자기 글씨를 재차 정성스레 연필로 새겼다. 마침내 2주 뒤에 나올 글자 조각들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작지만 힘든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무언가를 해내는 힘들을 차곡차곡 몸 속에 집어 넣어주길 바란다. 애들이 힘들어한다고 그냥 놔주는 순간, 그 다음은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 시절 원망을 들어도 그 중에 몇몇 아이들은 이 작은 경험이 자신들의 성장에 밑받침이 된다는 걸 언젠가는 깨닫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뒤돌아서는데, 뒤늦게 결과물을 제출하려던 00가 내 앞에 와서 내밀어 과제를 확인시킨다. 일어서 있던 상태에서 아래로 내려다고 이 녀석은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녀석이 한 마디한다.
"선생님 코털 보인다."
"뭐?"
"선생님, 코털 나왔다고요."
"아래에서 보면 당연히 코털이 보이지."
"헤~ 코털~~"
"에고, 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