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워: 분열의 시대>
0.1. 본 글이 [25년 여름 글] 중 뜬금없는 작품론으로 읽히겠다. 이유는 ②와 ③이 25년 씨네21 평론 공모전에서 요구한 바에 맞춰 쓰인 글이라 그렇다. 하지만 ①부터 읽은 독자는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0.2. 출처는 브라우저의 찾기 기능(Ctrl + F)을 이용하면 된다. 출처01을 보고 싶다면 Ctrl + F 후 "출처01"이라 검색하는 식으로 말이다.
0.3. PC로 보는 걸 추천한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알렉스 가랜드, 2024, 이하 <시빌 워>)에 등장하는 기자들은 경박하다. 아니, 과장을 보태면, 천박하다. 주연 기자 중 하나인 조엘(와그너 모라)이 취재여행 동행 허가를 빌미로 기자 꿈나무 제시(케일리 스패니)에게 집적대거나 영화 대부분의 기자들이 전쟁의 아픔에 통감하기보단 대통령 인터뷰와 같은 특종에 혈안이 된 것처럼 보여서만은 아니다. 난 <시빌 워>에서 안과 밖 그리고 그 사이 거리를 문제 삼고 싶다. 오프닝에서 물을 얻으려 사활을 거는 시민들과 그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들을 찍으며 비즈니스적인 인사를 나누는 기자들의 모습을 상기하라. 여기서 시민과 경찰이 만드는 난장과 기자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영화는 그 거리를 통해 기자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생사가 달린 일, 기자들 밖의 일은 기자들의 일이 아니며 그들의 일·비즈니스는 그런 밖의 일을 촬영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비즈니스는 말 그대로 비즈니스이니 기자들은 자신 안의 사적인 감정을 느낄 필요 없이 밖의 일을 기록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렇기에 기자에게 안과 밖의 거리는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은 여기서 현실의 기자들과도 관련된 익숙한 딜레마를 본다: 기록자의 태도와 방관자의 태도는 한 끗 차이라는 딜레마.
그리고 수많은 죽음을 기록해 온 베테랑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는 그 사실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녀는 ‘그때 셔터를 누르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왔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자신과 사제 관계를 형성한 기자 꿈나무 제시의 “내가 총 맞는 순간도 찍을 거예요?”라는 질문엔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눈앞에 벌어진 제자의 죽음은 밖의 일이니 기자로서 본분을 다 하기 위해 찍기는 찍어야겠지만, 리는 그럼에도 찍겠다는 말을 않고 망설인 것이다. 스승은 어쩌면 제자가 바로 그 망설임을 배웠으면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내면을 죽이지 않고 생각과 망설임 끝에 셔터를 누르는 기자가 되기를, 그렇게 안과 밖의 거리를 고민하는 기자가 되기를 스승은 침묵으로 바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 중반까지 제시는 비교적 진중히, 천천히 셔터를 누르며 스승의 기대에 부응한다.
그러나 영화 중후반부에 사태는 변곡점을 맞는다. 마을을 몰살하고 기자들 중 아시아인 기자만 골라 죽이며 “이게 미국이지.”라고 말하는 천박한 사고방식을 지닌 군인들에게서 기자들이 탈출할 때를 상기하라. 이때 제시는, 죽은 사람들과 전쟁의 상흔을 천천히 찍으며 그것과의 거리를 고민하던 그녀는, 그만 시체더미에 빠져 죽음과 닿아버린다. 좁혀진 거리에 구토하는 기자 꿈나무. 그리고 우리는 이후 제시가 사진을 다르게 찍기 시작함을 유념해야 한다. 여차저차 마을을 탈출한 기자들이 영화의 마지막 장소인 워싱턴에 도착하자 제시는 미친 사람처럼 셔터를 갈긴다.
셔터 갈기기. 셔터를 누르는 횟수와 셔터를 누르는 가벼운 손가락 놀림에서 느껴지는 경박함. 사진가의 생각이나 망설임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는 셔터 사이의 간격. 접촉에 놀란 제시는 셔터 갈기기로 거리에 대한 고민을 그만두고 영화 시작 천박한 기자들처럼 안과 밖의 거리를 공고히 하고픈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녀는 어떤 사진을 찍는가? <시빌 워>의 끝을 향하자. 그녀는 대통령 경호원들과 군인들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그럴싸하게 찍기 위해 군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선으로 나가 촬영을 시도한다. 총에 맞을 위험에 처한 제시. 그러자 리는 으레 영화에서 스승이 할 법한 일, 제자 대신 총 맞기를 한다. 그리고 이는 파국인데, 등장인물이 죽어서 그런 게 아니다. 리가 총 맞는 순간을 제시가 셔터로 갈겼기에 파국이다. 제자는 스승이 답하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그렇게 갈취했다. 와중에 군인들은 경호원들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사살했고, 눈앞의 일을 카메라에 담을 땐 망설이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어긴 제자는 그렇게 <시빌 워>를 맺는 총 맞은 대통령 사진을 찍는다. 그렇다. 이 사진이 바로 영화 대부분의 천박한 기자들이 원하던, 특종거리에 혈안이 된 이들이 원하던 특종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리는 기자가 셔터를 갈겨 찍은 총 맞은 대통령 사진을 작년 현실에서 봤다. 에번 부치가 찍은 뒤집힌 성조기 아래 트럼프 사진[출처01] 말이다. 난 나를 포함한 모두를 감탄시킨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을 두고 과감하게, 그가 한편으로 천박하기도 했다고 말하겠다. 출처01 기사의 첫 번째 GIF 이미지에서 트럼프가 일어서자 부리나케 단상 밑으로 달려가 셔터를 갈긴 부치를 보라. 