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바람이 뺨을 스치며 지나간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시간, 테니스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선 고요가 나를 맞이한다. 늘 웃음과 대화로 가득 차 있던 코트가 오늘은 텅 비어 있다. 선배도 후배도 함께 뛰던 친구들의 모습도 없다. 오직 이른 바람과 풀잎의 숨결만이 잔잔히 흘러가고 잇을 뿐이다.
나는 코트 한가운데 서서 한동안 주위를 둘러본다. 철망 너머로 희미하게 새벽빛이 번지고. 이슬이 맺힌 네트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 앞에 서 있는 나는 왠지 모르게 나 자신까지 드러내 보이는 듯한 쓸쓸함에 휘감긴다. 그러나 그 적막이 오래도록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요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내 안에 서서히 차오른다. 그것은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의 작은 떨림이었고, 숨 고르듯 잦아드는 내 심장의 박동이었다. 늘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던 나는 오늘 비로소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자리는 공허한 듯했지만, 그 비움속에 충만이 깃들어 있었다. 새벽의 코트는 운동장이 아니라, 잠시 나를 내려놓고 다시 세우는 조용한 사색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나는 라켓을 내려놓고, 하얗게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본다. 공 하나 튀기지 못한 채 지나간 시간이었지만, 오늘의 새벽은 누구와의 시합보고 값지고, 어떤 승리보다도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