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지만, 아직은 젊은

(2023.6.28.)

by 박진환

오늘 날씨. 오전 비 안 오고 오후 해 남. 감자를 좀 늦게 거두고 싶은데...금요일 예정인데, 금요일에 비가....아, 다행히 오늘 예보로는 오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그럼, 금요일로? 500미터를 걸어서 출근해야 하는 길에 아침마다 오늘 하루 밑그림을 그리고 간다. 가끔씩 아침 일찍부터 날아오는 학교 업무 관련 메시지가 짜증을 나게 하지만, 없는 날에는 오롯이 하루 아침을 아이들과 어떻게 보낼지를 구상한다. 학교도 제발 아침 일찍부터 문자 보내는 일은 삼가 해주었으면 하는데... 일 많은 학교에 일 때문에 아침부터 생각해하는 일이 없이 오롯이 아이들 생각하며 출근하게 해 줄 수는 없는지... 아무튼 결론은 금요일로 일단 미루기로...


교실로 들어서서 오늘 늦게 도착한 통학버스를 타고 오는 아이들을 기다렸다. 어김없이 교실로 씩씩하게 소리를 지르고 인사를 하며 들어온 아이들. 어제 페북에서 경기도에 있는 후배교사 페친이 '요즘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학교 오는 게 교사로 사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글을 읽고 응원을 해주었다. 요즘 나도 그렇다. 어긋나고 부족하고 때때로 막막할 때가 있는데, 이 모든 걸 다 감싸는 아이들 덕에 학교에 오는 일이 부담도 없고 편안하다. 아이들이 교사를 신뢰하고 교사가 아이들을 믿고 가는 과정에서는 아무 것도 거칠 게 없다. 거칠 게 없는 아이들과 나는 오늘 첫 수업. 수학으로 시작을 했다.


오늘은 어제 배운 9 이하의 수로 가르기 모으기 관련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첫 놀이는 '누가 더 빨리 채우나' 하는 놀이로 주사위 두 개를 굴려 합이 되는 수에 동그라미를 그려 칸을 채워나가는 놀이였다. 6이 넘는 수는 합의 끝 일자리 수로 0,1,2도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짝이 함께 하는 놀이인데, 그런대로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참여했다. 나중에는 9를 채워요. 8,7,6,5를 채워요 놀이를 하면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했다. 아이들이 한 편이 되고 교사와 겨루는 놀이.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색칠한 수와 남는 수의 관계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하는 것. 이 과정이 모두 학습이기 떄문이었다. 아이들을 이기게 해주려 애를 썼고 성공했다. 아이들이 신나하면서 공부했으니 모든 게 좋았던 수업이었다.


다음으로는 겹받침 만들기 사전놀이를 했다. 오늘은 'ㄺ'으로 '닭, 흙, 늙다'를 공부했다. '늙다'를 공부할 때, 내가 문장 하나를 쓰면서 읽어갔다.


"우리 선생님은..."

"늙었다. 하하하."

"에잇, 이 녀석들... 그래 선생님은 늙었다."

"맞잖아요. 선생님은 늙었어요."


30대 초반 페친 후배교사의 글에서 생기 발랄한 담임교사의 느낌을 받으면서 지난 날 나도 그랬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래 나 참 늙었다. 이제 몇 년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절을 아이들과 정말 행복하게 건강하게 보내고 싶다.


오늘 마지막 시간은 '투명 우산 꾸미기'로 보냈다. 스티커로 꾸미고 매직으로 색을 넣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아이들은 무척이나 신나했다. 아이들이 신나하니 덩달아 신나하는 나는 늙었지만 아직은 젊은 선생이고 교사이다. 그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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