부치의 날쌤은, 해당 기사에서 볼 수는 없지만,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트럼프가 일어서기 전까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여준 얼어붙은 모습과 대비된다. 물론 부치는 트럼프 시체에다 카메라를 들이밀지는 않았고 그가 일어선 걸 확인 후 셔터를 갈겼긴 했다. 나아가 총격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행동에 나선 그의 용기와 역사적 순간을 알아차린 기자로서의 촉은 대단하다. 하지만, 일부러 나쁘게 말해보자, 일종의 기회주의자인 부치는 ‘이거 특종감이다!’ 싶으니 그 특종의 기회를 잡기 위해 트럼프의 생사나 후속 총격의 여부는 괘념치 않고 셔터를 갈겼다고, 내면의 고민 없이 게걸스럽게 바깥을 탐했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쏜 사람에게만 필연이었을 총알. 다른 이들은 예상 못했기에 철저히 바깥에서 주어진 우연이었을 총알. 그리고 그 외부의 우연이 준 기회 즉 순간을 촘촘한 셔터의 간격으로 사로잡아 요행을 이룬 기회주의자. 그리고 사로잡힌 순간과 요행에 감탄한 우리들. 하지만 이 사진의 진정 놀라운 점은 기회주의자의 실력 또는 행운이나 우연한 순간에 찍힌 사진치고는 너무 잘 찍혔다는 점에만 있지 않다. 우리는 이 사진의 피사체 또한 기회주의자임을 안다. 그는 다른 정치인은 간파하지 못한 대중의 기대에 부응해서, 외부에 있는 자신을 향한 기대에 부응해서 당선됐다. 그리고, 마치 고상한 사람들이 대중의 기호에 맞춘 예술작품을 천박하다고 비난하듯이, 사람들은 그와 그의 지지자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을 천박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동시에 알고 있다. 한편으로 트럼프는 우연한 총격에 대한 대응으로 손을 치켜들어 우연을 요행으로 바꿔 모두를 감탄케 한 사람임을. 더불어, 이제 와 하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 중 몇은 이 사진을 보고 그의 당선을 직감했다. 세상의 모든 기회가 그를 돕는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자. 이 사진의 진정 대단한 점은 외부를 감각할 줄 아는 두 천박(淺薄)한 기회주의자의 합작에 있다고 말이다.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이 일치한 이 사진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얕고(淺) 엷다(薄). 그렇기에 이 사진을 본 대다수는 사진 속에서 사진가나 피사체의 의도나 고민을 감각하기는커녕 감상자로서의 단상마저 하지 못했다. 우리 모두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마비된 사람처럼 할 말을 잃었거나 기껏해야 탄식하지 않았는가? 대신 사진은 압도적인 외부로서 말문이 막힌 우리에게 한 가지를 받아들이라고 설파한다. 너희들이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나아가 누구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그런데 <시빌 워>의 총 맞은 대통령 사진은 위 사진과 같은가? 영화의 사진은 천박하기만 한가? 이건 속단 말고 따져봐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영화가 끝나기 직전으로 돌아가, 이번엔 조엘을 따르며, 사진이 찍힌 과정과 사진의 구도를 말해보자. 대통령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그를 즉결처형하려는 군인들을 조엘은 말렸다. 하지만 우린 그가 어떤 기자인지 안다. 그는 대통령 인터뷰라는 특종에 목을 맨 기자이기에 눈앞에 도사린 죽음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정식적인 재판을 받아야 한다." 등의 말로 군인들을 막지 않고, 대신 뜬금없이 대통령에게 “한 말씀해주시죠.”라 한다. 이 황당한 질문에 대통령은 뭐라 답하겠는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살려주세요.”라 천진하게 답하고, 그렇게 짧은 특종을 “그거면 됐습니다.”라 마무리 지은 조엘은 군인들이 할 일을 하게 둔다. 이후 앞서 말한 대로 제시가 총 맞은 대통령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에서 군인들은 천진하게도 사냥감을 자랑하는 사냥꾼과 같은 자세를 취해 짐짓 관객을 웃긴다.
천진한 대통령과 군인들을 천박한 셔터로 찍은 사진. 그렇게 해서 나타난 천진과 천박의 이중화와 그 이중화에서 발생한 웃음. 그렇다면 그 웃음은 무엇을 향한 웃음일까? 여기서 새삼 리가 천박한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원로 기자 새미(스티븐 헨더슨)의 시체 사진을 고민 끝에 삭제했음을 떠올리자.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고려했을 때, 리의 행동은 어떤 저항이다. 그녀는 기자로서 찍은 사진이 천박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기자로서 찍은 특종이 천박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새미의 죽음을 자신의 안 또는 미지의 영역에 둬서 그의 존엄을 지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시빌 워>는 스승과 어긋난 제자의 사진으로 맺어지는 바, 영화는 리가 두려워했던 사진을 심지어 우습게 보인다.
따라서 영화에서 총 맞은 대통령 사진이 유발한 웃음은 생각과 고민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세상에 저항해 보려는 사람에 대한 냉소이다. 그리고 그 사진은 관객마저 이렇게 비웃는 듯하다. 리처럼 고민하고 망설여봤자 천박해지는 우리 세상은 돌이킬 수 없다고, 사진 삭제를 통한 저항은 실패할 것이고 남는 건 사진이라고, 그 끝에 너희도 이런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이 맞는다면 슬프게도, 그리고 정말로, 영화의 총 맞은 대통령 사진은 현실의 총 맞은 대통령 사진이 설파한 시대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출처1]: 김윤주, 「‘주먹 불끈’ 트럼프 사진 찍은 기자 “역사적 순간 직감”」, 한겨레, 24.07.15.,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149109.html